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어서도 남북 대화의 물꼬를 텄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특사조문단은 '역적 패당'이라고 비난해온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 6개월간 지속돼온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정부는 외교관례를 내세워 그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북한은 관계개선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보인다. 특사조문단이 돌아간 뒤에 북한측이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회담을 열자는 남측의 제의를 수용해 당장 26일부터 3일간 금강산에서 적십자회담이 열리는 것도 그 신호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부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정부 일각에서는 이를 미국과 유엔의 제재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이 묶인 북한의 제재 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평화 공세'로 치부한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고, 참여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으로서 통일외교안보 사령탑을 맡은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진단할까?
"DJ 서거와 특사조문단 파견, 남북관계 전환의 일대 전기"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북한의 특사조문단이 오면서 남북관계 전환의 일대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고 현재의 국면을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북측 조문단의 청와대 면담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화가 성사된 데는 김 전 대통령을 모셨거나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남북관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여권인사들의 역할이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에 간접적이지만 남북이 최고위급에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명박 정부도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됐고, 남북관계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줬다"면서 "또 포용정책 지지자들뿐 아니라 현재의 여권에서도 이번 면담이 성사되는 과정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남북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해 면담 성사에 여권 인사의 역할이 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또 "현재의 교착국면에서 당국간 대화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런데 북측은 이번에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남측정부가 남북관계 현안과 진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현재까지의 '선핵포기론'에서 '북핵과 남북관계의 병행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향후 남북관계 변화의 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이미 공을 던졌고, 공을 받은 남측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 변화의 폭과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그는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북한이 핵포기를 결심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대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거론하며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길이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라고 본다"면서 "(이 정부가) 계속 선핵폐기론을 유지한다면 낮은 차원에서 진전은 있겠지만 획기적 변화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남북관계 10년간 질적 변화... MB 정부 마음대로 폐쇄시킬 수 없어"
그는 북한이 대미대남 관계에서 '평화 공세'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으로 전략을 선회하던 중에 뜻밖에 김 전 대통령 서거가 계기가 돼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남측의 의지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보면 북한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연동시켰다"면서 "북한이 적대적인 북미관계 악화를 가장 심각한 체제 위협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안 좋으면 남북관계도 속도를 조절하는 경향성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일관된 대북정책이 최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북한의 평화공세는 미국과 유엔의 제재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이 묶인 북한의 제재 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의 연장선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평화공세는 단순히 대남차원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우리 정부는 유성진씨 석방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했고, 북미대화 일변도가 아닌 남북대화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면서 "북한은 지금 이명박 정부에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대외전력 변화에 조응하여 움직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도 없었고, 북측이 남측의 압박에 밀려서 나왔다는 근거는 없다"면서 "북한은 남한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자기 프로그램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점도 잘 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꾸준히 개선되면서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떤 정부도 남북관계를 약화시키기 어려운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개성공단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 마음대로 폐쇄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라는 예외도 있었지만, 80년대 말의 북방정책 때부터 이어온 남북관계의 변화가 북한에게도 남북관계의 악화가 부담스러운 것이 되게 만들었다."
"6.15-10.4 이행선언 아닌 다른 길은 비용도 많이 들고 불확실"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꾸준히 추진한 남북관계 개선의 성과가 남북한 모두에 남북관계를 약화시키기 어려울 만큼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진단이다.
북측이 요구해온 6.15-10.4선언 이행문제에 대해서 그는 "상황이 잘 진척돼서 남북 장관급회담을 하고 공동보도문을 낸다면 결국 6.15와 10.4선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두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통로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총괄했다. 당연히 그로서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가끔은 '훈수'를 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법하다. 그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간혹 (이 정부 당국자들과) 만나면 1년 반이 지났는데 계속 남 탓만 할 거냐, 이제는 당신들 브랜드를 갖고 해야 할 때라는 말은 한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서는 "김 전 대통령은 남북을 통틀어서 남북화해협력세력의 정신적 지주였다"면서 "그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동력을 갖고 힘을 모아서 결속해나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이 6.15선언 9주년 행사위원들에게 점심을 샀던 6월 25일 '거구장'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각오삼아 소개했다.
"우리가 얼마나 못났으면 김 전 대통령께서 아직도 저 노구를 이끌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우리가 김 전 대통령께 큰 빚을 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저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각오를 갖고 뛰겠다."
이번 인터뷰는 17일과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이후인 24일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북측 조문단의 청와대 면담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북한의 특사조문단이 오면서 남북관계 전환의 일대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 북측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대화가 성사된 데는 김 전 대통령을 모셨거나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남북관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여권인사들의 역할이 있었다.
이번에 간접적이지만 남북이 최고위급에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명박 정부도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됐고, 남북관계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줬다. 또 포용정책 지지자들뿐 아니라 현재의 여권에서도 이번 면담이 성사되는 과정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남북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는 의미도 있다."
-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현재의 교착국면에서 당국간 대화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측은 이번에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남측정부가 남북관계 현안과 진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현재까지의 '선핵포기론'에서 '북핵과 남북관계의 병행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향후 남북관계 변화의 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북한이 핵포기를 결심한다면'이라고 해서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를 다소 완화시켰고, 또 언제 어디서든 대화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 길이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라고 본다. 계속 선핵폐기론을 유지한다면 낮은 차원에서 진전은 있겠지만 획기적 변화는 어렵다."
"북, 북미관계 틀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 판단"
- 최근 북측의 '평화공세'를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와 추가 핵실험 등 군사적 모험주의 노선으로 유엔 재재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런 노선에서 평화공세로 나온 원인이 무엇일까?
유엔 제재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설득력이 약하다. 북한은 7월부터 대외관계 개선, 특히 북미관계 개선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변화의 모습을 보였는데, 유엔 제재는 7월부터 시작됐다. 제재를 시작하자마자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를 핵심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보면 북한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연동시켰다. 북한이 적대적인 북미관계 악화를 가장 심각한 체제 위협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안 좋으면 남북관계도 속도를 조절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2001년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포용정책을 부정했을 때도 남북관계에 바로 영향이 왔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 문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05년에도 9.19공동성명 이후에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사건이 터지면서 북한이 경직됐다. 남북 사이에 그해 가을쯤에 정상회담을 한다는 데 원칙적인 인식의 공유가 있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에 장소 물색을 했고 우리는 한반도 내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지지부진해졌다가 2.13합의가 나오고 BDA문제가 풀린 직후인 2007년 10월에 성사됐다. 결국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전반적인 대외관계, 북미관계 개선의 틀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해도 북미관계가 경색돼 있으면 어려움이 많다. 참여정부 상황이 그랬던 것이다.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으로 전략을 선회하던 중에 뜻밖에 김 전 대통령 서거가 계기가 돼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남측의 의지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된 것이다."
-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일관된 대북정책이 최근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북한은 지금 이명박 정부에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대외전력 변화에 조응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평화공세는 단순히 대남차원이 아니다. 일관된 전략 때문에 상황변화가 왔다고 하는데, 전략이 뭐가 있었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우리 정부는 유성진씨 석방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했고, 북미대화 일변도가 아닌 남북대화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결국 북미관계가 개선될 때 남북관계도 고려해 달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뜻 아니었나. 현정은 회장 방북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도 없었고, 북측이 남측의 압박에 밀려서 나왔다는 근거는 없다. 북한이 강경정책 다 쓴 뒤에 유화정책으로 돌아선 건데 무슨 압박이 통한 건가. 이렇게 그릇된 판단을 하면 다시 그릇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정책을 구현하는 데도 오류가 많을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자기 프로그램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점도 잘 봐야 한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꾸준히 개선되면서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떤 정부도 남북관계를 약화시키기 어려운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개성공단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 마음대로 폐쇄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라는 예외도 있었지만, 80년대 말의 북방정책 때부터 이어온 남북관계의 변화가 북한에게도 남북관계의 악화가 부담스러운 것이 되게 만들었다."
- 북측 조문단과 지난 22일 오찬을 함께 했는데, 북측인사들은 남측정부에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했나, 또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특사 조의방문단'에서 조문단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의고, 특사는 당국자와의 대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이건 대통령 면담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내가 (북측이 지난 20일 통보한)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재가동은, 업무는 경협업무지만 낮은 단계에서의 당국 간 대화채널 복원이라고 했더니 김양건 부장도 '당국간 채널'이라고 화답했다. 직접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엇을 듣고 싶었다는 말은 없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중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겠나."
"6.15-10.4 이행선언 아닌 다른 길은 비용도 많이 들고 불확실"
- 이후 6.15-10.4선언 이행문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남북한이 이 문제를 놓고 이미 지난 1년 반 동안 갈등해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두 선언의 이행문제를 남북관계의 절대적 조건으로 삼고 있는지는 북한 지도부가 아니면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계승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할지, 아니면 남측의 비용지불을 끌어내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관계를 유지하려 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두 선언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통로가 될 것이다. 이게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한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불확실하다. 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남측의 의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이건 가정인데, 상황이 잘 진척돼서 남북 장관급회담을 하고 공동보도문을 낸다면 결국 6.15와 10.4선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선언을 넣지 않고, 두 선언의 합의정신에 기초한다는 말을 넣지 않고 공동보도문이 만들어지겠나,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까. 낮은 수준에서는 관계개선이 가능하겠지만 고위급에서의 진전은 어려울 것이다."
- 청와대는 이번 면담을 '패러다임시프트'라고 표현했다. "남북관계는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이 틀에서 벗어나서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행위를 국제규범에 맞추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라면 그럴 수 있지만, 그건 남북관계의 특수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많은 정상회담을 했지만, 가장 큰 갈등현안을 갖고 있고 바로 코앞에 있는 김정일 위원장과는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게 특수한 것 아닌가.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물리적으로 적대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과는 그렇게 돼 있다.
김 전 대통령 국장에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많이 왔지만 CNN 등 세계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김기남 비서가 온 것은 주요뉴스로 다뤘다. 우리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남북관계가 국가 대 국가라는 성격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것이다.
혹시 이번 면담을 '각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이라고 하고, (30분으로 늘었지만) 애초 면담시간을 15분으로 했던 것을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내용은 무시한 형식논리를 자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방적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접견시간을 줄였다 늘렸다 하는 것은 북한의 주특기다. 자신들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북한은 종종 그런 방법을 쓰지만, 우리의 강점은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닌가."
-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8.15경축사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전보다는 독선적인 일방주의 분위기는 엷어졌다. 하지만 구두선이라고 할까, 당위적 주장으로는 맞지만 현재의 남북관계에서는 몇 단계 거쳐야 갈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은 실제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별 관심도 의지도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남북관계는 대통령이 말하는 그런 상황 즉,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북한이 수용하는 단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재래식 무기감축을 말했는데, 군비통제는 두 가지이다. 남북한의 대결상태를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의미하는 운용적 수준의 군비통제, 그 다음에 실제 군 병력과 무기를 줄이는 구조적수준의 군비통제가 있다. 그런데 현재는 운용적 수준의 군비통제도 안 돼 있는데 가장 높은 수준의 구조적 군비통제가 튀어나온 것이다. "
- 경축사에서 '북한이 결심하면'이라는 표현이 이전에 구체적 행동을 요구했던 것에 비해, 유화적으로 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병행하겠다는 것으로까지 볼 수 있나.
"언술로만 보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 놨다. 비핵개방3000의 때를 다 벗은 것은 아니지만 '비핵개방 하면'이라는 데서 '핵포기 결심하면'이라고 했으니까 핵포기 과정에서 남북대화를 할 수 있고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전보다 완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정책을 펼 의지가 있느냐, 그게 보이느냐는 것이다.
'신평화구상'에 대해 말했는데, 이미 나와 있던 것을 체계적으로도 아니고 몇 개 갖고 와서 각색한 것이다. 그것조차도 북한에 대해 상대방의 체제와 의사를 존중하면서 경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하우와 가치, 체제를 저쪽에다 부식시키겠다는 식인데, 전략적이지 못한 접근이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받겠나. 북한의 교육을 돕겠다는데, 어떻게 돕겠나. 교육은 가치체계인데.
전체적으로 몇 단계를 건너뛰었다. 현재 남북관계가 높이뛰기 할 수 있는 수준은 2미터인데, 이 대통령은 3미터를 넘는 수준을 말하고 있다. 이 차이를 상쇄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클린턴 방북, 미국이 '안정적인 북한' 전제로 정책수립하게 만들어"
-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후 북미관계를 어떻게 예상하나. 북미대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예상과,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상황이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라는 흐름 위에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이냐는 '클린턴-김정일'의 대화내용이 결정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어느 정도 언급했는지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변화와 폭을 결정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체제보장과 경제보상에 대해 보다 확실한 것을 요구했다면 한반도 정세는 보다 빨리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거꾸로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천명하면서 북미관계 개선을 말했다면, 한반도 정세변화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걸릴 것이다. 물론 이 둘의 어느 중간일 수도 있다.
클린턴의 방북으로 미국은 여러 가지를 얻었다. 여기자들을 석방시켰고, 미국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와 장악력을 확인했다. 또 현직은 아니지만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김 위원장의 의중을 직접 들었다.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이후 9년만이다.
북한은 미국에게 이런 선물을 주면서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그게 핵심일 것이다. 김 위원장의 존재 부각이 목적이었다면 너무 큰 선물을 준 것이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상세하게 전달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북의 급변사태를 예상하던 미국으로 하여금 앞으로 장기간 김 위원장을 상대해야 하고, 북한체제가 상대적으로 생각보다 안정적이라는 판단위에서 정책을 출발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양쪽의 이해가 깊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클린턴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서 가장 잘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다."
- 이명박 정부에도 북한 붕괴론적 시각이 많은 것 같다.
"당국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이 1년 못 넘길 것이라고 하고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그런 상황인가. 그리고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가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다. 110만의 무장력이 그대로 남는다. 우리가 흡수하려고 나서면 총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있다. 남측과 관계가 좋으면 북한이 스스로 기대려고 할 수도 있다.
정말로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본다면 오히려 개입을 확대해서 북의 남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게 옳은 방안일 것이다."
-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했고 통일부장관으로서 NSC상임위원장을 겸임했었다. 이 정부에서는 누가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하는지 관심이 많고, 훈수를 둘 만할 것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내가 그걸 안다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분들이 저에게 어떤 문제를 의논하지 않는 이상 제가 어떤 말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분들이 처음 와서 한 일이 과거 정부 부정한 것 아니었나. 북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이 버르장머리가 고쳐져서 (대화에) 나온 것인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의 일부를 고치겠다고 나온 것이지.
간혹 (이 정부 당국자들과) 만나면 1년 반이 지났는데 계속 남 탓만 할 거냐, 이제는 당신들 브랜드를 갖고 해야 할 때라는 말은 한다."
'이종석의 한반도 워치'를 시작합니다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전쟁 운운하면서 으르렁거리던 남과 북이 청와대에서 마주 앉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마찰음 일색이던 남북관계가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원인은 무엇이고,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 될까요? 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마이뉴스>는 '이종석의 한반도 워치'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연구 2세대의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조선로동당 연구'는 북한 통치체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봐야 하는 필독서입니다.
그는 학계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대북특사로 방북했을 때도 새 정부의 대표로 참여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 NSC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외교안보정책을 이끌었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복귀해 한반도문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단 부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이종석의 한반도 워치'는 인터뷰, 대담, 기고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한반도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한편,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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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6 11:2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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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평화공세'가 제재 때문이라고? 제재 이제 시작, 대외전략 변화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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