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농성 조합원을 대상으로 자발적 선택에 따라 무급휴직/영업전직 48%, 희망퇴직/분사 52%를 실시한다.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평화적 노사관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인다.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형사상 책임은 최대한 선처하도록 노력하고 민사상 책임은 회생계획 인가가 이뤄지는 경우 취하한다."
지난달 6일 타결된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 합의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금석 쌍용차지부장 직무대행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회사에 속았다"고 말했다. 쌍용차지부는 이미 정리해고에 대한 복직투쟁을 준비 중이다. 지부 산하 '정리해고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4일에는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았던 조합원들이 일괄적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계획이다.
지난 대타결 당시 노사는 "향후 신규인력 소요가 발생할 경우 기간제 사원을 채용하지 않고 회사를 떠난 직원들을 우선 고용해 나갈 것"이라고 합의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조합원들은 없다. 그동안의 합의도 지켜지지 않았는데, 회사가 파업 참여 조합원들을 재고용하겠냐는 것이다.
강윤경 금속노조 공보부장은 "복직투쟁은 해고노동자들이 취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계속 투쟁하면 회사가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노동자들이 다시 싸움을 선택하도록 사측이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쓰레기장' 같은 노조 사무실은 쌍용차 노사관계의 자화상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자를 선별하기 위한 노사 실무협의는 지난달 24일 결렬된 뒤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실무협의 안건의 주된 내용은 노조 사무실 출입방해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쌍용차노조 간부들과 농성 참가 조합원들은 지난달 6일 공장을 떠난 뒤 아직 공장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공장은 출입증이 있는 직원만 들어갈 수 있다.
노조 사무실은 한 달째 잠겨 있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조 사무실은 사측에 의해 집기가 파손된 채 쓰레기장과 같은 상태"라면서 "현재 쌍용차의 노사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공장 안에 들어가려는 간부와 조합원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합의 직후 경찰은 농성 참가자 64명을 구속했는데, 이 중에는 노조 간부 22명도 포함돼 있다.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대타결 당시 한상균 지부장을 제외한 노조 간부들은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구두합의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측이 이제 와서 모르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남은 간부들은 10여 명. 실무협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아 있는 노조 조직도 아예 붕괴될 위험이 크다. 조아무개 조합원은 오는 8일 민주노총 탈퇴와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을 위한 총회를 소집한다고 공고를 냈다. 쌍용차지부가 "회사의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하며 총회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그대로 강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박영태 관리인은 지난달 18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하겠다"면서 "노사규약 중 노조가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조항은 과감히 빼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사용자가 노조 조직 형태에 압력을 넣는 것은 '부당 지배개입'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측은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았다.
노조는 이같은 흐름을 '사측의 어용노조 건설공작'이라고 보고 있다. 노조 집행부가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민주노총 탈퇴와 선관위 구성이 이뤄질 경우, 이후 노조 선거에서 현 집행부의 재신임은 더 어려워진다.
박금석 직무대행 역시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실 희박하다"고 말했다. 파업대오를 중심으로 후보단일화를 해서 공장 안팎을 결집시키겠다는 전략이지만,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조직 기반을 남기는 것'이다.
선거에서 크게 질 경우, 파업을 주도했던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더 이상 '노조' 깃발을 들고 일할 수 없고, 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 합의에 따른 실무협의도 진행하지만, 앞으로 동력은 '희망퇴직 52%'에 해당하는 300여 명의 인력 중 복직투쟁에 동참하는 조합원들이 될 것이다. 정리해고특별위원회는 이 투쟁의 조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금속노조와 지역 사회단체가 사회적 합의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쌍용차의 상황에 대해 쌍용차 사측과 채권단,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쌍용차처럼 노사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다"면서 이같은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회사 자체의 메리트가 별로 없기 때문에 채권단 입장에서는 인력을 줄여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할 것이고, 법정관리인들도 회생안 제출 전까지 채권단에게 능력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노조를 무력화시킬 경우, 사측 입장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을 강력히 통제해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파업이 끝난 뒤 쌍용차 공장에서는 시간당 생산차량을 17대에서 22대로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회사에 찍힐까봐 항의도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금속노조, 더 나아가 민주노총을 흔들면서 노동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호재다.
쌍용차 사태 이후 기아차·금호타이어 등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에서는 노조에 대한 강경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금호타이어는 사측이 지난달 24일 700여 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발표하고 곧바로 25일 새벽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 때문에 '제2의 쌍용자동차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 조합원들의 복직투쟁은 당연히 전망이 어둡다. 농성 77일에 비교할 수 없는 긴 싸움인 데다가 조직력이나 여론에서도 이미 열세다. 대의원인 한 조합원은 "생계형 투쟁"이라고 말했고, 다른 조합원은 "5년은 물밑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종탁 부소장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강하게 쌍용차 조합원들의 재고용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외에는 길이 없다는 뜻이다.
조합원들은 일단 내년 회사 인력충원에 희망을 걸고 있다. 회사가 순조롭게 국내에서 매각되고 신차 C200이 생산되면 추가인원이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박금석 직무대행은 "'노조와 협상하지 않으면 회생에 걸림돌이 되겠다'는 인식을 회사에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투쟁방법을 물어보자,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대국민선전전·1인시위·기자회견 등등 최대한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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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팽개쳐진 약속... 노동자들, 복직투쟁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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