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상봉단 중 최고령인 정대춘(왼쪽)씨가 북측 아들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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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꼬마였던 막내아들을 60년 만에 만난 95세 아버지는 "이제 한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곧이어 아버지는 북에 있던 가족이 아들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낙담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을 안쓰러워했다.
추석을 맞아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 97명(동반가족 29명)이 26일 오후 3시 북한에 있는 가족 238명을 금강산 공동면회소에서 상봉한 가운데,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인 정대춘(95)할아버지도 북측의 아들 정완식(68)씨를 만났다. 완식씨는 "아버지, 잠시 서울 가신다고 하고는 왜 이제 오셨어요"라고 '원망' 섞인 인사를 건넸다. 정대춘씨는 고향인 황해도 평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업을 하던 중 6·25전쟁이 나면서 북한의 두 아들, 딸과의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남측의 아들 태근(48)씨는 "아버지는 북한에 있는 자식들을 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면서 "10년 전부터 '정대춘'으로 상봉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이번엔 북한에서 쓰던 이름인 '정운영'으로 신청했는데 상봉자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완식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었지만 말을 잘 못알아듣는 모습이었고, 지난 해부터 시작됐다는 신경 이상으로 연신 손을 떨기도 했다. 정 할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나보다 젊은 애가 이게 무슨 일이냐, (아버지를 찾으려고) 너무 생각했구나. 이게 거꾸로 됐다"고 탄식했다. 처음 할아버지를 만난 북측 손자 명남씨는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며 안심시키려 애썼다.
애초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박양실(96) 할머니였으나 출발 직전인 24일 자택에서 허리를 다쳐 이날 집결지에 오지 못했다. 박씨는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황해도 은율군에 두고 온 딸 리언화(62)씨를 만날 계획이었다. 박씨의 동반가족 자격으로 동행 예정이었던 이대원(63)씨를 어머니 대신 정규 방문단원에 포함시키는 방안에 북측이 동의하면서, 남매간에 만남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