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정리되어 줄줄이 푸른 작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 곳에서 나의 식탁에 오를 식품의 원형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줄줄이 검은 비닐로 둘러져서 주변의 풀이 나는 것을 막고 고랑의 바닥은 반질반질하게 푸른빛으로 풀 한포기 나지 않고 '관리된' 모습을 보면 과연 부지런한 농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꾸준히 다니면서 풀을 뽑아주고, 때 되면 비료에 퇴비에 곤충이 피해를 주지 않도록 농약을 뿌리는 일이 바로 오늘날의 농부들이 하는 일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풀이 수북이 쌓이고, 나비와 벌들이 잔뜩 날아 다니며 심지어 메뚜기가 뛰어 다니는 곳. 그런 곳이라면 지나다니는 농민들은 혀를 차며 도대체 이 밭의 주인은 어떻게 관리를 하기에 이 꼴로 만들어 놓는가 하며 안타까워 할 것이다.
풀은 제멋대로 자라고, 과연 이곳에 무언가 먹을 것이 심어져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고, 노는 땅인지 농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나의 텃밭이다. 도시에서 시골생활을 그릴 때부터 일본 후쿠오카 마사노부님의 '자연농법'에 관심이 있어서 실천의 방향으로 결정하고는 죽 '손대지 않는'것이 바로 농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땅을 보아 왔다.
가장 큰 유혹은 바로 주변의 핀잔과 질타의 말들. 한마디도 격려는 없으며 오로지 잘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경험 많은 농부들이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과연 내가 이곳에서 '독불장군'이 되어서야 나중에 농사를 안 짓더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는 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이 아니라 내가 살기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땅을 얻고 처음 갈아서 마늘을 심을 때 땅속에 아무 벌레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봤다. 과연 이 땅에서 작물이 자라기는 할까라고 의심하는 말을 옆에서 밭을 갈아주던 이장님이 듣고는 거름을 많이 주라고 한다.
농민들이 거름이라고 부르는 '유기질퇴비'는 엄청난 썩는 냄새를 동반한다. 완전히 발효가 끝난(잘 익은)퇴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작은 소똥, 닭똥과 각종 썩는 쓰레기를 톱밥에 섞어서 말리는 작업으로 진행된다. 전통적 퇴비는 음식물쓰레기와 사람, 가축의 똥을 모아서 켜켜이 마른 풀이나 톱밥 등을 섞어가면서 발효시키는데, 이에 반해 공장에서 대량생산체제는 기계가 인위적으로 섞고 말리기 때문에 집에서 만드는 것과 차이가 많이 나며 공정을 줄여야 하고 시간을 단축해야 이윤이 발생하고 값이 싸지기 때문에 퇴비로서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지는 것이다. 발효되는 시간이 적어서인지 '썩고 있는' 냄새가 퇴비의 온전함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전에 퇴비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본 이후로는 퇴비를 사서 쓰는 것도 애써 자제하고 있다.
황무지같은 곳의 땅의 기운이 살아나고 미생물과 곤충들이 생겨날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집을 짓느라 땅을 많이 깎아내어 생땅이 드러나고 그곳에서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거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고 자연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과 천성의 게으름이 합쳐 내가 무언가를 투입하려는 손을 막아주었다.
일 년이 지나고 나니 풀이 무성해지고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손대지 않은 땅의 경우엔 풀이 자라는 속도나 밀도가 다르다. 그곳의 땅속에는 개미를 포함해서 딱정벌레류와 메뚜기, 곤충의 유충들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지렁이는 보이지 않는다. 지렁이가 많아야 땅이 좀 더 부슬부슬해지고 영양분도 많아서 유기농 실천하는 농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벌레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관행으로 농사를 짓던 땅이 온전한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변의 생물이 살기 힘든 넓은 바리케이드들이 내 밭으로의 진입을 막는 역할도 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책에서 읽은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은 일부의 친환경을 실천하는 농가 외에는 어디에서도 할 수 없다(사실, 어떤 부분은 그들조차 이해 못할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노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게 무슨 농사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핑계로 둘러대기 일쑤다. 해야죠. 그래야죠 라고 동의하는 척하는 일이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밭이라고 말하는 곳'의 엉망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 그들도 답답할 것이다.
과일나무를 심겠다. 과일을 직접 따서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일부 방송프로그램에서 리포터나 연예인이 농사일 도와주면서 그냥 과일을 따 먹는 모습을 보면, 농약 묻은 것을 씻어 내지도 않고 먹는 모습에 인상이 그려진다. 반면 잡풀이 가득한 밭에서나 야생에 있는 열매를 따먹는 것이나 열대의 우거진 숲속에 야자수나 바나나를 따서 먹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편안하고 입에 군침을 돌게 한다. 농약이 없는, 야생의 과일. 얼마나 맛이 있을까.
전에 살던 집에 자라던 감나무엔 농약을 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단감이 주렁주렁 열려서 따먹으면 그렇게 달고 맛이 있었다. 감농가에서 이야기하는 그 많다던 깍지벌레도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그루씩 집 앞에 심어놓은 과일나무는 농약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었다. 그런데 과수원을 하면 왜 농약이 필요할까? 엄청난 벌레들의 공격과 툭하면 걸리는 병이 잎을 마르게 하고 나무의 뿌리를 상하게 한다. 잎이 지고 꽃이 피지않으니 '농약'을 쓰지 않으면 이년 안에 수확량 '제로'가 되는 것이 과수원의 공식이라 한다.
특히 사과. 백설 공주의 독약이 묻은 사과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농약으로 범벅이 된 사과의 독성 때문이다. 지금도 엄청난 과일을 수입하고 있지만 개방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과가 앞으로 수입이 되면 그 독성은 한층 배가될 것이 뻔하다. 수확 후 보관을 위한 약제처리가 농사지을 때 적절히 그 양을 조절하는, 벌레 죽이는 농약보다 훨씬 많은 양이 투입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사과를 약 없이 재배한다고? "말도 안 돼" 하며 사서 읽게 된 책이 '기적의 사과'이다. 농업서인가 하다가 어느덧 그의 인생에 빠져든다. 인물 평전의 느낌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눈물을 두 번이나 흘리게 만든 한편의 소설 같은 드라마다
곳곳의 예쁜 그림과 맛있게(?) 쓰기도, 번역도 매끄럽게 잘 되어 그런 것이기도 하겠다. 무엇보다도 인간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사과 재배 농의 젊은 때가 후회와 끝없는 실패로 점철되다가 9년이라는 긴 처절함 끝에 마치, 신이 은총을 내린 것처럼 성공하게 되는 과정이 열편의 감동적인 영화보다 더한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현재 '기적의 사과' 판매자이자 다양한 유기농법 강의로 바쁜 기무라 아키노리씨는 사과농사가 전략작물인 아오모리 현에서 나고 그곳에서 농사로 평생을 보냈다. 실업고를 졸업하고 도시에 취업하였는데 장남이 가업을 잇지 않아서 차남인 그가 고향으로 불려 내려갔다. 결혼과 함께 데릴사위로 농업을 시작하는데 주력작물은 옥수수와 사과였다. 당시 최신의 트랙터를 영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할 만큼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복잡한 엔진도 분해해서 수리하고 성능을 높이기 위해 뜯어서 재조립하는 일들을 자유자재로 할 만큼 재주가 있었고 열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서점에서 책을 사다가 우연히 떨어뜨려서 같이 사게 된 책이 그의 인생을 바꾼다. 표지도 밋밋하고 제목도 딱딱해서 한쪽 구석에서 먼지받이로 있다가 일년여만에 읽게 된 책, 그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다가 신선한 충격에 휩싸인다. 다른 것도 가능하다면 사과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한다. 13회 주던 약제를 1회까지 줄이다가 결국 무농약을 위해서는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결심하고는 농약을 끊기에 이른다.
1978년에 무농약으로 시작해 몇 년 동안 네 가족의 매일은 벌레와의 전쟁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장인 장모, 부인과 본인이 나무에 매달려 한손에 비닐봉지를 꿰고 벌레를 잡아서 넣는 것이다. 평균 한 나무에 세 봉지가 잡힐 만큼의 엄청난 '해충'과 싸우는 일 외에 병 예방을 위한 식초뿌리기로 몇 년, 나무는 시들어가고 뿌리는 흔들거리고, 잎도 나지 않고, 꽃도 피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은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주세요"
일본 만화에서나 봄직한 사물과 대화하는 사람의 모습. 누군가 봤다면 저이가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무마다 붙잡고 말로 애원하는 때에는 이미 자신의 할 일을 더 이상 없으며 그저 '나무의 의지'만 기대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결국 파산과 빚에 쫒기는 가족의 불행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의 세월, 죽음을 결심하게 되고 한밤중에 산속으로 밧줄 하나 들고 오르다가 눈에 뜨인 도토리나무를 사과나무로 잘 못 보게 된다. 그 잘 익은 도토리 열매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흙 가꾸기'에 힘을 쏟는다. 최대한 자연 상태를 잘 유지해 주어서 '야생성'과 그 기본이 되는 흙의 힘(땅심)을 기르고, 내버려 두는 것과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 여기고 '방치'가 시작된다.
또 2년의 기다림, 결국 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때의 감격은 그의 것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불가능한 것'을 위해 도전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것이 자연속의 인간을 이해하는 한걸음이었을 때 더 진한 감동의 향기가 풍긴다.
실천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일본 땅 어딘가와 우리 땅 어느 곳에서인가 말없이 묵묵하게, 주변의 핍박(?)을 견뎌내며 '자연속의 농사'를 실천하고 있을 그들에게 힘내시라고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김영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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