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포도농사를 지으셨던 그 시절의 부모님이다.
이현숙
그때만 해도 모든 결정은 할아버지 손에 쥐어져 있었고, 할아버지는 선비였던 터라 살림만 쥐고 있었지 일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웠지만 의논 한 마디 없이 덜컥 묘목을 사다가 밭에다 심으셨다. 미리 의논하면 반대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대책없이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7남매나 되는 자식들 공부 시켜야 하고 큰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훗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막상 포도나무를 심고 났더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됐는지, 할아버지도 별 말씀 없으셨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이듬해 날씨가 너무 추워 나무가 반이나 얼어죽은 것이다. 아버지는 그때 할아버지가 역정 내실 게 두려워 마음을 많이 졸이셨다고 한다. 우리는 전혀 몰랐다. 아주 어릴 때여서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그저 우리 집에도 과수원이 생겨 그 맛있는 포도를 먹게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 친구들에게 자랑이나 하고 다녔다.
그러나 과수원이 얼마나 힘든 건지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는 천장식이어서 위를 올려다보고 일을 해야 했다. 천장식은 나무가 크고 무성하게 가지가 뻗어 나가 잎이 하늘을 덮으면서 포도가 달리는 형태였다. 그러니 고개를 바짝 들어야 나뭇가지를 다듬고 열매를 고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초봄에 가지 치기에서부터 순치기, 열매 솎기 등등. 맛있어서 먹기 좋은 포도알 하나에는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자연히 아버지는 포도밭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정성을 들이셨다. 다 익어서 딸 때쯤 되면 힘은 배로 들었다. 비가 오면 터지고 날씨가 후덥지근하면 썩고. 게다가 까치란 놈이 포도를 좋아해서 꼭 크고 맛있게 생긴 것만 골라서 쪼아먹고는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