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차린 밥상, 성찬이었습니다

등록 2009.08.02 16:12수정 2009.08.0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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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일)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4시 30분쯤 되었습니다. 우리 집 밥 먹는 시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져 있습니다. 아침 7시 30분, 점심 13시, 저녁 5시. 일년 내내 같습니다. 저녁 먹는 시간이 여름과 겨울만 되면 조금 이상해지지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가 저녁밥을 하려고 나섰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오늘은 자기들이 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엄마 오늘 저녁 밥은 우리가 하고 싶어요."
"너희들이 밥을 한다고?"
"엄마, 오늘은 좀 쉬세요."
"인헌이 너 라면은 끓여봤지만 밥은 안 해봤잖아?"

"쌀 씻어 봤어요? 쌀은 세 번 정도 씼으면 되잖아요?"
"그래 쌀은 세 번 정도 씼으면 되고."
"쌀뜨물은 모아서 고등어찌개 끓일 때 쓸 거예요."

"고등어찌개를 한다고? 네가!"
"그럼요, 할 수 있어요."

우리 큰 아들은 꿈이 요리사입니다. 라면도 끓이고, 아빠와 엄마 커피도 끓이고, 엄마가 부엌에서 일할 때 손길이 이곳저곳을 자주 갑니다. 쌀 씼는 모습을 보니 한두 번 한 모습은 아닙니다. 쌀을 씼고 나서 이 번에는 맛살전을 부쳤습니다. 맛살에 달걀을 풀어 부친 맛살 전은 참 맛있습니다.

 큰 아들이 맛살전(?)을 부치고 있습니다. 꿈이 요리사입니다.
큰 아들이 맛살전(?)을 부치고 있습니다. 꿈이 요리사입니다.김동수

옆에 있던 딸 서헌이가 오빠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학기 중 놀토만 되면 무엇을 할까 고민할 때 '요리실습'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많습니다.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앞치마한 모습을 보니 자기 엄마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맛살을 자르고, 전을 부치는 모습을 보니 요리사 되겠다는 자기 오빠보다 훨씬 낫습니다.

 딸 서헌이는 맛살을 칼로 자르고 있습니다. 방학 숙제 중 요리실습이 있다고 합니다.
딸 서헌이는 맛살을 칼로 자르고 있습니다. 방학 숙제 중 요리실습이 있다고 합니다. 김동수

 오빠보다 훨씬 맛살전을 잘 부쳤습니다.
오빠보다 훨씬 맛살전을 잘 부쳤습니다.김동수

맛살 전을 다 부치고, 나서 이번에는 고구마줄기 무침을 합니다. 고구마줄기에 젖갈과 고춧가루를 넣고 무침에 입맛 떨어지는 여름철에는 정말 군침이 돕니다. 엄마가 끓는 물에 약간 데쳐만 주고, 무침은 큰 아들이 했습니다. 형이 하는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막둥이가 자기도 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나설 때뿐 금방 되돌아 섭니다. 하겠다고 나서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누나가 하면 또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고구마줄기 무침을 하고 있습니다.
고구마줄기 무침을 하고 있습니다. 김동수

 막둥이도 나섰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막둥이도 나섰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김동수

이제 고등어찌개가 남았습니다. 흐르는 물에 고등어를 깨끗하게 씼은 후 쌀뜨물에 고구마줄기를 넣었습니다. 고등어찌개에는 묵은김치가 제격인데 고구마줄기도 괜찮습니다. 고구마줄기는 농약 하나 치지 않는 완전 무공해입니다. 어제 할머니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 더 믿을 수 있지요.


 고구마줄기를 넣어 고등어 찌개를 했습니다.
고구마줄기를 넣어 고등어 찌개를 했습니다.김동수

우리집 아이들이 가장 잘 먹는 반찬이 바로 고등어찌개와 조림, 구이입니다. 고등어찌개를 잘 먹는 이유가 고등어찌개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내가 고등어와 오징어만 사서 아이들에 고등어찌개와 조림, 구워줍니다. 오징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고등어와 오징어 말고 다른 생선 한 번 먹어봅시다."
"고등어와 오징어가 어때서요? 괜찮아요. 등푸른 생선이 아이들 성장에도 좋아요."
"등푸른 생선도 좋지만 좀 지겹지 않아요?"

"생각 한 번 해보고요."


생각 한 번 해 본다고 했지만 아직도 우리집 생선은 고등어가 80%입니다. 언제쯤 다른 생선을 먹어 볼 날이 오게 될지 막막합니다. 하지만 오늘 밥상은 아이들이 차렸습니다. 아이들이 차린 밥상이 놓였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반찬으로 밥상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반찬으로 밥상을 받았습니다.김동수

아내는 싱글벙글입니다. 고구마줄기 데쳐주고, 양념 챙겨주면서 다른 때보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더 힘들었지만 막상 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보면서 어쩔 줄 모릅니다. 맛, 궁금하지요. 정말 꿀맛입니다.

"우리 인헌이 요리사 해도 되겠다?"
"아빠 맛 있어요?"
"그럼 맛 있지."
"아빠 내가 부친 맛살전도 맛있어?"
"우리 예쁜 아이가 부친 맛살전도 당연히 맛있지. 막둥이는 무엇을 했지?"

"고구마줄기 무쳤고, 고등어 씼었어요."
"고구마줄기 무쳤다고? 우리 막둥이 수고했구나. 인헌 · 서헌 · 체헌아 맛 있게 먹을게."


아이들이 차린 밥상에서 먹은 저녁밥은 어떤 밥상보다 성찬이었고, 어떤 요리사가 만든 것보다 맛 있었습니다.
#요리 #고등어찌개 #고구마줄기무침 #맛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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