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서있는 나무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 노인들. 그들의 모습에서도 노년의 여유와 행복이 느껴졌다.
김은주
할아버지는 젊은 남자애랑 둘이서 조를 이뤄서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 애는 이방인인 우리를 구경하면서 다소 게으른 동작으로 일했습니다. 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낮에 케밥을 칼질할 때 모습처럼 손을 빠르게 움직였고, 그의 몸은 아주 가벼워보였습니다. 마치 생활의 달인 같은 모습으로 손이 안 보이게 토핑을 올렸습니다.
옆에서 일하는 느릿느릿한 젊은 애는 할아버지가 토핑을 끝내면 집게로 팬을 집어서 오븐에 집어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젊은 애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자기 것을 다 하고 집게로 오븐에 팬을 집어넣는 과정을 아주 빠르게 몇 번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습에서도 그는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케밥을 칼질하던 일도 전공이고 지금 피자에 토핑하는 일도 자기가 최고 잘하는 일이라는 모습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침에 할아버지가 하던 일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데 그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할 때는 일분일초가 다급한 일로 여겨졌는데 지금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한없이 여유 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그는 케밥 통이 슬렁슬렁 돌아가는 옆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그냥 서있다가 아주 가끔씩만 칼질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쓸데없이 손을 많이 놀렸던 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피자에 토핑 올리는 일도 할아버지의 손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이미 준비해놓은 팬도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좀 느긋하게 움직일 수도 있는데 그는 그 틈에도 잠시의 여유도 즐기지 못하고 옆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일까지 간섭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재촉할까를 생각해봤는데 답이 나왔습니다.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젊은 사람들만 일하는 햄버거 가게서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보다 유능하다는 걸 입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자기의 유능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칠순 노인네로서는 힘이 부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젊은 내가 그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칼질을 했다면 아마도 뻗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저녁까지 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피로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으로 봐서 젊었을 때도 부지런했을 테고 열심히 일했을 텐데 이제 노년이 돼서 좀 쉬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 때문에 그에게 묘한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까 일하기 싫어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건 나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노인은 어쩌면 열심히 칼질하고 피자 위에 토핑을 가장 잘 뿌리고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서 삶의 만족을 얻고 또 그게 그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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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일, 노년엔 어떤 게 더 큰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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