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서울시가 도심 교통난 해결을 위해 지하 40~60m 깊이에 대심도 (大深度) 도로 6개 노선을 서울 도심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울시 발표에 의하면 2010년 동부간선도로 지하도로를 2017년 우선 개통하고, 나머지 5개 노선은 민자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예산도 6개 노선의 총 길이 149km를 건설하는데 무려 11조200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서울시가 대심도 지하도로 건설과 관련해 몇 년간 검토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과연 얼마나 심도 있게 따지고 검토했는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우려를 할 수 밖에 없다.
녹색성장과 시대에 역행하는 교통정책
첫째, 서울시가 그동안 교통수요관리 즉 근본적으로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십수년간 추진해온 정책 기조를 버리고 또 다시 도로건설공급 위주의 교통정책으로 회기 하는 정책이라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서울시버스개편을 통한 대중교통서비스 개선, 백화점과 같은 대규모교통유발시설에 대한 교통유발부담금 부과 및 기업체 수요관리, 주차상한제, 기존 남산 1,3호 터널에서 실시되고 있는 혼잡통행료 확대 검토 등은 교통수요를 근본적으로 줄여 서울의 교통혼잡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도로건설 공급위주였던 이전의 서울시 정책의 한계를 확인한 후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제시되고 시행되어 왔던 제도들이다.
우리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 대규모 도로 공급이 일시적으로는 교통혼잡완화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신규 수요를 발생시켜 결국 더 심각한 혼잡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일시적으로 소통이 원활해지는 효과가 발생되더라도 결국 교통량이 증가하게 되어 그 효과를 상쇄해버리는 것이다.
서울시는 기존 도로의 교통량을 20%정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서울시의 말대로 기존교통량을 20%분산하는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신규 교통량의 증가가 미미한 수준이거나 없어야 할 것이다. 대심도 도로를 이용하는 교통량이 증가한다면 새로운 혼잡을 야기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다.
현재 승용차의 교통수단 분담율은 2007년을 기준으로 26.3%정도이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10대중 6~7대는 승용차이다. 교통수단 분담율이 승용차보다 높은 지하철의 에너지 소비율은 10%대인 반면 승용차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는 50%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용차만이 이용할 수 있는 신규 도로가 건설된다면 서울의 승용차 교통수단분담율 등 승용차 의존도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교통혼잡의 해결이 아니라 혼잡의 이전
둘째, 도심 곳곳에 진출입로(IC)가 건설되면 그 주변도로의 혼잡으로 인한 지상도로의 정체뿐만 아니라 대심도 도로 내의 혼잡도 발생해 결국 기존의 혼잡구간이나 혼잡지역이 이동될 뿐 도심 내 혼잡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부순환도로 등 서울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나타나고 있는 병목 및 정체 현상은 대부분 진출입 교통량이 많은 지점이나 구간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재 발표된 내용대로라면 대심도 도로의 시종점은 대부분 서울시계 부근에 위치하게 되어 서울 도심내의 혼잡이 시계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서울시의 교통혼잡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경기도에서 차량이 유입되는 지점의 혼잡이 새롭게 발생하게 될 것이다.
도심내의 진출입로나 시계부근의 시종점 주변뿐만 아니라 새롭게 건설될 지하주차장 부근의 혼잡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교차로나 신호 없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는 교통량을 지하주차장이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교통량이 집중되는 출퇴근시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다. 주말이나 세일기간 중 시내 백화점 주변의 혼잡과 정체를 보면 어떤 모습이 될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현재 지상도로의 교통혼잡 지점이나 구간이 다른 곳으로 이전될 뿐 근본적인 교통혼잡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주말의 고속도로 정체나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으로 인해 터널 안에서 몇십분씩 자동차 안에 갇혀있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하도로 안에서의 혼잡이 어떨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막대한 예산 소요되고 재원 마련 쉽지 않을 것
셋째, 11조 2천억원이나 투입되는 재원을 어떤 식으로 마련할지도 궁금하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건설하되 나머지 5개노선은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해결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선별로 최소 1조원에서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건설사는 결국 일부 대기업 밖에 없지 않겠는가? 또한, 이전에 비슷한 규모의 국책사업의 사례를 보아도 초기 예상한 비용보다 2~3배 이상 예산이 소요되는 것을 볼 때 11조 원 이상이 들어갈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혹시 지하 40~60m 깊이에 어떤 공사의 장애요소가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민자자본을 유치하여 건설했다고 해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의 민자도로의 문제점에서 보듯이 일정 정도의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통행료 징수로 인하여 이용자가 많지 않아도 문제이다. 손실보존이 몇%이고 얼마인가를 떠나 결국 부족분을 국민세금으로 보존해주어야 한다. 이용자가 적어 손해가 나도 문제이고 이용자가 많아 새로운 혼잡이 발생해도 문제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재 서울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의 도로나 시설 공급이 불가피하다면 강남순환도로 착공을 앞두고 있고, 7개 경전철 노선과 5개 민자도로 건립 계획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로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지하도로를 만드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도 지울 수 없다.
터널 내 대형 화재, 사고에 대해 안전한가?
넷째는 지하 깊숙이에 있는 터널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나 사고에 대처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일정한 간격으로 대피시설 등을 설치한다고 하지만 사고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구지하철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대구지하철의 경우 서울시가 건설하고자 하는 도로 깊이의 1/2이하였음에도 방재시스템 및 체계 미비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터널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의 배기가 한계가 있고 또한 터널 내 화재로 인한 열이 축적되어 주변으로 화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
도심에 수많은 굴뚝을 설치한다?
다섯째, 앞에서 화재 및 사고 등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환기시설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환기구를 만들어야 화재대비도 가능하고 터널 내 환기도 필요한 만큼 가능할까? 안전이나 터널 내 환경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환기구가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서울시가 건설하고자 하는 대심도 도로는 도심 안에 건설될 예정이어서 결국 도심 내 대규모 환기구 설치가 불가피하다.
지하공간을 개발함으로 인해 토지보상 등의 민원은 줄어들지 모르겠으나 결국 자기 집 앞에 자동차배출가스가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환기구를 설치한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이를 반기겠는가? 외국의 사례를 보면 주택가 내 녹지공간에 터널환기구를 설치한 지역 아이들의 천식발생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사례도 있는 상황이어서 결국 또 다른 환경문제나 민원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국민세금은 쌈짓돈?
마지막으로 설사 서울시가 발표한 대로 기술적으로 건설이 가능하고 재원마련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11조2천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어떠한 여론 수렴의 절차 없이 서울시가 일방적이고 독자적으로 발표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공적자금으로 건설하든 아니면 민간자본으로 건설하든 엄청난 규모의 국민세금이 대심도 도로 건설에 소용될 것이 자명하며, 건설이 끝나고 나면 유지보수, 통행료 보존 등의 적지 않은 비용이 결국 국민들의 세금에 의해 충당될 것이다.
혹여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의 막개발 헛공약이라면 더욱더 심각하게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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