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남자 그리고 당나귀

한 번쯤은 목적없이 길을 나서보자

등록 2009.09.25 13:38수정 2009.09.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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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당나귀 언제나 과묵한, 통 말이 없는 가을 남자 같은
생각하는 당나귀언제나 과묵한, 통 말이 없는 가을 남자 같은 김수복

가을에 만나는 당나귀는 향수를 닮았다. 튼튼한 네 다리에 우직한 몸매, 커다란 귀에 멋대로 흐트러진 갈기를 가졌으면서도 수줍음 많은 소녀처럼 가만히 선 채로 생각에 빠져 있는
당나귀는 가을을 푸념하는 남자를 닮아보이기도 한다.

흔히들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꽃피는 봄날은 여자의 계절로 공인(?)되었다.  여자는 좋겠다. 물론 가을에도 꽃은 핀다. 그러나 봄날에 피는 꽃과는 밀도와 습도가 다르다. 보이지 않게 달려오는 엄혹한 계절을 예감하며 후딱후딱 정리를 해야만 한다. 쓸쓸하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가슴에 자꾸 사막 같은 것이 형성되면서 남자는 예정에 없던 상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알 수도 없는 그리운 것에 대한 갈망으로 잠못 이루고 뒤척거리는 가을남자의 정서를 당나귀 울음소리에 대비시켜 멋드러지게 묘사한 시인이 있다면 누구인가, 찾아보기로 한다면 아마 백석을 일등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1938년 작품)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손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어느 아름다운 이국 여인이 나를 좋아해서, 나는 그 여인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산골짜기 오두막으로 데려가서 알콩달콩 행복을 노래한다는 백일몽 아니 한겨울밤의 꿈, 이러한 공상이야말로 가을에 접어든 남자의 심리는 아닐는지.

마음이 쓸쓸할 때, 희망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자꾸 우스워질 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고 여겨지는 참으로 이상한 정서에 사로잡혔을 때 백석의 이 시를 들여다보면 그 맛은 각별하고 뭔가가 금방 손에 잡힐 듯하다. 그 뭔가를 나는 일단 향수라고 본다.

이때의 향수란 물론 고향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공간과는 약간 다른 추상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어떤 것이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어쩌면 아예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꿈인듯이 기억인듯이 몽롱하게 참으로 몽롱하게 머릿속을 채색하는 추상화에 이끌려 남자는 길을 나선다. 어디로? 글쎄, 방향을 안다면 아마 길을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남자에게 가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약간의 반성과 체념, 포기 그리고 희망 뭐 이런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진 채로 부글부글 끓어대다가 서서히 질서가 잡혀지는 것, 아무 생각 없이 하늘 한 번 보고 나면 질서 하나가, 다시 또 아무 생각 없이 먼 길을 보고 나면 새로운 희망 하나가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것, 그러니 어쩔 것인가. 길을 나서지 않고 배겨날  수 있겠는가. 그 길이 설령 길이 아닌 허망하게도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아니 그렇기에 더욱더, 가을에 들어선 남자는 그 길을 걸어보아야지만 살 것 같아지는 것이다.

작으면서 큰 동물 당나귀는 귀와 성기를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작으면서 큰 동물당나귀는 귀와 성기를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김수복

가을 당나귀는 더 한층 남성적이다. 굳이 가을이 아니라도 당나귀는 도대체 여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작은 키에 작은 덩치와는 도무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두 귀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수컷의 그 성기는 또 얼마나 거대한가. 어떤 때는 땅에 질질 끌리기도 하는 거대한 성기 때문에 조선시대 여인들은 당나귀 등에 타는 것을 가문에 수치로 여겼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당나귀는 천방지축 멋대로 날뛰는 동물이 아니다. 그는 과묵하다.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햄릿이나 데카르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그는 햄릿이나 데카르트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생각이라는 방죽에 풍덩 자신을 빠트려놓고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악다구니를 쓰는 광기와 당나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는 일이 없을 때도 생각을 하지만, 일이 있을 때도 생각을 한다. 일과 생각을 병행하는 까닭에 얼핏 보면 게으름뱅이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중에 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곤 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부림을 당한 동물은 무엇일까. 언뜻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말이 떠오른다. 거대한 덩치로 한몫하는 황소가 생각나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인간에게 엄청난 노동을 제공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나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말은 구조적으로 등짐을 나르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황소도 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설령 등짐을 맡긴다 해도 아직 도로라 할 만한 길이 없던 시절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협곡을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가파른 비탈길을 무던하게 뚜벅뚜벅 올라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일이 잘못 되어 수렁에 빠지거나 비탈에서 굴러떨어졌을 경우 당나귀라면 사람 두세 명이 달려들어 구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말이나 소는 그 거대한 덩치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향수일까  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그렇게 물으면 그는 어쩌면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그냥 내버려둬요, 할 것만 같다.
향수일까 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그렇게 물으면 그는 어쩌면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그냥 내버려둬요, 할 것만 같다.김수복

당나귀는 키가 일미터 정도에 몸무게는 백 킬로그램을 넘나들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임신기간은 평균 364일이나 된다. 덩치로만 보자면 두 배 아니 세 배나 되는 말보다도 한 달이 더 길다. 그래서일까. 뱃속에서 내공을 쌓아서일까. 당나귀의 힘은 막강해서 가히 중장비를 연상케 한다. 그 무거운 소금을 몇 가마니씩 등에 얹고서도 메밀꽃이 소금처럼 뿌려진 밤길을 쉬지도 않고 걷는 동물이 당나귀다.

오늘날에도 산악지대에서는 당나귀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부리고 있고, 특히 콜롬비아에서는 당나귀 등에 책을 싣고 다니는 이동도서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동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는 '출판저널'이라는 잡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시인 백석이 절창처럼 묘사 했듯이, 당나귀는 실제로 응앙응앙 소리를 내며 운다. 과묵해서 소리를 거의 내지는 않지만, 일단 소리를 냈다 하면 마치 따발총을 쏘아대듯이 숨도 쉬지 않고 응앙응앙 소리를 내는데 아이 같지도 않고 어른 같지도 않은, 여성성도 아니고 남성성도 아닌 기이한 그 소리의  울림은 또 어찌나 굉장한지 옆에 있으면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소리는 흡사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한 사내가 두 두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려대며 나는 누구냐, 누구냐, 누구냐, 하고 잇달아 질문을 쏟아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도 요란하게 세상을 뒤집어엎을 듯이 소리를 질러대지만, 소리를 끝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이다.

어린 당나귀 작년 6월생이라 한다. 어린애도 이렇듯 생각을 한다.  송아지나 망아지는 이 시기에 마구 뛰어다니는 것으로 일을 삼지만, 당나귀는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어린 당나귀작년 6월생이라 한다. 어린애도 이렇듯 생각을 한다. 송아지나 망아지는 이 시기에 마구 뛰어다니는 것으로 일을 삼지만, 당나귀는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김수복

갈 곳도 없이, 오라는 데도 없이, 그저 그냥 울 것 같아서 울지 않으려고 길을 나섰던 남자는 결국 돌아오기 마련이다. 어디 허름한 여인숙 같은 데서 피처럼 붉고 진한 서정을 만나 연애를 했을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묻지 말라 아내들이여. 어디서 뭘 하고 처자빠졌다가 돌아온 것이냐고 타박하지도 마시라. 그저 가볍게 한 마디 '이제 좀 괜찮아졌어?'하고 실실 헤픈이 같은 미소나 두어 번 지어 주시라.

남자는 언제라도 그렇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지만, 당나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오늘날에 이르러 당나귀는 멸종위기 동물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었다. 내연기관의 발달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당나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착취할 생각도 안 하게 되었다. 극소수 산악지대 원주민들만이 당나귀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기업 아니 세계적 기업 차원의 정리해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 정리해고의 예상되는 결과가 종의 소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에 걸쳐 쌓아온 인간을 위한 업적은 흔적도 없고 인간은 이제 그만 자기들을 용도폐기하려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래서 저렇게도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일에 익숙한 것일까.

다른 수많은 멸종위기 동물과 당나귀의 멸종 경고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바친 그 엄청난 수고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당나귀를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설령 누군가가 자기를 이유 없이 때린다 해도, 쟤가 왜 저러나 하고, 물음표조차 느낄 수 없이 흘낏 한 번 보고는 다시 자신의 관심사로 돌아가 버리는, 도무지 싸움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무덤하게 그냥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서서 생각이나 하고 있는 당나귀의 생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자꾸 미어진다. 그래서 우두커니 보고만 있는데, 홀연 한 소리가 귓속을 후빈다.

일을 하고 싶어요. 일을 만들어 주세요.
뭐라고?
당신들은 모를 거예요. 일은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들은 몰라요.

백일몽이다. 당나귀가 내게 그런 소리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당나귀가 내게 그런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나,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남자였구나. 내일쯤은 나도 길을 좀 나서봐야겠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거친 들판 억새꽃 사이를 헤매며 가버린 시간들을 반추해봐야겠다.
#당나귀 #가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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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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