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었다면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쓴웃음 한 번 짓고 끝낼 수 있겠다. 군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 땅에 온갖 방법으로 생채기를 낸 일이 한 여름 잠시 있다 사라진 악몽이었다면. 그러나, 악몽이기엔 그 역사가 너무나 뚜렷하며 상처는 더더욱 또렷하다. 여전히 그 시절은 아프다.
아프더라도 깨끗이 회복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군국주의 일본'이 여전히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이곳' 문제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이며 일본인이라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를. 우리와 그들에게 동시에 묻는다. 대답은 늘 흐릿하며 순간순간 사라지는 안개인 것만 같다.
<일본이라는 나라?>(책과함께 펴냄, 2007)는 묻는다. 아니, 대답한다. 일본 특히 현대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를 충분히 알고 또 계속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그것은 메이지유신과 2차대전이다. '섬나라' 일본의 한계를 일순간 벗어던지며 제국주의 행렬에 뛰어들게 된 일본은 그 얼굴이 달라졌다. 그리고 2차대전 전후에는 미국 손바닥에 놓인 채 일본의 낯빛이 다시 바뀌었다.
'메이지 일본'과 '전후 일본'을 통해 보는 현대 일본
메이지유신은 결과적으로 일본을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침략하는 나라'로 바꾸었다. 세계 각국이 세계 곳곳을 땅 따먹기 하듯 차지하던 당시에 일본 역시 그 대열에 참여했다. 일본이라는 '섬'나라를 당시 제국주의 세상 중심에 들이밀 목적으로 일본 국민을 개량(?)하려 했다. 국가 중심 생활방식에 물들게 해야 했다. 메이지유신은 바로 이를 위한 국민개조작업이었던 셈이고, 이것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고(?) 지도하는(?) 나라가 되는 상상에 빠졌다.
"… 다시 메이지시대 이야기를 해보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점점 늘었지만, 문제는 후쿠자와가 말한 '가난하면서 지혜로운 자'도 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강해지려면 일반 국민까지 교육을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지만, 지혜가 생겨 가난한 상태에서 불만을 품는 인간이 늘어나는 건 곤란하다. 그래서 정부로서는 국민들이 지혜를 갖게 도와주면서 충성심도 길러줄 필요를 느끼게 된다.
(중략)
이렇게 해서 일본의 근대화는 국민 전체에 서양 문명 교육을 고루 보급하면서, 동시에 정부나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기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갔다. 그리고 1895년(메이지 28)에 메이지 이후 최초의 대외전쟁인 청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이것은 국민을 교육함으로써 나라 그 자체의 힘을 강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 힘을 나라가 명령하는 방향을 향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일본이라는 나라?>, 48-50)
한 마디로, 책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신분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교육을 통해 일종의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유혹을 퍼뜨린 근대교육이 일본을 군국주의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일본 국민과 일본 정부를 따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 같은 역사 해석을 놓고 논의할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이 책이 말하는 바에 집중하자면, 군국주의 일본이 근대교육을 비롯하여 '서양문명'을 적극 빨아들인 목적이 매우 교묘하고 극악스러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현대 일본을 구성하는 '일본 국민'을 사실상 새로 만들어냈다. 제국주의 대열에 끼어들던 때로 다시 돌아간 것과 다름없는 2차 대전 패전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냉전 시대가 열렸다. 철저한 전범 재판과 전후 배상을 충실히 감당해야 했을 일본은 냉전 시대를 맞이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냉전 구도를 조성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태어나던 때, 이것은 일본을 전후 배상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미국 입맛에 맞게 조금씩 재무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해결할 게 여전히 쌓여 있던 때, 특히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으로 신음하던 때에 미국은 일본을 서둘러 국제사회에 다시 끌어들였다. 미국은 일본을 급하게는 한국전쟁 후방기지로 사용하고 한국전쟁 뒤에는 냉전시대 미국 대외 정책 전진 기지로 이용하려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조약 외에 향후 미일안전보장조약이 맺어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냉전의 종식과 일본경제의 정체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경제학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일본은 냉전으로 득을 많이 본 나라이다. 냉전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우대를 받았고, 전후배상도 가볍게 끝냈으며, '아시아에서 유일한 서방진영의 선진공업국'으로서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냉전이 끝난 것과 일본의 경제성장이 멈춘 것이 거의 동시라고 하는 점은 뭔가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아시아로부터 전후배상 문제의 대두, 일본의 경제성장의 정체와 더불어 냉전 종결 후에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미국의 대일 군사요구의 강화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라는 요구가 강해진 것이다."(같은 책, 115-116)
역사 속 한일관계를 두루 살펴보면 대한민국과 일본은 수없이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해왔던 이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일본을 '위험 인자'가 가득한 이웃으로 여기지 무조건 손을 내밀 수 있는 즐거운 이웃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이웃이지만 이웃이 아니기도 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긴장 관계를 조금이라도 바꾸어가기 위해서는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바로 이 같은 뜨거운 질문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대답을 해주고 있다.
책은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것 같은 이 책은 의외로 대한민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문자답하게 만든다. 일본을 향해 던지는 지칠 줄 모르는 의문, 질문, 혼란을 정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 것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알고 기억하고 되새김질해야 할 두 가지로 이 책이 제시한 것이 바로 메이지유신을 겪은 일본과 2차대전 전후 미국을 바싹 뒤따라간(!) 일본이다.
오구마 에이지는 요모조모 다 파악하자면 이 세상 종이란 종이는 다 써야 할 엄청난 내용을 중요한 두 가지 주제 아래 압축하여 추려내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내용 사이사이에 담았다. 중요한 주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분량이지만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우리 스스로 역사를 향해 더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가치가 결코 만만치 않다.
덧붙이는 글 | <일본이라는 나라?-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책과함께, 2007.
* 이 서평은 제 블로그(blog.ohmynews.com/eddang)에도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2009.07.27 17:5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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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책과함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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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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