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김구 주석과 찍은 사진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역사 왜곡은 일본 우익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짜 역사 왜곡의 주역들은 남한의 보수우익세력들이다. 김구 선생은 요즘 오사마 빈 라덴과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5년이면 끝나는 정권이, 길게는 단군 이래 5천년의 역사를 짧게는 광복 이후 64년의 역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복절'을 이름도 이상한 '건국절'로 바꾸려하는 시도가 바로 그렇다. 국가의 정통성과 민족의 뿌리를 부정하면서, 식민지 시대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뭐길래?
그들이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이 아니라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항일독립투쟁과 김구 선생이 아니라 조선총독부나 미군정에 기생했던 친일파와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진 독재정권에서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후원자는 미국이고, 건국의 아버지는 이승만이고, 부흥의 아버지는 박정희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애석한 일이겠지만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나라의 정체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도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선언에서 따온 것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국가정체성과 법질서 확립을 말하지만,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그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다른 나라의 보수 세력과는 달리, 외세와 사대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은 한국적 보수의 기원적 속성이다. 그들은 정통 민족주의 보수주의자인 김구 선생마저 빨갱이로 모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변종우익'인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대신 김구 동상이 들어서야역사가 이 모양이니, 무언들 하나 제대로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최근 서울 광화문 광장이 새로 단장됐다고 해서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왜 우리나라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에 독립운동가 김구와 무명의 독립운동가 동상은 없는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보면 시내 중심지에 수흐바토르 광장이 있고, 수흐바토르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칭기즈칸 광장이나 칭기즈칸 동상이 아니다. 수흐바토르는 1921년 중국과의 무장투쟁을 통해 몽골을 해방시킨 독립투사이며 오늘날 몽골인민공화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세계를 호령했던 칭기즈칸이 몽골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최고의 영웅일지 모르지만, 공화정 체제로 거듭난 몽골인민공화국의 영웅은 수흐바토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 광화문에는 '독립'과 '공화정'의 상징인 김구 선생이나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의 동상이 아니라,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조선시대부터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8년 4월 세워진 것이다. 광화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서지 못하고,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박정희 정권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로서는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외국과 같이 독립투사의 동상을 세울 수는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군인 이미지에 맞는 이순신 동상을 세우도록 한 것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그해 8월 남산에 백범광장공원을 지정하고 김구 선생의 동상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뜬금없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남산 자락에 김구 동상은 세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해방 이후 뒤틀린 우리 역사가 자행한 비극적 현실이다.
서울의 광복로와 독립로는 어디에 있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모든 나라의 수도의 중심거리는 예외 없이 그 이름이 광복로나 독립로다. 그리고 그 광복로의 거리에는 독립운동가와 해방투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들 나라의 해방은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국민(인민)이 주인이 '공화정'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방은 그들과 다른 것인가?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서 광복로와 해방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서대문의 독립문은 일제로부터의 '독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중국 상하이에서 찾아야 할까 아니면 만주벌판에서 찾아야 하나.
서울 한 복판의 세종로와 태평로 거리는 이름부터 광복거리나 독립거리로 바꿔야 한다.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 광장의 중간에는 새로 들어설 세종대왕 동상 건립 터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광화문 광장에 새로 동상을 세운다면, 당연히 김구 동상을 세워야 한다. 세종대왕은 현재의 덕수궁에 그대로 놓거나 다른 거리를 세종로로 바꿔 그곳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도 충무로로 이전해 추앙하면 된다. 역사의 영웅들도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지폐에 독립투사가 한 명도 없는 유일한 나라어디 김구 선생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이 뿐이랴. 올해 발행키로 했던 백범 김구를 모델로 하는 10만 원권 고액지폐 발행이 연기됐다. 정부의 해명은 뒷면에 넣기로 한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에 독도가 없어 논란이 일어 연기한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10만 원권과 5만 원권에 이승만과 박정희를 넣으라는 일부 우익세력들의 집요한 압력 때문이라는 의혹이 또 한편에 있다. 이 또한 해프닝이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 중에서 자신의 나라 지폐에 독립투사가 한 명도 없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광복거리의 독립투사처럼 세계 어디를 가도 그 나라의 지폐에는 앞면에 독립운동가의 얼굴이, 뒷면에 그 나라의 문화유산이나 고유한 동물이나 식물이 실려 있다. 내가 몇 년 전 배낭여행했던 아프리카 국가들도 모두 그렇다. 지폐는 단순한 상품의 거래수단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지폐속의 세종대왕이나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동전 속의 충무공 이순신 등은 훌륭한 우리의 조상이다. 그러나 화폐는 나라의 얼굴이자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체제의 역사적 정체성, 즉 민주공화정 체제를 우선적으로 반영한다.
아프리카 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독립투사를 지폐의 얼굴로 쓰는 것은 그들이야 말로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 건설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발행된 5만 원권의 경우에도 초상화가 새겨진 신사임당은 훌륭한 여성이지만, 지폐가 갖는 역사적 정체성을 생각했다면 당연히 유관순 누나가 먼저 들어갔어야 했다.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광복절외국에는 독립영웅이나 국가적 영웅들의 이름을 딴 도시나 국제공항도 많다. 베트남의 호치민시도 있고, 미국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이나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도 있지 않은가. 우리라고 인천 국제공항을 김구 국제공항으로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구 기념관조차도 무려 서거 53년만인 지난 2002년에야 서울 효창공원에 세워졌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뿌리는 어디론가 한참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세계에서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맞서 투쟁을 한 독립투사들이 해방 이후 가장 홀대 받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광복절을 맞아, 이제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일부 보수우익세력들이 벌이는 역사왜곡은 아예 역사말살에 가깝다. 옛날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도 하지 않았던 '역사 바꿔치기'를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역사는 왜 이리도 뒤틀리고 거꾸로 가고 있는지.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강국은커녕, 우리는 지금 정권이 바뀌었다고 아예 국사 교과서까지 뜯어고쳐 나라의 기틀마저 흔드는 누더기 역사를 보고 있다. 추운 겨울 압록강을 건너며 언젠가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리라는 꿈을 만주벌판에 묻어야 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 앞에, 광복절 오늘 우리는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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