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참석하여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복원시키자' 주제로 연설을 한뒤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유성호
Ⅲ. 그런 당신을, 우리는 친북 용공으로 몰아 두 평의 감옥에 쳐 넣고
바다 속에 수장하려 했습니다.
칠성판에 온 몸을 묶고 손발에 돌을 달았어요.
사형수로 십자가에 매달으려 했습니다.
국민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아! 그런데 당신은 저희들을 용서했습니다.
당신은 잠시 자유였습니다, 두 평의 감옥 속에서
당신은 잠깐 행복했습니다. 가족을 만나는 면회실 곰보딱지 앞에서
당신은 잠시 평안하였습니다. 50여 차례의 연금기간 동안
참 고단한 시절이었죠?
아! 그 한을 다 어떻게 녹여 용서의 강을 만드셨나요?
1980년 당신이 사형수가 되어 육군 교도소에 있던 시절
이 땅의 지식인 누구도 당신을 죽이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신군부의 서슬에 눌려 당신의 죽음은
이미 나약한 우리들의 양해사항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무죄다" 이불 속에서만 모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무참한 침묵'을 이제서야 당신께 고백합니다.
아!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저희를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소외된 자들의 벗이었고, 고통 받는 자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냉정한 방관자였습니다.
Ⅳ.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그날 밤
누가 그러는데 전남 강진 다산초당 오르는 길에 대숲에서
어젯밤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누가 그러는데 충북 괴산 청천면 삼송리 백두대간에
천년 넘은 왕 소나무 큰 가지 하나가 그날 밤 툭 부러졌다고 합니다.
하늬바람이 들려준 소식에 의하면
묘향산 보현사 앞마당 백일홍이 며칠 전부터
붉게 피어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백두산 이끼바위도, 지리산 관음죽도, 무등산 갈대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고 합니다.
Ⅴ.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나고 나니 비로소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함께 울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신을 영안실에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영남과 호남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지금
광화문의 진보와 시청 앞의 보수가 머리 끈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주먹을 펴고 악수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어째서 우리는 당신을 통해서만 하나가 되는 건가요?
어째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만 남과 북이, 동과 서가 하나가 된답니까?
Ⅵ.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신의 숨길을 막은 것이 폐렴만은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되돌아보면 당신의 폐 대동맥을 막은 것이 폐색전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의 혈전이었습니다.
지역분열의 화농이었습니다.
당신의 고관절을 망가뜨린 것은 사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슴에 자란 억압과 편견의 종양 때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신이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용서의 강이 되고 화해의 별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못다 이룬 꿈, 조국을 통일하는 일 우리가 해내겠습니다."
고단한 이 세상을 떠나 편히 쉬소서
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