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서 샘이 많아진 진순이는 햇살이가 등장하면서 심통이 났습니다.
조호진
"평생 내 궁둥이만 바라보고 살아온 우리 진순이는 말을 못하는 짐승이라 그렇지 사람보다는 열 배는 낫다!"
진순이는 자식보다 나은 게 사실입니다. 핏덩이로 어머님 품에 안긴 진순이는 열네 해 동안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새끼는 떼어놓고 가도 진순이는 떼어놓지 못 한다"는 가시 돋친 말엔 뼈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반려견입니다.
어머니와 진순이는 주인과 개가 아니라 골육지정을 뛰어넘을 정도인데 자식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서러움까지 나누는 사이입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진순이가 알아들어요?"하고 물으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다 알아듣지 그럼! 그치, 진순아!"라며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진순이는 그동안 열세 번 임신해서 모두 50마리 넘는 새끼를 낳으면서 용돈을 보탠 살림꾼인데 재작년부터는 생산이 중단됐답니다.
사람으로 치면 팔순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이빨은 빠지고 시력은 흐려지는 등 노화증세에 시달리지만 어머니가 외출 채비를 하면 마치 최후의 일각까지 충성을 다하려는 듯이 노구를 이끌고 경호에 나선답니다.
어머니가 식당하실 때 술꾼이 해코지를 하려 하면 그 술꾼의 발을 물어 혼내고, 성당에서 올 시간이 됐는데도 귀가치 않으면 성당까지 마중 간답니다. 읍내 의원에선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 옆에 자리 틀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엔 난색을 표시하던 의사와 간호사도 그 충직함에 감동해 동반자로 인정할 정도가 됐답니다. 그 충성심 덕분에 시골로 이사간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도 읍내에서 제법 유명 인사가 되면서 어머니의 입지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의 동네에선 더 유명짜~ 했는데 어머니 왈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가 '진순이가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면 아마 당선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진순이가 행방이 묘연한 어머니와 형님을 찾기 위해 동네 목욕탕, 술집, 노래방, 다방 등지를 찾아다니면 수소문해서 상봉을 돕기도 한답니다.
사족을 달자면 그 동네 사람들의 이구동성처럼 진순이처럼 충직한 후보를 시의원과 국회의원, 교육감과 대통령으로 뽑았다면 뇌물 챙기고, 압력 행사하고, 관광 외유하고, 국민의 소리를 깔아 뭉개는 개판 정치꼴을 면했을 것입니다. 주인 무는 개뿐만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물어 뜯는 정치인을 마땅히 처분해야 하겠지만 거짓 정치인을 분별하지 못하고 사탕발림에 혹해 그런 무뢰배를 선출한 책임은 주권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늙으면서 샘 많아진 진순이... 어머니 "사람이나 개나 편하게 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