▲시대의창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제목보다는 <어느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부제가 눈에 더 들어왔다. 나 자신도 저자처럼 실천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현 시기에 어떤 형태로든 '반성과 전망'이 필요하다는 공감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 일 것이다.
'관성'만큼이나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또 있을까? 막연하게 보수 세력들이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간의 첨예한 갈등과 모순 속에서, 그리고 갈등과 모순이 극복되고 지양되면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이명박 보수 정권의 저 무개념 삽질은 어떤 의미로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성'이라고 하는 성질은 자신의 행동양식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고수하려는 성질을 뜻한다.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과 모순이 첨예해질수록 상황은 시간 단위 아니 초 단위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 간의 대결에서 진보가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순간에 불필요한 '관성'은 바로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아마 이 때문인 것 같다. 책의 활자 너머로 느껴지는 저자 민경우의 절실함은 말이다. 1965년에 태어나 1984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해서 87년에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으로서 6월항쟁에 참여했고,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른 386세대의 중년 통일운동가 민경우는 어느덧 '관성'이 몸에 밸만한 나이에 진보진영의 '관성'에 일침을 가한다. 그가 수많은 욕을 먹어가면서 인터넷언론 <통일뉴스>에서 '소통과 논쟁'이라는 형식으로 사상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절실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민경우의 그러한 마음은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그러던 중 '대선-촛불시위-미네르바 현상'이 2007~08년을 강타했다. 나는 20년의 시간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켰는지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 10대 소녀들의 맹랑하면서도 활기 있는 집회, 자유롭고 역동적인 시청광장의 사람들, 한국경제를 분석하는 30대 초반의 청년 등을 보면서 NL을 비롯한 진보진영 전체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시급히 NL노선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청춘을 바쳐 헌신했던 우리들의 삶 전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저자 민경우는 책의 본문에서 기존의 NL노선이 왜 현 시점에서는 '관성'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정치군사적 지배에서 경제적 지배로 바뀐 미국의 전략, 전근대적인 매판체제에서 보수엘리트 체제로 바뀐 지배세력들, 농민의 몰락과 대규모 자영업자의 출현,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소수자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생기는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 변화된 대학생들의 정서를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학생운동 등을 다루면서 '관성적' NL노선에 들이대는 비판의 칼날은 저자 민경우의 '절실함'만큼 날카롭다.
나는 통일운동가 민경우가 중년의 나이에 새롭게 경제 공부에 천착하고 경제공부 소모임을 조직하면서 열정적 활동을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과거 20년 동안 통일운동을 했던 것이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였던 것처럼, 같은 이유로 그는 중년의 나이에 경제 공부를 새로이 시작한 것이다.
물론 민경우의 비판적 칼날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것은 수많은 논란과 불편함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인터넷언론 <통일뉴스>에서 민경우의 글에 달리던 엄청난 댓글의 행렬은 그런 논란과 불편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아픈 과정을 통해서 진보는 구체적 현실에 맞게 '재구성'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진보의 재구성> - 어느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 / 민경우 / 시대의창 / 2009년 7월 17일 /1만3500원
진보의 재구성 - 어느 실천가의 반성과 전망
민경우 지음,
시대의창,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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