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중인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법원 강제집행이 시작된 20일 오후 농성중인 노조 간부 부인이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조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우성
제 이웃 두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돌아가신 엄인섭 조합원은 저희 가족과 한 아파트에서 5년을 지낸 이웃이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다니던 가족이었습니다. 6살 4살 된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이틀 전 경찰병력이 투입된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아기 엄마의 남편은 제 남편 바로 앞 책상에서 업무를 보는 노조 간부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만나 뵈었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밖에 없었습니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인 우리 남편들과 가족들도, 순간순간을 정신 잃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두 발로 간신히 서 있을 뿐입니다.
4살 된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왕복 70km가 되는 거리를 천안에서 평택까지 매일 다녔습니다. 노조 간부인 남편이 1월부터 거의 집에 들어오지 못 했습니다. 남편 얼굴을 보고,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2월 중순부터 매주 한 번씩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5월 9일 가족대책위가 출범한 뒤로 하루가 멀다하고 왕복 70km를 달렸습니다.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과 저녁 한 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공장을 드나들었죠.
그러다 6월부터 회사 관리자들과 용역직원들이 파업 노동자를 비난하며 집회를 열고, 급기야 6월 26일 회사를 침탈하면서 모든 상황은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으로 밀고 들어온 법정관리인과 관리자, 비해고자들이 이틀만에 철수하는 27일 밤에는, 가족대책위 식구들이 심한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퇴거하는 관리자들이, 농성조합원들 때문에 회사가 파산되어 자기네들도 죽게 생겼다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가족들에게 퍼붓고, 들고 있는 쇠파이프와 물병을 우리들에게 집어던지며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아이는 지나가는 회사 사람이 던진 물병에 눈을 맞았습니다. 아이가 지른 비명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고 부어서 눈 크기가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4살 아이는 용역, 관리자, 경찰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고 집에서는 쟁반이나 큰 책을 '방패'라고 하면서 경찰을 막고 있겠다 합니다. 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꺼내와 울타리처럼 줄을 세우고는 경찰 못 들어가게 막는 거라 합니다. 현실에서 아빠를 만날 수 없게 가로막고 방패로 땅을 찍으며 놀라게 한 경찰을 향한 공포와 분노를 이렇게 푸는 걸까요?
오늘(22일) 새벽 2시 40분경엔 급기야 회사 직원들이 가족대책위 천막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한달 전부터 공장 밖으로 밀려나 공터에 천막을 세워 장맛비를 피해왔는데, 그 공터 주인에게 땅을 임대한 회사측은 어제 철조망으로 공터 사방을 두르더니, 결국 눈엣가시 같았을 우리 가족들의 지붕을 걷어냈습니다.
경찰과 회사측의 공조로 회사 관리자들이 정문을 관리하게 된 뒤로, 지금처럼 비인도적인 회사측의 처사로 가족들이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갔던 음식물이며 의약품은 일체 금지 당했고, 정문 너머로 서로 얼굴이나마 볼 수 있었던 것도 가로막혔습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방문도 회사 사람들이 막았구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적으로 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