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지영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6)[이하 『우행시』]은, '사형제'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사형제 존·폐는 해묵은 논란거리이기는 합니다만, 논쟁의 체온계가 여전히 높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관련 영화도 여럿이죠.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1995), 『그린 마일, The Green Mile』(1999),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2003) 등 말이죠. 한국 영화로는 동명(同名)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있고요, 최근 촬영을 시작한, 조재현, 윤계상 씨 주연의『집행자』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팀 로빈슨 감독, 숀 펜, 수잔 서랜드 주연의 『데드 맨 워킹』과 알란 파커 감독, 캐빈 스페이시, 케이트 윈슬렛, 로라 린니 주연의『데이비드 게일』을 좋아합니다. 두 영화 모두 연출·연기 모두 빼어나 '사형제'라는 논쟁적 소재를 떠나서 작품 자체로 무척 근사합니다.
사형제, 냉혹한 세상이 저지르는 살인?
최근,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가 다시금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남규 사건, 정성현 사건,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등 '희대의 살인마'의 등장은 아무래도 '사형제 존치'에 힘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우행시』에서 사형수 '정윤수'는 강호순과 같은 '살인마'가 아닙니다.
그는 전과5범에다, 분명 살인자이기는 하지만 법률로 규정한 사형을 당할 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범(主犯)의 죄를 뒤집어씀으로써 종범(從犯)에 불과한 자신의 죄과 이상의 벌인, 사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정윤수는 일반 정서상 '사형 받아 마땅한' '절대 악(惡)'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불행한 가정사(史)와 운명의 우여곡절이 합작한 '작은 악'입니다.
사촌 여동생을 성폭행하고도 성공가도를 달리며, 언론에 한 가정의 충실한 가장이자 기업인으로 보도되는 문유정의 사촌오빠에 비해 그는, 상처 입은 들짐승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정윤수를 교수형에 매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혹"(311쪽)한 세상이 저지르는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작가가 "신의 눈으로 보면, 제가 더 죄인일지도 모르는데"(309쪽)라고 고백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형제 폐지, 간단한 문제 아냐...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소설 정윤수의 경우야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마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실제 강호순 사건 이후 법무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이 사형제의 유지와 사형 집행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와 관련 소설가 조정래씨는, 2007년 2월 26일자 『한겨레』칼럼 <무조건 사형제 폐지?>에서,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좀 생각해봅시다, 앞에서 예로 든 다섯이 대여섯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인 사람이 그뿐일까요. 그들은 그 유가족들까지 '간접살인'했습니다.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죽음으로 어린 자식들의 인생이 망쳐져 버렸다면 그보다 큰 겹살인은 없을 것입니다."
『우행시』속의 정윤수는 사형이라는 형벌이 가혹한, 심정적으로 '용서할 수 있는 죄인'입니다. 문제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인 범죄자들 경우입니다. 조정래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형제 폐지는 그런 사람들까지 살려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건의 범죄자들은 모두 사형당했다고 대들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행시』에 대한 아쉬움
조정래씨의 칼럼은, 사형제 논란과 관련한 한국인들의 일반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우행시』는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 논쟁의 핵심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죄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사형제도는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서로 엇갈린 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천부의 권리인 '인간 존엄'의 범위와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데드 맨 워킹』은 데이트 중에 애인을 강간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히틀러 추종자에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용서받을 수 없는' 사형수 매튜(숀 펜 分)를 통해 이와 같은 사형제 논쟁 한복판에 섰던 작품입니다.
『우행시』주인공 '정윤수'는 어떠합니까? 그는, '용서 받을 수 있는 자'로 사형제도의 희생양입니다. 정윤수의 경우, 논쟁의 여지없이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할 비인간적인 제도이고,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의 한계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사형제 존·폐의 문제는, '인간 존엄'의 지평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악인조차, 법으로도 생명을 훼손할 수 없다는 입장, 그것이 사형제 폐지의 확고한 논거여야 한다는 점에서 『우행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구제방안에 대해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한국 현실에서, 흉악범과 관련해 '인권의 보편성'이 설 자리는 여전히 비좁아 보입니다.
외국은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우 '사형제 폐지' 주장은 국민 일반적 정서와의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고, 범죄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완비 요청과 함께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데일리안] 경기판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2009.09.07 15:2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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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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