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연
의외로 그녀의 브라운관 데뷔는 빨랐다.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1994년 SBS 공채 1기 MC로 데뷔했다. 그녀의 동기로는 황수정씨와 조영구씨, 지석진씨가 있다.
"그 당시 저는 길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황수정씨는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서 부러웠어요. '운이 트이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죠. 전 MC와 리포터로 일하다가 그런 이미지가 강해서 (이미지를 벗기 위해)잠시 공백기를 가졌어요. 드라마를 하려고 했거든요. 그 후 2001년 <불꽃>이라는 드라마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사이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엇비슷한 나이의 연기자가 연기가 무르익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초조한 거죠. '나에겐 왜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드라마도 못 봤고요." 걱정돼서 드라마도 못 봤다니, 드라마를 통해 봐오던 그녀의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와 상반된 대답이다. 하지만 그녀는 학창시절엔 조용하고 내성적인 막내였다고 한다. 지금도 카메라 앞에서 말하고 연기하는 게 신기하다는 친구가 있을 정도.
"어렸을 때는 배우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굉장히 내성적이었거든요. 손 들고 발표도 못할 정도로. 지금은 사회생활, 드라마 하면서 많이 바뀐 거예요. 그래도 언니(유혜리)와 있으면 다시 그 때 성격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언니와 노는 것보다 저를 봐주는 입장이었어요. 많이 예뻐해 주고, 많이 챙겨줬어요."최근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최수린씨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결혼'한 여배우는 '한물갔다'고 여겼다. '결혼을 하면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들' 때문인데, 최수린씨도 이런 '이상한 생각들'이 만들어낸 피해자였다.
"처음 소속사가 있을 땐 분위기가 그랬어요. 결혼을 하면 한물갔다는. 그래서 굳이 묻지 않을 때까진 말하지 말자 했어요. 하지만 그 후로 소속사 없이 직접 인터뷰할 땐 거짓말 할 수가 없었죠. 언니는 '왜 그런 걸 속이냐'며 '더 배역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충고해줬는데 그게 맞는 말 같아요. 지금은 일하면서 아이를 못 볼 때가 많아요. 친정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아이를 봐주시는데, 엄마를 불러보고 싶다고 할머니한테 '엄마, 엄마'했다고 할 때는 가슴 아파요.""최수린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10분, 20분, 30분…. 시간이 지날 때마다 더욱 생기 있어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악녀 화진을 떠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가 욕심내는 배역은 어떤 것일까. 의외로 최근 방송된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자신이 맡았던 '윤섭모'역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그녀는 "아직은 차기작이 정해진 게 없지만 앞으론 언니 유혜리와 이혜영 선배님, 김희애 선배님과 같은 고급스런 역할도 해보고 싶다"며 "내가 못되게 생겼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화장 약하게 하면 순해 보인다"고 웃으며 말했다.
'존경하는 배우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혼자 골똘히 고민하던 그녀는 딱 한명을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 만난 주위 배우들 모두가 그렇다고 말했다. 최씨는 "(드라마나 영화를)하다보면 잘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경숙이 경숙아버지> 조희봉 선배도 좋은 분이시고, <밥줘>에서 같이 연기하는 하희라씨도 철두철미하게 연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브라운관에 머문 그녀.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것만큼 연기에 대해 회의를 느낄 것도 같은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엔 급 방긋하고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오래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아직은 절 봐도 아이 엄마라는 걸 모르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딱 봐도 '이제 아줌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제 연기 인생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