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파크 골프'를 아시나요?

김종복 씨가 펼치는 휠체어 골프 사랑

등록 2009.08.23 10:32수정 2009.08.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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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同病常鱗)이라는 말이 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나서서 타인을 배려하고 온정의 손길을 뻗는 걸 종종 보게 된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자신보다 더 장애가 심한 이웃을 소리 없이 돌보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모습은 볼수록 아름답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인천시 부평구에서 상패 업체 크리스탈듀를 운영하는 김종복 사장. 세살 때부터 50년 넘게 소아마비와 싸우고 있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인천시 부평구에서 상패 업체 크리스탈듀를 운영하는 김종복 사장. 세살 때부터 50년 넘게 소아마비와 싸우고 있다. 가순찬

인천시 부평구에서 크리스탈 상패 업체(크리스탈듀)를 운영하는 김종복 씨. 50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네 살 때부터 소아마비 때문에 평탄치 않은 삶과 부딪쳐온 그는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김 사장은 아홉 살과 열 네살 때 차례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작별해야 했다. 두 분이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공부할 형편이 못 됐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 전전긍긍 친척집을 오가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파크 골프'로 장애인에게 희망 전하는 전령사

"시련이 겹친 힘든 시기를 살았지만 저는 그 시절에 제 의지가 강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의지가  강했다면 하고 싶었던 공부도, 제법 소질이 있었던 그림 그리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텐데…."  

김종복 사장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을 돕기 위해 최근 선택한 것은 '파크 골프'.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다. 1983년 일본에서 시작된 '파크 골프'는 골프와 게이트볼을 합친 경기로 어린이부터 노인, 장애인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생활 스포츠. 특히 장애인들의 건강 관리에 활력소가 되어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공원이나 운동장 같은 공간만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미니 골프'라고도 불린다. 그가 살고 있는 인천 지역에만 40여 명의 회원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파크 골프'  일본에서 1983년에 시작된 '파크 골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전국적인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파크 골프' 장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파크 골프' 일본에서 1983년에 시작된 '파크 골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전국적인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파크 골프' 장면. 대한장애인골프협회 사진

불편한 몸으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텐데 대한장애인골프협회 인천지부의 회장을 맡아 '파크 골프'에 열정을 쏟는 이유가 궁금했다.

"골프 하면 많은 분들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더군다나 장애인이 골프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죠. 저도 한때는 그랬었죠. 하지만 골프는 장애인에게 매우 유익한 운동입니다. 일본에 자주 오가던 지인이 일본 현지의 장애인 골프를 보고 와서 '파크 골프'를 제안했는데, 공원이나 일정 크기의 공간만 확보한다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겠다 싶더군요. 가볍게 걸으면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함께 어울려 운동을 하니까 건강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공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파크 골프는 장애인의 건강을 증진하고 경쟁과 승리보다는 만남과 이해를 소중히 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고도 강조했다.

더 크고 넓은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1981년 당시에 밀알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만 채용하는 기업을 운영했어요. 옛날에는  장애인들 일자리가 없어서 모집공고를 내면 지방에서도 올라오는 등 경쟁이 매우 치열했죠. 밀알 기업사는 크리스탈 재료를 가공 하는 업체였는데 40여 직원이 참 열심히 일했어요. 아마 지금 국내 크리스탈 업체를 이끄는 분들의 상당수가 그 당시 저와 함께 일하면서 기술을 배운 분들일 겁니다." 

사업이 궤도에 올랐지만 이후로 유사한 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다른 업체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됐다. 손으로 직접 가공해서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이었지만 경쟁업체들을 따라잡기에는 가격 경쟁도 불리하고 버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 친구가 가지고 들어온 장애인 전용 자동차는 김종복 사장을 비롯한 많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예고해줬다. 집안에만 틀어박힌 채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장애인에게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장애인 운전면허를 취득한 분이라면 저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제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것은 1983년도였죠. 당시까지만 해도 장애인이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하기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어요. 한 분 두 분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장애인에게 운전면허 취득을 도와주다 보니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아예 운전면허장을 직접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95년 이후로 장애인 자동차 전문 운전학원이 곳곳에 생기면서 그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중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참패를 하면서 시련은  되풀이 되었다. 

장애인 돕는 장애인, 김종복 사장 1981년 장애인만 채용하는 '밀알기업'을 운영하다가 사업이 기울던 1988년부터는 장애인 운전면허장을 개설했다. 그의 도움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장애인만도 8천여 명에 이른다.
장애인 돕는 장애인, 김종복 사장1981년 장애인만 채용하는 '밀알기업'을 운영하다가 사업이 기울던 1988년부터는 장애인 운전면허장을 개설했다. 그의 도움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장애인만도 8천여 명에 이른다. 가순찬
어떻게든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적 외판원 생활도 했다. 초등학교 등지로 장애인과 함께 책을 팔러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그나마 장애인을 빙자한 판매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책을 '강매'한다는 여론이 일자 이 사업도 곧 중단되고 말았다.

"남들보다 신체 조건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했지만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죠. 저보다 더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밀알기업이란 사업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장애인 운전면허 시험장도 그래서 시작했지만 결과가 너무 참담했어요. 일어서면 쓰러지고 다시 또 일어서면 위기가 닥쳐오곤 했죠.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크리스털 상패 쪽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크리스탈'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죠. "

어려울수록 포기하지 않는 삶

김 사장은 자신이 크리스탈을 떠나 외도만 안 했어도 지금쯤은 부자가 되었을 거라며 미소를 머금었다.

"늦게 다시 시작한 사업인 만큼 남과 다른 생각으로 저희만의 제품을 개발했어요. 디자인을 보완하고 다른 업체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제품을 시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면서 외국 회사와 거래도 이루어지고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손잡고 있습니다. 힘겹던 시절에 살던 집까지 팔아야 했는데 지금은 빚도 다 갚고, 장애인 '파크 골프'에 참여하면서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름껏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심신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냐고 주문했다.
"많은 장애인이 쉽게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기초생활 수급자로 정부에서 기본적으로 나오는 돈이 있지만 저는 그걸 받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욕심이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남들 하는 것 다 하고 싶죠. 그러기 위해 땀 흘려 일합니다. 스스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쉽게 의지하지 않는 것,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건 나중에 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 받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땀의 결정체들 크리스탈 상패와 판촉물 제작업자로 다시 돌아온 김종복 사장은 이제 장애인 건강 증진과 친교를 위해 '파크 골프'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사업장(사진 위)과 시민이 보내준 인물화 감사패.
땀의 결정체들크리스탈 상패와 판촉물 제작업자로 다시 돌아온 김종복 사장은 이제 장애인 건강 증진과 친교를 위해 '파크 골프'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사업장(사진 위)과 시민이 보내준 인물화 감사패. 가순찬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 사장에게 사진을 몇 컷 찍자고 제안했다. 앉은 채로 찍는 것도 좋지만 반듯하게 일어서서도 한 컷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줬다.
김 사장의 사업장엔 여덟 명의 성실한 동료들이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김 사장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희망은 직원들에게 신념이 되고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 작별 인사를 할 때 그가 악수하면서 했던 말이 귓전에서 꿈틀거린다.

"더 많은 장애인이 '파크 골프'를 치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세요. 주말에 인천 남동구 잔디축구장으로 오시면 대한장애인골프협회의 인천지부 동호인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

덧붙이는 글 | 김종복 사장이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파크 골프'에 관심있는 분은 대한장애인골프협회(02-533-0918)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기를 원하시는 장애인 또는 가족께서는 김종복 지회장(010-5252-7223)에게 직접 연락하셔도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종복 사장이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파크 골프'에 관심있는 분은 대한장애인골프협회(02-533-0918)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기를 원하시는 장애인 또는 가족께서는 김종복 지회장(010-5252-7223)에게 직접 연락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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