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가 민간인들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 경악과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에 의해 폭로된 증거는 지난 5일 평택역에서 열린 쌍용차 집회에서 입수했다는 기무사 소속 신모 대위의 수첩과 동영상 등이다. 이 수첩에는 시민단체 관계자,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약사, 중견 연극인 등 민간인 10여 명의 주소와 차량번호, 일시별 행적 등이 자세히 메모돼 있다. 심지어는 이들이 마트에서 구입한 내의는 물론이고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기록한 사실이 들어있다.
또 사찰을 위해 필요한 요구사항으로 "고급 아파트 출입 시 소형차로는 곤란하므로 중장기 예산을 반영하여 이를 교체해 줄 것, 필요 장비가 탑재된 승합차가 필요하므로 예산을 반영해 줄 것, 거점 확보를 위해 전세자금을 활용할 것" 등이 적혀 있다.
이처럼 기무사가 민간인과 시민단체 그리고 특정 정치인을 감시하고 미행해서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혹시 동선(動線)을 이리저리 짜 맞추고 함정을 파놓고는 위기의 순간에 느닷없이 어떤 사건을 조작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민노당 내에 북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고 의심이 갔기 때문일까?
대체 지금까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언제부터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그 실제가 궁금하다. 더 나아가 불법 사찰에 대해 청와대도 알고 있었는지, 만약 알면서도 묵인했는지,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게 500만 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당선됐다. 국회도 한나라당 의원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기무사까지 동원하여 약소정당 소속 민간인을 미행 감시한 것일까? 세금 뜯어가는 목적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가?
기무사는 군인에 대한 정보활동만 하게 돼 있는 조직이다. 민간인이나 국내 정치 관련 정보를 수집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결국 정권안보를 위한 것임을 역사가 증명한다.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하의 비밀경찰과 동독의 호네커 정권하의 슈타지. 모두 반대파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현 정권은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기무사 민간인 사찰을 그냥 덮을 수만은 없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20년 만에 부활되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간다면 그게 어디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이겠는가. 20년 전 노태우 정부 때도 책임을 물었던 일을, 쉬쉬하고 덮어버린다면 이런 일이 두고두고 일어난다.
이번 기무사의 국민 감시·사찰은 지난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이뤄놓은 민주주의라는 집을 일시에 허물어 버리는 격이다. 민간인 사찰은 그 자체가 불법이자 정치적 자유에 대한 억압과 통제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각종 기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통치 행태가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망령이란 느낌이다. 국민들에게 군사독재와 폭압적 통치의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용서할 수 없다. 누가, 무엇 때문에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부활시켰는지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것이다. 국회 국정조사권 발동이 필요하다.
2009.08.21 16:16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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