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끝이 아닌 시작, 마라도

[여름휴가의 기억 ④]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등록 2009.09.10 18:48수정 2009.09.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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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행 유람선

오늘도 역시 눈뜨자마자 창 밖을 바라본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지면 뜨지 않는다는 마라도 행 배. 다행히 날씨는 기상예보와 달리 흐리기만 했다. 부디 마라도 다녀올 때까지만 이 날씨가 지속되길.


숙소에서 나와 마라도 행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송악산 밑 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 저 멀리 보이는 송악산. 혹여 개성 송악산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러나 가까이서 본 송악산은 이름만 산이지 동네 뒷산과 비슷했다. 대신 송악산은 왠지 낯이 익었는데 그 입구에 세워진 드라마 대장금 포스터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대장금이 제주에서 의술을 펼치던 공간이라나.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유람선에 올랐다.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마라도 생각만으로 들떠 있었다. 비록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마라도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출항금지가 내려질 바람이라지만 설마 선사가 성수기의 이 많은 관객들을 배신하겠는가.

a 선상에서 바라본 제주도 마라도 출발 전

선상에서 바라본 제주도 마라도 출발 전 ⓒ 이희동


드디어 출발. 제주도가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의 좁은 해협. 그 좁은 바다를 건너는 나야 관광객의 한 명으로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라도에 대한 기대로 마냥 설렐 뿐이었지만, 과연 마라도 출신에게 이 해협은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들에게도 그냥 바다일 뿐일까?

어쩌면 이 좁은 해협은 오랜 시간 동안 마라도민들을 옭아매는 일종의 굴레였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 마라도는 탐라국 본토로부터 차별을 받아야 하는 지방이었을 것이며, 그 전통은 문명의 발달로 시공간이 좁아진 지금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들도 뭍에서 소외의식을 느끼는데 하물며 마라도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뭍에 가면 한낱 섬사람으로, 제주도에 가면 촌스러운 마라도 출신으로 차별받았을 그들.

a 마라도 저기 보이는 마라도

마라도 저기 보이는 마라도 ⓒ 이희동


가파도를 지나 저 멀리 마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라도. 혹자들은 마라도 하면 한때 유행했던 CF '짜장면 시키신 분'을 떠올리지만 내게 마라도는 국토의 시작으로 기억된다. 어떤 소년이 마라도를 가리켜 국토의 끝이라 하자 옆의 소년이 국토의 시작이라고 정정하던 바로 그 광고. 당시 내게 그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끝이 곧 처음이라는 사실. 지도를 볼 때 항상 북쪽을 위로 두던 내게 그 광고는 그 모든 당연함이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진리를 새삼 상기시켰다.


마라도 일주

마라도 바로 앞에서 거센 파도에 계속 기우뚱거리기만 하던 배는 드디어 정박을 했고 우리는 마라도에 올라섰다. 고구마와 흡사하게 생겨, 조선시대 화전을 일으킨 이후로 나무 한 그루 없이 푸른 초원만 펼쳐져 있다는 마라도.


a 마라도의 오염원 전기차들

마라도의 오염원 전기차들 ⓒ 이희동


그러나 마라도에서 정작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전기 자동차를 한 번 타보라는 삐끼들이었다.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전기 자동차였는데 마라도 그 좁은 땅덩어리에 수많은 전기 자동차들이 줄을 서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내 말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이 늘었는지.

전기 자동차 삐끼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가니 이번에는 또 식당 앞의 삐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이 중국집. '짜장면 시키신 분' 광고의 여파인 듯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MBC 무한도전에서 마라도 짜장면에 대해 홍보 아닌 홍보를 해주지 않았던가. 당장 나부터도 마라도에 가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a 짜장면 시키신 분 마라도로 몰려드는 자본

짜장면 시키신 분 마라도로 몰려드는 자본 ⓒ 이희동


a 마라도 짜장면 잊을 수 없는 그 맛

마라도 짜장면 잊을 수 없는 그 맛 ⓒ 이희동


마라도에서 먹는 짜장면. 워낙에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들었기 때문인지 기대만큼은 맛있지 않았지만, 돼지고기 대신 새우, 홍합, 톳 등의 해산물들이 들어간 짜장면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조금 비싸고 이것저것 셀프였지만 그 정도야 기꺼이 감수하려니.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마라도 짜장면'이 하나의 신화가 되어 너무 많은 자본이 이곳 마라도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몇 년 전만 해도 마라도에 중국집이 2군데밖에 없었다던데, 이제는 거의 중국집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결국 돈이 된다는 이야기에 많은 외지 사람들이 마라도까지 흘러 들어왔겠지.

좁은 마라도로 집중되는 자본. 과연 마라도는 무사할 수 있을까? 자본이 과하게 집중되면 욕망이 흘러넘치고, 결국에는 그 욕망이 조용한 촌락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이 개발의 어두운 패턴일 터, 현재 마라도의 참모습이 궁금해졌다. 겉으로는 활기차지만 과연 그 속에는 어떤 갈등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짜장면을 먹고 난 뒤 마라도를 돌기 시작했다. 좁은 섬. 얼마나 걸리겠는가. 지나다니다가 갈구치는 전기차가 짜증날 뿐이었다. 얼마나 힘들다고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지 원. 전기차는 연료가 전기라며 친환경을 광고하고 있었지만 마라도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오염이었다. 좁은 섬에 너무 많은 개체 수.

a 마라도의 모습 마라도의 이국적인 풍경

마라도의 모습 마라도의 이국적인 풍경 ⓒ 이희동


a 국토 최남단 마라도 대한민국 최남단

국토 최남단 마라도 대한민국 최남단 ⓒ 이희동


마라도의 풍광은 매우 이국적이었다. 눈을 돌리면 푸른 바다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동산 위에는 한껏 멋을 내어 지어진 등대와 성당, 초콜릿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풍경에 반해 아름다운 마라도만 가슴 속에 새기고 집에 가겠지.

마라도 기원정사에서

a 바람이 분다 거친 마라도의 바람

바람이 분다 거친 마라도의 바람 ⓒ 정가람


마라도를 거의 한 바퀴 돌았을까? 우산을 써도 쓸모없을 만큼 비바람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선사에서는 더 이상 제주도-마라도 운행하는 배가 없으니 다음 항차 배에 꼭 승선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비는 내리고, 잠시 쉴 곳은 없고. 결국 우리 부부가 향한 곳은 마라도의 기원정사였다. 몇 년 전 아내가 제주도 일주를 하면서 기원정사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처사님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작은 섬의 사찰. 기원정사는 그 옆의 교회와 성당과 함께 마라도의 3대 종교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밖에 없더니 마라도도 딱 그 꼴이었다. 우연일까?

a 마라도 기원정사 마라도의 사찰

마라도 기원정사 마라도의 사찰 ⓒ 이희동


다른 바닷가 암자와 마찬가지로 기원정사는 해수관음보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고, 처사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외딴 곳 찾아오는 사람이 워낙 드물어서일까?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마음 맞는 사람이다 보니 이야기는 깊고 흥미로웠다.

처사님은 현재 마라도에 대해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자본이 몰리면서 마라도가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외지 사람들과 내지 사람들 간의 갈등이 북 마라도, 남 마라도, 중 마라도 간의 대립으로 표출되고 있다나. 남북 분단도 서러운데 이 좁은 섬에서마저 분열되고 있다니 가슴 아프다는 것이 처사님의 생각이셨다. 결국 돈만 좇으려 하는 현재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좁은 마라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려니.

처사님께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배에 올랐다. 거칠어진 비바람은 중량급의 선박도 전복시킬 듯 표독스러웠지만, 마라도를 다녀왔다는 나의 만족감을 전복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마라도를 어쨌든 밟지 않았던가. 저 멀리 비바람 사이로 제주도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a 제주도로 돌아오는 길 거칠어진 비바람

제주도로 돌아오는 길 거칠어진 비바람 ⓒ 이희동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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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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