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유성호
정 후보자와 김 교수는 지난 2003년 6월 블라인더(A. Blinder) 미 프린스턴 교수의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를 번역해 출간했다. 블라인더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부의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1990년대 말 이 책을 펴냈다.
정 후보자는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을 "손튼의 <페이퍼 크레딧>, 배그홋의 <롬바드 스트릿>, 세이어즈의 <배그홋 이후의 중앙은행>, 그리고 굿하트의 <중앙은행의 진화>에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라고 호평했다.
블라인더 교수는 정 후보자가 197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당시 스승이다. 정 후보자는 1982년 펴낸 <거시경제론> 초판 서문에서 블라인더 교수에게 '소득결정이론'을 배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역자 서문에서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된 제자들의 번역물이 번역서의 초고가 됐다고 '고백'해 눈길을 끈다.
"선역자(정운찬)는 1999년부터 3년간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4학년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화폐금융론 연급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으며 중앙은행에 관한 토론도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이 책을 번역하자고 제안하여 그들에게 번역물을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했으며 나중에 고쳐 주었습니다."
역자 서문 말미에서 정 후보자는 "몇 년 전 선역자(정운찬)가 가르친 화폐금융론 연습강좌에서 원서의 초역에 참여했던 많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썼다. 그는 "(초역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하도 많아서 이름을 댈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원서강독' 등을 명분으로 제자들에게 원서를 번역하도록 하고, 이들이 번역한 원고를 토대로 번역서를 출간해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부생들에게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번역을 정식 과제물로 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후배 교수와 번역서를 내는 '독특한 관행'을 만들어낸 셈이다.
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A씨는 "책 번역을 학기말 과제로 내주고 그 초고 번역을 바탕으로 교수가 번역서를 내는 경우는 요즘 흔하지 않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종의 노동을 한 셈인데 이런 식의 번역서 출간은 적절한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가 공동번역자로 이름 올린 배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