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꽃 질 때, 당신도 가셨군요

[포토에세이] 인동초

등록 2009.08.24 14:50수정 2009.08.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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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꽃
인동초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꽃김민수
▲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꽃 ⓒ 김민수

 

지난주, 우리는 또 한 분의 대통령을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낸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는 때에 민주화의 상징이요, 민족통일운동의 상징이었던 거목을 잃고 나니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묘지 주변에 '인동초'를 심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동초는 김대중 대통령 임직 당시에도 그분이 좋아하는 꽃이라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제 인동초를 보면 그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인동초 그의 묘역 주변에도 인동초가 심겨질 것이라고 한다.
인동초그의 묘역 주변에도 인동초가 심겨질 것이라고 한다.김민수
▲ 인동초 그의 묘역 주변에도 인동초가 심겨질 것이라고 한다. ⓒ 김민수

 

당신을 떠나보내고 혹시 남아 있는 인동초꽃이 있을까 인동초를 살펴보았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푸르디푸른 이파리와 줄기를 부지런히 내는 덩굴을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인동초의 꽃은 봄이 막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때 피어납니다. 인동초(忍冬草), 이름 그대로 기나긴 겨울도 푸른 줄기와 이파리로 겨울과 맞서며 살아갑니다. 남도에서는 햇살 바른 양지의 돌담에 기대어 한겨울에도 상록의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 역시도 남도이니 김대중 대통령도 어린 시절, 한겨울에 인동초의 푸른 이파리들을 보았을 것이며, 한여름 들판에서 뛰어놀다 인동초꽃을 따서 꿀을 빨아 먹던 추억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추억의 단편들을 떠올렸을 것이고, 한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던 인동초도 그 추억의 한 장면 속에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인동초 어릴적 김대중 대통령도 인동초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을 것이다.
인동초어릴적 김대중 대통령도 인동초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을 것이다.김민수
▲ 인동초 어릴적 김대중 대통령도 인동초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을 것이다. ⓒ 김민수

 

인동초는 금은화(金銀花), 이화(二花), 금은등(金銀藤) 말고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꽃입니다. 인동초는 꿀이 참 많은 꽃입니다. 꿀풀이 시샘할 정도로 말입니다. 게다가 인동초는 꽃과 이파리, 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꽃과 이파리와 줄기는 그늘에 말려서 차(茶)로 사용할 수도 있고, 덩굴은 질겨서 바구니 같은 것을 만들면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우리 꽃입니다.


당신의 삶이 그랬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소중한 삶이었습니다. 죽어서도 당신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라 격려하고,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당신을 봅니다.


인동초 작고 수수한 꽃, 서민의 꽃이지만 쓰임새가 다양하다.
인동초작고 수수한 꽃, 서민의 꽃이지만 쓰임새가 다양하다.김민수
▲ 인동초 작고 수수한 꽃, 서민의 꽃이지만 쓰임새가 다양하다. ⓒ 김민수

겨울을 잘 참고 견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인동(忍冬)'은 다른 여러 이름보다도 정겹습니다.

 

인동초를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는데 '고난' 또는 '인내'라는 말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옵니다. 이러한 때에 잘 참고, 인내한 이들은 성장합니다. 고난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한 통과제의입니다. 고난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그런 삶을 당신은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셨습니다.


인동초 긴 겨울 추위도 그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
인동초긴 겨울 추위도 그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김민수
▲ 인동초 긴 겨울 추위도 그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 ⓒ 김민수

 

여름꽃 인동초가 거의 져서 꽃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운 계절에 인동초를 사랑했던 당신은 우리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꽃은 없지만, 여전히 인동덩굴은 줄기를 내고 푸른 이파리를 내며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소박하게 생기다 못해 다 익어도 별로 예쁘지도 않은 작은 열매지만 송골송골 익어갑니다. 저 줄기가 긴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푸른 빛을 내며 온몸으로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짜합니다.


이제 당신은 갔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갔습니다.

당신이 살라 하신 그 삶을 살아가려면 당신이 짊어졌던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이 그냥 말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살아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허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허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살아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동초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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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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