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앞에 무릎 꿇은 유신, 진짜였을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등록 2009.09.23 10:44수정 2009.09.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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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엄태웅 분)과 미실(고현정 분).
유신(엄태웅 분)과 미실(고현정 분).MBC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제15세 풍월주 경합에서 최다승을 거둔 김유신(엄태웅 분). 그런데 여러 날 푹 쉰 뒤에 풍월주 추인을 받으러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설원(전노민 분)이 느닷없이 유신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추인식'은 '인준 청문회'로 바뀌고 말았다. 그 때문에 유신의 풍월주 추인은 일단 보류되고 말았다.

평소 점잖고 순박해 보일 뿐만 아니라 백성 지향적인 경세학(經世學)을 열심히 하길래 '저런 사람이라면 별 문제 없겠거니' 하며 좋게만 봤는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런 유신에게서도 비리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가야의 부흥을 꾀하는 복야회와 연계된 가야 유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내준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으니, 유신은 반역죄로 처단되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미실(고현정 분)에게 완전히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안 그런 척 하면서 그 정도의 죄를 저지를 정도의 인물이라면, 좀 더 털어보면 상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라든가 혹은 고구려·백제·신라 '3중 국적'을 가진 정황이 혹 나올지도 모르는데, 웬일인지 미실은 수사를 중단시키고 유신에게 손을 내민다. 나의 편이 되면 살려주겠노라고. 미실은 유신을 자기 품으로 끌어안고 싶었던 것이다.

곧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유신. 그런 유신이 "내가 들어가면 가야 유민들을 살릴 수 있다"며 미실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한다. "이제 새주님의 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그런 유신(당시 18세)에게 미실(당시 64~67세)은 대답한다. "내가 나이가 늙어 직접 품을 수 없으니 내 손녀 영모랑 혼인을 하시지요!" 천명·덕만 편에 서서 미실과 대립하던 유신이 '미실의 남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21일과 22일의 드라마 <선덕여왕> 제35부 및 제36부에 방영된 위의 내용은 실제 역사와는 무관한 픽션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진짜다. 유신과 미실이 한 편이 되었다는 이야기만큼은 분명히 기록상의 근거를 갖고 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유신은 미실의 도움을 받아 화랑도 부제(2인자) 및 풍월주에 올랐고 또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혼인을 했다.

이 같은 유신과 미실의 정치적 제휴는 신문 지면의 가십거리에 불과한 정도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6세기 후반 이래의 세계적 위기에 직면한 신라가 가야세력을 적극 포용하여 국내의 정치적 역량을 총결집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 연결고리였다.

김유신은 신라의 대동강 이남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런 김유신에게 출세길을 활짝 열어준 유신과 미실의 제휴는 '역사적 커넥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같은 커넥션이 어떤 배경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었으며, 또 그것은 어떤 영향을 산출했을까? <삼국사기>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물론이고 당시의 세계정세를 종합하여 유신-미실 커넥션의 전모를 파헤치기로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들이 혹시 갖고 있을지 모르는 의문을 먼저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유신이 풍월주가 될 때만 해도 유신 집안의 정치적 대표자는 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이었는데, 서현-미실 커넥션이라고 하지 않고 유신-미실 커넥션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점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보다 더 유명해지지 못한 아버지는 역사 속에서 '아무개의 아버지'로 기억되어야 하는 '비운'(실제로는 영광)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유신-미실 커넥션의 배경

첫째, 거시적 배경. 서기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중반까지 동아시아 세계에는 한바탕의 소용돌이가 크게 휘몰아쳤다. 근 4백년 동안 혼란상태에 있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589년)하고, 이 수나라가 한무제 때의 영광 즉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재현하기 위해 대외팽창을 시도하고, 그런 수나라를 대체(618년)한 당나라 역시 팍스 시니카 재건에 나섬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가 일대 폭풍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웬만한 나라들은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라가 선택한 카드 중 하나는 가야세력 같은 비주류들을 적극 포용하여 나라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신라 정부는 화랑도라는 관변조직을 통해 제도권 밖의 인재들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했고, 그 결과로서 문노나 유신을 비롯한 가야세력이 화랑도 내부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실의 후원 하에 유신이 풍월주가 되고 또 미실의 손녀사위까지 된 것은 가야세력을 향한 신라 지배층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피'의 수혈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한 미실의 정치적 고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둘째, 미시적 배경. 유신의 어머니는 진골정통(왕비족)으로서 진평왕의 어머니인 만호태후의 딸이었다. 이 점은, 진골정통의 라이벌인 대원신통(또 다른 왕비족)에 속한 미실이 만호태후의 손자인 유신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요인이었다.

진흥왕·진지왕 때만 해도 미실과 같은 편인 사도태후(대원신통, 진흥왕의 부인)가 왕실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미실로서는 진골정통에게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진평왕의 즉위 이후 진골정통인 만호태후가 왕실의 어른이 됨에 따라 미실로서는 만호태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도 유신의 출세를 적극 돕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유신-미실 커넥션의 과정

제1단계. 609년의 화랑도 부제 추천. 만노군에서 서라벌로 갓 올라온 15세의 유신에게 미실은 큰 선물을 선뜻 안겨주었다. 화랑도 부제인 자기 아들 보종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유신을 적극 추천한 것이다. 부제가 되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풍월주에 취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신을 부제에 앉힌다는 것은 그에게 풍월주를 약속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2단계. 612년의 풍월주 임명 및 정략결혼. 부제에 오른 지 3년 만인 18세 때에 유신은 풍월주 호림의 양보를 받아 손쉽게 풍월주에 오르는 한편, 미실의 손자인 영모와의 혼인에도 성공했다. 금관가야 왕실의 후예인 18세 소년이 금관가야를 흡수한 '원수의 나라' 신라의 최대 관변조직을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위와 같이 '졸지에' 부제에 오른 뒤에 다시 풍월주에 오르고 또 정략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유신은 미실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으며, 이로써 권력의 핵심부에 다가설 수 있는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3> 유신-미실 커넥션의 영향

첫째, 신라 정계에 끼친 영향. 유신-미실 커넥션은 신라 정계의 비주류인 가야세력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신라 지배층이 가야세력의 협력을 토대로 고구려·백제에 대한 대항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다. 이전에는 삼국 중 최약체였던 신라가, 비록 나당동맹에 힘입기는 했지만, 고구려·백제를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내부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화랑도 조직에 끼친 영향. 유신-미실 커넥션은 화랑도 조직 내부에서 가야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제8세 풍월주인 문노 이후로 화랑도 내부에서 기반을 잡은 가야세력이 제15세 풍월주 김유신 시대에 세력을 훨씬 더 크게 늘렸다는 점은, 유신이 풍월주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되는 620년대부터 가야세력이 화랑도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미실 계통의 대원신통파를 약화시키는 데에 성공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신-미실 커넥션이 이처럼 신라 정계나 화랑도 내부에서 가야세력의 입지를 키우는 한편 화랑도 안에서 미실 계통의 대원신통파를 약화시키는 데에 기여한 점을 볼 때에, 이 커넥션의 진정한 승자는 유신이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유신은 미실에게 무릎을 꿇으며 "새주님의 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라며 항복을 선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신이 폭탄을 안고 미실의 품에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미실 쪽만 손상을 입은 셈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점을 본다면, 김유신이 미실을 죽이는 '사주'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석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지 않을까?
#선덕여왕 #김유신 #유신 #미실 #풍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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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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