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살리기'김대중 살리기'(박용수 외 저, 시와사회사)
시와사회사
'김대중 죽이기'에 이어 1995년 5월, '김대중 살리기'(시와사회사)가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영남지역에 거주하거나 그 지역 출신 문인들 17명이 최초로 고백한 내용들이어서 더욱 주목을 끈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앞서 출판된 '김대중 죽이기'란 책에서 미처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던져 주었다.
영남인들은 김대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점이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또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 어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은 문인들이 펴낸 자기고백서에는 김대중과 전라도, 호남에 대한 편견과 레드 콤플렉스가 화두로 등장한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박용수씨는 이 책 첫 장 '정치는 아름답다 그러나 한국식 정치는 추하다'에서 '김대중과 빨갱이'에 관한 문제에 깊숙이 접근했다. 아마 보수세력과 보수신문들이 이 글을 읽어 본다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릴 것이다. 특히 '김대중 죽이기'에서 자주 거론됐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를 욕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농민과 도시빈민을 빨갱이라 할 때 이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오염되었다는 이야기겠는데 어느 세월에 세뇌교육이라도 받았다는 말인가. 결국은 수구세력이 자기 보신을 위해 만들어낸 말임이 확인되는데 '전라도 놈은 다 빨갱이다', '김대중은 빨갱이다'는 말은 오랜 역사를 통해 유배지로 활용하며 호남지역을 푸대접하고도 모자라 모든 경제적 이권을 계속 독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경쟁자를 도태시키는 수단을 찾던 끝에 생겨난 말이다." 작가이자 시인인 이적씨는 이 책 '반공에 멍든 정치인 김대중'이란 제목의 글에서 국내 정치인 중에 가장 탄압 많이 받고 불행했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꼽았다.그런 그는 빨갱이와 용공의 실체에 더욱 근접한다.
"이 땅의 지식인이나 진보성향을 띤 정치인들은 반공의 철퇴에 맞아 빨갱이니 용공이니 하는 덫에 씌워져 쓰라린 고통을 맛보기도 했고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같은 불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어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작가 노가원씨는 '누가 용공이라 하는가'란 제목의 글에서 김대중의 사상적 의심의 근원을 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이를 앵무새처럼 확대 재생산한 보수언론 탓으로 보았다.
그런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중간수사발표에는 김대중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 친북 세력과 결탁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됐지만, 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김대중의 당당한 증언과 빛나는 해명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돼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인 김기홍씨는 '빛의 에너지가 충만한 김대중'이란 제목의 글에서 양비론으로 끌고 가는 지식층들을 호되게 비난했다. 특히 <조선일보>를 겨냥해 일갈했다.
"사사건건 김대중을 흠집 내던 <조선일보>의 글쟁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청와대로의 직행. 자손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하기야 그들은 전두환을 영웅으로 만들고 이승만 복권을 노리는 자들이 아닌가. 그 비열한 작태에 응징하지도 않고 떠넘기는 신문을 펼쳐드는 사람들 역시 김대중을 상처 내는 사람들은 아닌가."# 장면 셋. '신 DJ 죽이기'"김대중 정권은 출발부터 언론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언론은 처음부터 김대중 정권의 발목, 아니 몸통을 잡고 늘어졌다. <내일신문> 1998년 5월 13일자는 '재벌과 언론의 신 DJ 죽이기...언론, DJ 외곽 때리기 시작...재벌, 언론 활용 새 정부 견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재벌과 언론의 합작으로 김대중 정권을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2000년 5월. 강준만 교수는 그가 쓴 책 '권력변환: 한국언론 117년사'(인물과 사상사)의 '김대중 정권하의 언론 편'에서 '신 DJ 죽이기'란 표현을 썼다. 책에서 그는 "일부 언론은 처음부터 김대중 정권을 비판할 건수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건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자구책인 동시에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색깔 공세'에 시달려 온 김대중 정권이 초기 정부인사와 관련된 '지역주의' 문제로 보수언론에 집요한 공격을 받을 무렵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강 교수는 "김대중 정권은 언론에 대해 계속 '비굴하다'는 표현이 좋을 정도로 무력하게 대응했다"고 비판한 뒤 "김대중 정권과 언론과의 갈등은 1998년 가을 가장 크게 불거지고 말았다"며 사례를 적시했다.
"<조선일보>가 <월간조선> 98년 11월호에 게제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기사를 통해 김대중 정권의 사상 지향성을 문제 삼았을 때에 가장 크게 갈등이 불거졌지만, 이는 어설픈 봉합의 수준에서 마무리 되었다."그러면서 강 교수는 김대중 정권의 구태의연한 언론관을 계속 꼬집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이념 공세에 눈을 떼지 않던 그는 "5년 전 '한완상 사건'과 비교하여 <조선일보>의 '색깔 공세'가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결국 최장집은 정책기획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 정권의 <조선일보>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비굴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혹독한 비난을 가했다.
그래서 일까.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수신문들은 내내 그를 괴롭혔다. 퇴임 후에도 '붉은색 덧칠'은 줄곧 그의 정치인생 발목을 잡은 요인이었다. 이것은 고인이 되기 직전까지 따라 다녔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특별연설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세력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 등의 관계를 언급하며 보수층 정서를 자극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이란 사설에서 "올해 86세의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다"며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부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독재'라고 부르고 "들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뿐더러 국가 원로가 취할 태도는 더욱 아니다"고 나무랐다.
<조선>은 이어 6월 23일 김인규 한림대 도서관장의 시론 'DJ는 김정일의 매 맞는 아내'에서 "2000년 6월 DJ는 '친정 곳간'에서 4억5000만 달러를 몰래 꺼내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며 평양으로 찾아가 '6·15 남북 공동선언'이라는 결혼식을 올렸다"면서 "김정일의 '매 맺는 아내'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에게 능욕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를 말리는 친정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동아일보>도 6월 13일 사설 '민주 탈 쓰고 반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에서 "남북관계 경색에 대해 DJ는 이명박 정부와 미국 탓이라고 했지만 한눈으로 사물을 보는 편견이다"며 "실패한 좌파정권의 실패한 대북정책을 답습하라고 이명박 정권에 강요하며, 국민이 만들어 낸 현 정권을 공격하는 일에 모두 일어서라고 민중을 선동하는 것은 민주화 역사를 역류하는 죄짓기임을 DJ는 깨달아야 한다"고 꾸짖었다.
# 장면 넷. 고개 숙인 그들의 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