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자료사진).
선대식
똑똑하고 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조차 투자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는 성공비결을 알고 있음에도 비쌀 때 사고 쌀 때 팔고는 한다. (마크 스쿠젠의 <주식투자레슨> 중에서)개인의 금융부채가 81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개인 순금융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빚이 늘기는 했지만 상반기에 지속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면서 투자 수익이 생긴 까닭이다. 즉 빚을 계속 늘리면서 저축은 안 했지만 주식, 펀드 등 투자자산에서 수익이 생겨 금융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투자자산이 많아서 내가 저축한 돈이 하나도 없어도 내가 가진 자산의 크기가 커졌으니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 금융자산에서 투자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산의 변동성이 커진 것을 의미한다. 주가가 상승할 때는 저축을 안 해도 자산이 늘어나겠지만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저축을 해도 자산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 자산 중에서 투자자산의 비중이 커진 것은 2000년대 들어 지속된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저축을 해도 이자가 별로 생기지 않으니 저축에 대한 동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라는 구호와 함께 재테크 열풍이 가세했다. 저축을 해서 낮은 이자를 챙기는 것보다는 투자를 해서 높은 수익을 챙기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저금리 시대에는 빚도 자산이기에 활용할 수 있는 빚은 최대한 활용해서 투자를 하면 이자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자산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다시 고개드는 지금, 저금리 시대는 투자의 시대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인지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투자 성공 원칙만 알면 부자 될 수 있을까?재테크가 한참 유행이던 3~4년 전 많은 재테크 강의에서 투자에 성공하려면 간접투자, 분산투자, 장기투자, 계속투자(적립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개인의 직접투자는 위험하니 전문가에게 맡기는 간접투자를 해야 하고 한두 종목에 올인하는 것보다는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인간은 시장의 타이밍을 맞출 수 없으니 단기투자보다는 매월 꾸준히 적립해서 평균 매입단가를 낮추는 적립식 투자와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갖춘 것이 바로 적립식펀드이다. 그러니 투자해라.'재테크 강의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투자권유로 인해 설정액이 1조원이 넘는 펀드가 수십 개나 생겨났고 주식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이고 확실한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주식시장이 휘청거리면서 펀드는 직격탄을 맞았다. 전문가가 운용을 해주고 은행에서도 판매하는 상품이기에 안정적이고 확실한 자산증식 수단으로 인식하고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에게 반토막 펀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펀드는 계속 간접투자를 하고 있었고 분산투자를 하고 있었지만 투자자들의 실망으로 인해 장기투자와 적립식투자는 어려워졌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 투자 성공을 위해서는 필수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은 정반대로 이뤄졌다. 이는 투자성공의 원칙을 몰라서도 아니고 적립식펀드의 원리를 몰라서도 아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가 근원적으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팔기,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월 10만원씩만 투자하던 사람들이 1년도 안 돼 수익률이 수십%씩 되는 것을 보고 난 후 왜 겨우 10만원만 투자했을까 하면서 자책한다. '10만원이 아닌 100만원씩 투자를 했었더라면', '차라리 적립식이 아닌 거치식으로 투자를 했었더라면' 하면서 아쉬워한다.
놓쳐버린 수익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치가 더해져서 투자금액을 급격히 늘린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투자하고 전세금을 빼서라도 투자를 한다. 그리고 가진 돈을 펀드에 다 털어 넣었을 때쯤 금융위기가 터진다. 계속 올라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펀드는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변한다.
투자 원칙대로라면 수익이 하락했을 때 매입단가를 낮추기 위해 투자금액을 늘리거나 최소한 계속해서 적립식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펀드 잔고를 보면서 거기에 돈을 계속 밀어넣는 용기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했다. 차마 손해를 본 채로 해지할 수는 없어서 펀드에 돈을 불입하는 것을 중단한 채 '그래도 언젠가는 회복이 되겠지' 하면서 원금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원금이 되자마자 환매를 시작한다.
실제로 요즘 신문 지면에는 주가지수가 오르고 있음에도 '펀드 환매액 사상 최대', '펀드 환매 언제까지?' 등 펀드 환매에 관한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을 확률적으로 높여주는 것이 적립식 펀드라고 했지만 오를 때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서 '몰빵' 투자를 불러왔고 떨어질 때는 공포심에 의해서 투자 중단을 불러왔다. 결국 비쌀 때 사서 쌀 때 팔게 된 것이다.
모든 이가 돈 버는 투자시장은 없다저금리 시대는 저축의 시대가 아닌 투자의 시대라고 해서 시작한 투자였지만 오히려 투자로 인해 저금리마저 챙기지 못 하고 가진 돈을 까먹은 사람이 상당수다. 이는 남들보다 무식해서도 아니고 남들보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 해서도 아니다. 모두 돈을 버는 투자 시장 자체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돈이란 것이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저축이 단순히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라는 명제는 잘못되었다.
투자의 시대는 사람들에게 부에 대한 환상만 심어줬을 뿐 써야 할 돈을 만들어주지도 못 했고 부자로 만들어주지도 못 했다. 가계 자산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부동산에 묶인 돈이 대부분이고 금융자산마저도 펀드나 주식 등 투자자산에 묶여 있다. 게다가 빚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산이 있어도 정작 꺼내 쓸 돈은 없는 가난한 재무구조가 된 것이다.
투자자산은 가치는 장부상의 평가금액일 뿐 차익실현을 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이전처럼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월 꼬박꼬박 갚아야 하는 대출원리금이나 내가 써야 하는 돈은 현실이기에 어느날 갑자기 반토막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투자를 통해 막연히 자산을 늘리기보다는 저축을 통해 써야 할 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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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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