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입을 벙긋해도, 그리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물어도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사람. 가상의 세계지만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는 딱 그런 존재다. 외모는 조각이고, 가진 돈은 많고, '가방끈'도 길어 말도 멋있게 하는데 늘 붙어 다니는 친구들까지 화려하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존재는 구준표와 정반대 조건을 갖고 있다. 입을 열었다 하면 쌍시옷이 난무하는 질펀한 욕인데다 목청까지 좋다. 눈에는 늘 붉은 핏줄기가 서 있고, 대부분 반쯤 젖어 있다. 검게 탄 얼굴에서 그 눈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정숙(가명·48). 그녀는 지난 20일부터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 나타난다. 밤에 잠을 편히 못 자는지 늘 피곤한 얼굴이다. 공장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과 비해고 노동자들을 보면 아침부터 화가 폭발한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저리 안 비켜! 엄마가 아들 만나러 간다는데, 너희들이 뭔데 길을 막아! 어? 내 아들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어! 차라리 날 죽여! 뭐, 왜 아침부터 욕이냐고? 너 말 잘했다. 이 상황 되면 네 엄마는 가만히 있을 것 같애!"
질펀한 욕설, 거친 몸부림, 충혈된 눈... 그녀는 왜 싸우나
이렇게 그녀의 아침은 한바탕 싸움으로 시작된다. 벌써 열흘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는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몸싸움을 하고 절규를 하고 통곡을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에게 새끼를 노출한 초식동물 어미의 몸부림 같다. <마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이 그녀를 보면 <마더2>를 기획할지도 모른다.
그녀라고 싸움이 취미고, 욕설이 특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녀가 나타나면 경찰과 비해고 노동자들은 자기들끼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야, '미친 X' 나타났다."
이런 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왜 "미친 X"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전쟁을 하는 것일까. 30일 오후, 한바탕 전쟁을 마치고 나무그늘 밑으로 일시 후퇴하는 그녀를 따라갔다. 최루액을 맞으면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리는 스티로폼 위에 앉아 물었다. 속된 말로 '왜 그렇게 미친 짓'을 하느냐고.
"눈앞에 공장이 뻔히 보이고, 바로 코앞에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못하는 아들이 있는데 그럼 어쩝니까. 사람들이 이야기하대요. 공권력 들어가면 '제2 용산참사'난다고. 내가 낳은 자식이 눈앞에서 불타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많이 배운 기자 양반이 좀 이야기 해봐요. 알면 좀 가르쳐 줘봐요."
그녀의 아들은 32살이다. 수학이 아닌 산수만 해도 나온다. 그녀는 16살에 지금 공장 안에 있는 아들을 낳았다. 애가 애를 낳으면 사는 게 고달픈 건 3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편견은 그들의 삶을 피곤하게 한다. 애가 애를 낳았으니 배움의 길은 쉽지 않다. 가진 것도 많지 않았으니, 많은 세월은 그 자체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공장 앞에서 싸울 때처럼 당당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어릴 때 예뻤어. 그리고 끼가 많았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췄어요. 남자들이 가만히 뒀겠어요?(웃음) 어렸지만 그래도 아들 낳고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 아들이 어깨가 벌어지고 턱에 거뭇한 수염이 날 즈음 쌍용차에 들어갔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IMF라는 괴물에 치여 픽픽 쓰러지던 1997년이었다. 그 아들은 백마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2년을 재외하고 꼬박 10년을 쌍용차에서 일했다.
그녀는 70일 전 아들이 공장 점거 파업에 돌입할 때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오랜 세월 신문은 물론이고 TV 뉴스도 보지 않고 살았다. 그녀는 "못 배워서 신문을 읽어도 도대체 알아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없는 사람들끼리 함께 힘 합칠 줄 알았는데"
그녀는 파업 소식을 들었어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아들 동료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는데 뭐가 무섭냐"는 게 그녀의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없는 놈들끼리 힘 합쳐 싸워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상식이다. 그 상식이 깨지고 파열음을 낸 건 비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그러는 거여. '당신 아들 때문에 내 아들 직장 잃게 생겼다'고. 다 함께 싸운다는데,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어요. 그래서 내 발로 공장에 와봤지. 그런데 세상에, 아들 친구들이 맨 앞에서 내 발길을 잡더라고. 그동안 내가 순진했죠."
물, 식량, 의료진 그리고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 지난 20일. 그녀는 집에서 "순진하게" 빈대떡을 부치고 있다. 공장에 있는 아들과 동료들 갖다 주려고 엄청난 양을 만들었다. 아들에게 "엄마 간다"고 전화를 했더니, 아들은 "위험하니 절대 오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출근과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이 '미친 X'이라고 부르는 거 알아요. 근데 집에 있으면 더 미쳐 버려요. 된장찌개 끓인다면서 된장도 안 넣은 채 물만 넣어 끓이고,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멍하게 앉아 있고, 밤에 잠도 못자고···.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걱정돼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아요."
그녀는 공장 앞으로 와서 "욕이라도 실컷 해야 살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공장을 찾아와 욕을 하고, 싸움을 하고, 아들이 있는 공장을 바라보고 절규를 한다. 그리고 담배를 하염없이 피운다. 집에는 밤 12시나 새벽 1시에 돌아간다.
2009년 7월 평택 쌍용차 공장 앞은 그녀의 학교다. 그녀는 "국가와 공권력이 없는 사람들 편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없는 사람들이 인간 대접 받으려면 맨 몸뚱이로 싸워야 하고, 없는 사람들끼리 함께 해야 한다는 걸 48살 먹고서야 알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차라리 밥과 물을 주고 면회도 시켜주는 감옥이 낫다"
노사 협상 시작 소식을 듣고 그녀의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그녀는 "이 잘난 회사 때려 치워도 좋다, 이젠 정 떨어져 매달리고 싶지도 않다, 밥 없으면 라면 먹으며 1년을 못 살겠냐"며 "10분이라도 빨리 아들이 무사하게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몇 개월 감옥에 가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 "밥, 식수, 씻을 물을 주면서 면회도 허용해 주는 감옥이 지금 공장보다 훨씬 좋다"는 게 그녀의 거침없는 말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 그녀는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당겼다. 그리고 아들이 있는 공장을 바라보며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그녀의 작은 가방에는 독하기로 유명한 담배 두 갑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요즘 욕, 담배, 싸움 등 나쁜 것만 늘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아들이 백마부대 나왔어. 그래서 잘 이겨낼겨. 분명히 승리하고 나올겨."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들이 백마부대를 제대한 것도 자랑이다. 그녀는 담배를 다 피우고 스티로폼에 누워 눈을 붙였다. 노숙이지만 공장 앞에 나와야 조금이라도 눈을 붙인다고 했다.
어디를 가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거칠게 욕을 하고, 맨 몸으로 싸우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렇게 없는 사람들은 미치기 싫어 미친 듯이 세상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미친 X'이라거나 젊잖게 '교양이 없다'라며 혀를 찬다.
2009.07.30 22:0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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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미친 X'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싸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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