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을 찍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빚을 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작가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찍어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자연광이든 세상에 진 빚이든, 그 빚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
잊혀져가는 용산 참사를 두고만 볼 수 없어 사진가들이 나섰다. 기획자·사진작가 16명이 매해 특정 사안에 대한 환기와 소통을 목적으로 '사진 달력'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총 기획을 맡은 송수정(37)씨는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사진가들이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꾸기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사진과 함께 사회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달력을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의 공동 발의자이기도 한 작가 한금선(43)씨는 "사진으로 사회와 어떤 결합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떠오른 생각"이라고 밝혔다. 사진작가들은 최근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모임'을 꾸려 본격적인 사진 제작에 들어갔다.
달력 내용은 용산참사, 참여자들 이견은 없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용산참사는 올해 가장 시급한 문제이면서도 소외받았던 문제다."
송 기획자의 말이다.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15개월치를 담는 첫 번째 달력은 용산참사를 다룰 예정이다. 송 기획자는 "희생자가 그렇게 많이 나왔음에도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는데, 변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참여 사진가들 사이에 이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기획자 송수정씨와 사진작가 노순택·노익상·박종우·박태희·성남훈·양혜리·양희석·윤경진·이갑철·이재갑·이규철·조우혜·조재무·한금선·허태주씨 등이다. 20대부터 50대 중견 작가까지 다양하다.
참여작가 조재무(28)씨는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중요한 문제들이 자꾸 잊히는 것 같아서, '따뜻한 시선을 갖자'는 취지로 달력 제작에 참여했다"며 "참사가 그 사람들에게만 일어났을 뿐이지, 우리들 얘기고 사회전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꼭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달력엔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용산참사 사진 대신 삶의 풍경 사진이 담긴다. 송 기획자는 "누군가의 공간에 1년 동안 걸리는 거니까 대중적으로 만들기로 했다"면서도 "용산 희생자들에게 이 달력을 바칠 것이라는 언급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송 기획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바랐다. 그는 "최대한 많은 작가와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매년 70%의 작가를 교체할 것"이라며 "또한 반응이 뜨겁다면 시민들 참여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달력은 다양한 주제의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송 기획자는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모임'에서 만들어진 달력은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며 "앞으로 생태계·자연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이들 교육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이런 달력이 필요 없기를 바란다"
사진작가들은 달력 판매에 따른 모든 수익금을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전달해 현재 5억원이 넘는 장례식장 비용에 보탠다는 계획이다. 송 기획자는 "십년을 목표로 (이 프로젝트가) 계속 가기를 바라는데, 가장 이상적인 건 이런 달력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모두 1500부가 제작될 달력은 오는 9월 중순 배포될 예정이다. 현재는 기획자와 사진작가들이 달력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의논하는 단계이고, 다음 주부터 제작과 편집에 들어간다.
다음은 노순택 작가가 쓴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모임' 발의문이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그리고 달력
세상에 빚을 지지 않은 사진이, 어디엔들 있을까요
하늘도 바다도 땅도 사람도
사진이 만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챙겨왔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숨 막히는 자연의 풍경도
너무 아파, 가슴 저리는 사람의 풍경도
사진은 야금야금, 찰칵찰칵 챙겨 먹었지요
모두 빚임을 압니다
아울러 모두 빛임을 압니다
사진으로 진실을 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착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세상의 작은 사실 하나는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다만 사진으로,
세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말하렵니다
사진이 세상에 진 빚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사진의 찰칵거림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최소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각성의 속닥거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달력 1부는 1만원이며, 5부 미만은 3천원의 배송료가 추가된다. 선구매를 통한 모든 개인, 단체후원자의 이름은 달력 맨 뒷장에 표기된다. 선구매를 위한 후원 계좌는 국민은행 919302-01-490779(예금주 양혜리)이고, 입금 후 choisohan@gmail.com으로 입금자 이름, 입금액, 달력 받을 주소를 보내면 된다. 달력제작 진행사항은 블로그(http://dysphemism.egloos.com)를 통해 공개한다.
2009.08.07 17:0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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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달력 필요없는 세상 어서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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