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나라 국민의 수준을 보려면 그 국민이 어떤 인물들을 기리느냐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조갑제는 독재와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이승만의 동상을 세종대왕을 밀어내고 큼지막하게 광화문에 세우자는 주장이었지만. 뭐 그랬었다.
물론 내가 존경하는 인물과 조갑제가 존경하는 인물이 같지도 않고 같을 필요는 없다. 역사책에 나오는 분량만큼 존경받을 필요도 없고, 종교도 아닌데 존경하는 인물의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게 보면 어떤 인물을 기리느냐는 국민의 수준을 나타내기 보다는 국가의 수준을 나태내는 것이 아닐까?
가령 전후 국가경제를 획기적으로 되살린 인물을 찾아보면, 한국의 박정희와 독일의 히틀러가 있다. 독재와 억압, 전쟁과 폭력을 통해 한국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국에서 파시즘동맹의 맹주로 떠올랐다. 둘의 차이라면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킨 끝에 패전했고, 박정희는 파병의 핏값만을 챙겼다는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독일 국민들은 지금 히틀러를 한국의 박정희만큼 찬양하고 있을까? 그 무시무시한 파시즘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렸으니 위인으로 기려질까?
한국에서는 무수한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 금지되고 억압되지만, 유럽국가답게 독일은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는데, 이런 독일에서 금지되는 몇 안되는 표현중 하나가 파시즘을 찬양하는 행위라고 한다. 적어도 독일의 국민들은 무엇을 기리고, 무엇을 비난해야 하는지는 아는 모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는 박정희의 정적으로 암살될 뻔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파시즘과 그다음 전직독재자들의 독재를 끝내는데 역할을 해낸 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존경받고 기려져야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고 대통령 자리에 앉는 과정은, 그가 대통령직을 잘했든 못했든 간에, 대한민국이 박정희 전두환 등등의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세워낸 과정 자체나 다름없다.
그런 김대중의 말년을 대한민국은 어떻게 기렸던가? 그가 한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대상들을 다시 대한민국의 국부니 경제발전의 영웅이니 하며 다시 복권시켰고, 반대로 김대중에게는 '치매난 노인네'라는 독설을 안겼다. 그의 정치적 유산을 이은 다음 대통령은 가장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공세를 당했다.
개인적으로 그 생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것은, 박정희와 그 다음 독재자들을 되살리기 위해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죽였던 이들에 의해 '강제화해' 당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안타깝고 생각만 해도 화날 일은, 그와 화해했네 했던 인물들이 또 박정희와 그 다음 독재자들을 살리느라 죽은 김대중을 또 죽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순간도 김대중의 유산인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에서 계속 제거되고 있다. 앞으로 국가행사에 전직 대통령이라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만 줄줄이 앉아 있을걸 생각하니 끔찍하기 그지 없다.
경찰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 설치를 막느라, 최근 트랜스포머로 개조한 닭장차로 또 광장을 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청와대를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일을 한 전직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광장을 열라는 국민들 요구도 못들어주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며, 그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기려야할 진짜 대통령 김대중을 대하는 태도다.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돌덩이로 만들어서 광화문 대로에 기리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국민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음으로 기리고자 한다.
제발, 그냥 광장 한 귀퉁이만 열어달라.
2009.08.18 20:27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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