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사장 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유성호 기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차00 센터장의 표정은, 내가 그리 생각해서 그랬을까, 화가 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강00 전 KBS 감사(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윤00 KBS 심의위원(후에 1직급인 고위직급 직원을 모아 KBS '공정방송노동조합'(공방노)을 만들어 대표가 된 인물, 언론에서는 '간부노조'라고 지칭) 등과 함께 'KBS 사장 정연주'를 인정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반정연주'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내 게시판의 글을 통해, 성명서를 통해, 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끈질기게도 나를 비방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를 2006년 12월, 사장 연임 뒤 첫 인사에서 임원급인 시청자 센터장으로 발탁했다. 이른바 탕평 인사였다. 임원들은 대체로 찬성했는데, KBS 개혁파들은 "세상에 이런 망발 인사가 어디에 있느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화가 난 듯 보였던 차00 센터장은 내가 "바위처럼..."을 공개 석상에 밝힌 바로 다음 날, 센터장 보직 사퇴를 선언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나에 대한 험담을 다시 쏟아내었다. 한 가지 코미디 같은 사실은 KBS 사규에 의하면 정년퇴직 6개월 전에는 보직을 사임하게 되어 있는데, 그의 정년은 이듬해 6월이어서 기자회견을 한 날로부터 18일 뒤인 12월 말에는 자동적으로 시청자센터장 자리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치 엄청난 자리를 포기하는 대결단을 내리는 것처럼 기자회견을 여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인간적 비애를 느꼈다. 최소한 인간적인 진실성은 있어야 되는데 왜 저럴까 싶어 안쓰러웠다. <동아일보>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서특필했다. 그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윤00 공방노 대표도 자리를 함께하면서 동지적 유대를 보여주었다.
차00 센터장은 이보다 앞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후보 토론 등 방송출연을 위해 KBS를 방문했을 때 가까이 가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 봄 고향인 경북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하려고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후보가 되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금전이 오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가 되어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정연주를 증오했던 사람들 어쨌든 차00 센터장이나 강 00 전 감사나 윤00 심의위원 등은 나를 정말 싫어했던 것 같다. 싫어했다는 표현보다는 '증오했다'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이른바 '녹취록 사건'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윤00 KBS 심의위원은 문제의 녹취사건 때 "정연주라는 사람은 참 사악한 사람이거든요"라고 말했고, 강00 전 감사는 이를 받아 "사악한 놈이죠"라고 답했다.
'녹취록 사건'은 2006년 11월 9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강00 당시 방송위 위원, 윤00 KBS 심의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한 지역 방송사 사장, 제작사 대표 등 5인이 모여 '한나라당적 동지애'를 과시하면서 온갖 얘기를 나눈 자리의 대화록이 그대로 녹취가 되어 이듬해 공개된 사건이다.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우리는 한 배"라고 하자 강00 전 감사는 "한 배가 아니라 우리 일이다"라고 답했다. 윤00 심의위원은 유승민 의원에게 "오늘 저 영광입니다. 근데 의원님 한 배입니다. 좌초되면 저희는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내가 KBS를 떠난 뒤 편성본부 외주제작국장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아 왔다.
나를 그토록 싫어했던 그들의 눈에, 나는 기껏 '조그만 좌파신문'인 <한겨레> 논설주간 출신의, 방송이라고는 쥐뿔도 모르고, 조직 관리 경험이라고는 <한겨레> 논설위원실 정도밖에 없는 '무능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형편없는 비주류' 출신이 주류 언론의 본산이랄 수 있는 KBS의 사장으로 온 것 자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주장을 회사 안팎에서 참 많이 들었다.
물론 한나라당과 조중동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사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에서 가하는 공격이나 비판은 그리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중동의 기사, 칼럼, 사설에서 가장 격렬한 비판을 한 인물 1위가 노무현 대통령이고 그 다음이 정연주 사장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내가 하는 일,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은 것이구나를 재확인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보는 눈, 역사를 보는 눈,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껴온 터여서, 그런 쪽에서 비판을 하고 공격을 한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중동 공격이 아프지 않은 이유 나더러 "맷집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더러 했는데, 그건 내가 맷집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조중동의 공격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비판이라기보다 비방과 인신공격에 가까웠고, 때로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사실보도조차 왜곡하는 터여서, 그들의 공격이 아프지가 않았던 것 뿐이었다. 합리와 상식을 벗어난 욕설과 비방과 인신공격은 그다지 아프지 않은 법이다. 진실이 아니므로.
내 자신과 내가 믿는 신 앞에서 떳떳하다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기자는 기사로 말을 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을 하듯, 방송사 사장으로서는 결과물인 방송 프로그램과 보도를 통해 말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중동은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 위장전입, 탈세 등 고위공직자를 그토록 집요하게 파헤치던 조중동이 요즘 어떻게 바뀌었는지. 필요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논조와 주장이 정반대로 뒤집히는 그런 언론이 과연 언론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