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향해 칼부림하는 '4대강 살리기'는 '사기'

시인 임수생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 펴내

등록 2009.08.12 16:48수정 2009.08.13 15:09
0
원고료로 응원
a 원로시인 임수생 시인 임수생(69)이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푸른별)를 펴냈다

원로시인 임수생 시인 임수생(69)이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푸른별)를 펴냈다 ⓒ 이종찬

▲ 원로시인 임수생 시인 임수생(69)이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푸른별)를 펴냈다 ⓒ 이종찬

 

배 두드리며 잘사는 종놈보다

못살더라도 주인이 훨씬 낫다

남쪽 권력층과 우익 패거리들은

미국이란 나라가

바람이 심한 날 눈에 티가 들어가

눈빛을 약간만 달리 해도

알아서 벌벌 기는

종놈 시늉에 익숙해져 있어

민족의 자존심은 알바 아니란다

 

-68쪽, '못 살아도 주인으로 살아야' 몇 토막

 

시력 50년... 일흔 나이에 여덟 번째 시집을 펴낸 원로시인 임수생. 시력 50년이라면 웬만한 시인들은 시집 열 권 이상을 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임수생 시인은 다르다. 시집을 많이 펴냈느냐, 적게 펴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집 한 권에 얼마나 좋은 시가 많이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수생 시인은 공산주의자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일까. 그가 쓰는 시는 예나 지금이나 현실과 마빡을 부딪치고 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주어진 현실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시는 그 어디에도 없다. 까닭에 시집을 낼 때마다 정보계통으로 끌려가 호된 조사를 받아야 했다.

 

1960년 4.19혁명 때에는 부산에서 맨몸으로 부정한 권력과 싸웠으며, 1979년 10월 항쟁 때에는 국제신문 기자로, 1987년 6월항쟁 때에는 부산일보 기자로 거리에 나섰다. 1988년 7월에는 격시 '연필은 총칼 앞에 굴하지 않는다'를 부산일보 노동조합 쟁의특보에 실어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언론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전면파업을 이끌기도 했다.   

 

내가 임수생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끝자락 민족문학작가회의 행사 때였다. 그때 처음 만난 시인은 깔끔한 신사복을 입은 엘리트로 보였다. 하지만 술잔이 몇 번 오가고 나자 외모와는 달리 우리 정치 사회를 거침없이 공격하는 지독한 전사로 바뀌었다. 시인 임수생은 그렇게 나에게 새겨졌다.

 

그 뒤 여러 행사장에서 먼발치 혹은 가까이서 자주 만났다. 지난 7월 9일(목)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49재 추모행사에서도 그를 만났다. 그날 만난 그는 다짜고짜 나를 이끌고 목로주점에 들어가 막걸리를 한 잔 따라주며 "민중과 권력이 서로 엇박자로 굴러가는 이 나라가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 모르것다"라며 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시는 동시대 삶의 표현이며 역사의 증언이자 기록

 

"나는 자라면서 부모의 사상문제로 정보기관의 모진 구박과 탄압에 시달렸다. / 공산주의자였던 나의 아버지는 감옥소를 들락거리더니 6.25가 일어나기 1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고, 사상범으로 부산감옥소에서 감옥살이까지 한 나의 어머니는 자나깨나 민족통일을 열망하다 그 뜻도 이루지 못하고 2001년 9월 27일 한 많은 삶을 83세로 마감했다"-'시집을 내면서' 몇 토막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 임수생(69)이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푸른별)를 펴냈다. 모두 48편이 실려 있는 이번 시집에는 '4대강 살리기'라고 말만 은근슬쩍 바꾼 대운하와 환경파괴, 모국어, 한미자유무역협정, 주택재개발사업, 남북통일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따스한 사랑이 교차하고 있다. 

 

제1부 '예전 그대로'에 실린 봄편지, 여름편지 등 8편과 제2부 '금정산은'에 실린 밤하늘의 별들이여, 물터 가는 숲길 등 8편, 제3부 '모국어여, 슬픈 모국어여'에 실린 사이시옷 비판, 우리는 실험용 동물이 아니다 등 8편, 제4부 '못살아도 주인으로 살아야'에 실린 광고탑의 모델, 한미자유무역협정 등 8편, 제5부 '주택재개발사업'에 실린 개미들의 죽음, 이주 등 8편, 제6부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 실린 우리는 누구인가, 북녘땅 등 8편이 그것.

 

시인 임수생은 "시는 동시대의 삶의 표현이며 역사의 증언임과 동시에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조국통일과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시를 쓰면서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했다. 따라서 나는 역사철학과 혁명철학이 강하게 표출되는 시대정신과 실천정신에 뿌리를 두고 창작을 한다"고 말했다.

 

a 시인 임수생 이번 시집에는 '4대강 살리기'라고 말만 은근슬쩍 바꾼 대운하와 환경파괴, 모국어, 한미자유무역협정, 주택재개발사업, 남북통일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따스한 사랑이 교차하고 있다

시인 임수생 이번 시집에는 '4대강 살리기'라고 말만 은근슬쩍 바꾼 대운하와 환경파괴, 모국어, 한미자유무역협정, 주택재개발사업, 남북통일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따스한 사랑이 교차하고 있다 ⓒ 이종찬

▲ 시인 임수생 이번 시집에는 '4대강 살리기'라고 말만 은근슬쩍 바꾼 대운하와 환경파괴, 모국어, 한미자유무역협정, 주택재개발사업, 남북통일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따스한 사랑이 교차하고 있다 ⓒ 이종찬

 

강과 산이 죽으면 흙도 죽고 사람도 죽는다

 

"물길은 예전 그대로 /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 / 강물은 예전 그대로 / 자연스레 흘러내려야 한다 / 물길을 돌리고 / 물길을 막아 / 강물의 숨통을 / 단숨에 끊어버리는 일은 / 이제라도 멈추어야 한다 /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 강을 향해 칼부림하는 / 철학 부재의 한심한 사람아" -12쪽, '예전 그대로' 모두

 

시인 임수생은 수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 '4대강 살리기'라고 이름만 은근슬쩍 바꿔 밀어붙이고 있는 대운하는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 강을 향해 칼부림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꼬집는다. 이 시에서 "철학 부재의 한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6~70년대 전근대적인 '시멘트 경제론'만 알고 있는 2MB다.

 

그는 2MB를 '정치가 무엇인지 / 사기가 무엇인지 / 구별도 못하는 사람'(환경파괴론자)이라고 못 박는다. 그에게 있어 2MB가 밀어붙이는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2MB는 "정치는 사기이고/ 사기는 정치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며 "콘크리트가 무엇인지 / 알지도 못하고 / 흙과 콘크리트를 동일시하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강과 산은 정성스러움이 무르익는 오붓한 형제자매이자 역사의 터전이며 우리들 삶의 명줄이다. 그는 말한다. "무조건 생땅을 파헤쳐 / 전 국토를 콘크리트로 뒤덮어버린다면 / 흙은 어떻게 숨을 쉴 건가"라고.

 

그렇다. 강과 산이 죽으면 흙도 곧 죽는다. 강이 죽고 산이 죽고 흙이 죽은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과연 살 수 있을까.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처럼 "사람도 자연의 한 조각"이기 때문에 자연이 죽은 땅에서는 사람도 죽는다. 우리가 2MB가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살리기'가 곧 '4대강 죽이기'라며 두 팔 걷어붙이고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력이 살면 자연이 죽는다

 

"한때는 털이 엉성한 청설모가 /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 다람쥐를 잡아먹는다는 속설 때문에 / 나는 멀리하고 싫어했지만 / 이제는 청설모도 드문드문 / 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가끔씩 보이는 청설모도 / 먹이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 먹이를 찾지 못하면 /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 도토리나무나 소나무에 올라가 / 잔가지를 툭툭 꺾어 /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기 일쑤다"-35쪽, '청설모 1' 모두

 

나도 한때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며 청설모를 몹시 미워했다. 산에 오르다가 청설모가 보이면 돌멩이를 던져 쫓아버리곤 했다. 근데, 지금은 어떠한가. 가까운 산에 오르면 다람쥐는커녕 그렇게 흔했던 청설모조차도 쉬이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모두 대자연을 사람 편리 위주로 마구 파헤쳐 환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시인 임수생은 환경이 무너지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청설모가 먹이를 찾지 못해 잔가지를 툭툭 꺾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담긴 메시지다. "금정산 비탈에는 / 벌목을 당해 토막시체가 되어 / 두꺼운 푸른 포장비닐을 덮어쓴 / 소나무 무덤"(소나무 무덤)도 환경 적색경보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들은 시인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내 죽음을 슬퍼 말아라 / 내 죽음은 / 한반도의 짙푸른 숲을 살리기 위함이니라"라고. 시인은 소나무 무덤을 바라보며 "자연을 철저하게 망치는 장본인은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왜? 자연이 살면 권력이 죽고, 권력이 살면 자연이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 국민보다 경찰을 더 믿고, 자연보다 개발을 더 섬기는 정치가 절대 권력이다. 경찰보다 국민을 더 믿고, 개발보다 자연을 더 섬기는 정치는 절대 권력이 아니다. 국민의 말을 무시하고, 대자연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권력이다. 2MB 정권 들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자꾸만 귓가에 쟁쟁 울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a 시인 임수생 그에게 있어 2MB가 밀어붙이는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시인 임수생 그에게 있어 2MB가 밀어붙이는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 이종찬

▲ 시인 임수생 그에게 있어 2MB가 밀어붙이는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 이종찬

 

한글은 우리나라 두뇌이며, 심장이며, 핏줄의 피다

 

"문법의 주인이 말과 글인데도 / 말과 글을 문법의 종으로 만든 / 철딱서니 없는 한글학자들 / 민족의 언어정서를 내동댕이치고 / 자기들 고집만 부리는 한글학자들 / 수도물이지 무슨 수돗물인가 / 소시적이지 무슨 소싯적인가 / 공기밥이지 무슨 공깃밥인가 / 교통체증이지 무슨 교통쳇증인가 / 나무잎이지 무슨 나뭇잎인가" -42쪽 '사이시옷 비판' 몇 토막   

 

시인 임수생은 2MB 정권이 웃통 벗고 밀어붙이고 있는 영어정책을 한글 문법을 제멋대로 바꾸어놓은 '철딱서니 없는' 한글학자에 빗댄다. 문법을 만든 주인은 말과 글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다른 언어로 공부하고 돌아온 한글학자들이 말과 글을 문법의 종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글을 서구식 표현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에게 비치는 한글은 "일부 정치가들의 미국 종속논리에 의해 / 제자리를 잃어가는 모국어"이며, "영어몰입교육으로 / 우리 모국어를 짓밟고 / 미국에 마음과 몸을 파는 / 노예근성의 극치"(모국어여, 슬픈 모국어여)이다. 시인은 핏대를 세운다. "일제 36년간에도 /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의 말과 글을 / 말살하지 못했거늘"이라고.

 

그렇다. 한글은 우리나라 정신이며, 철학이며, 민족정서다. 한글은 우리나라 두뇌이며, 심장이며, 핏줄의 피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조직적이고 조화롭게 짜인 탁월한 한글을 왜 "미국에 넘겨줘 파쇄하려고 덤비는가". 시인에게 있어 영어 몰입교육은 곧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는 심정"이며, "아침햇살도 서글픔이 도가 넘쳐.../ 쓴웃음" 짓는 일이다.

 

시인 임수생이 펴낸 여덟 번째 시집 <사람이랑 꽃이랑 하나가 되어>에는 대운하, 환경,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자유협정에 따른 신노예 근성, 주택재개발사업이 빚어낸 서민들의 한과 눈물, 남북화해 등,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속내를 속속들이 훑어내고 있다.   

 

"민족의 삶을 위한 체결인지 / 종속을 강화하기 위한 체결인지"(한미자유무역협정)라거나 "군에 입대한 병사들도 아닌데/ 이주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 재개발지구의 착하고 어진 주민들"(잘 있거라 동식물들아), "내 부모의 사상의 고향 / 북녘땅 / 나는 난생 처음 북녘땅을 밟아보았다"(북녘땅) 등이 그러하다.

 

시인 임수생은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나 1959년 <자유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경향신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했다. 시집으로 <형벌> <깨꽃, 그 진한 빛깔의 철학> <절실함은 무엇인가> <혁명철학> <진달래꽃 한아름 보듬고서> <개망나니들의 노래> <바람아 구름아 새들아>가 있다.

 

부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시분과 위원장, 부회장을 거쳐 5.7문학협의회 회장,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공동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자문위원, 국제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부산일보 기자, 부산시인협회 회장, 부산금정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 등을 두루 맡았다. 부산시 문화상, 부산시인협회 본상을 받았다. <시와 자유> 동인.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2009.08.12 16:48ⓒ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시인 임수생 #사람이랑 꽁이랑 하나가 되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