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아들 만난 95세 아버지 "나보다 젊은 애가..."

[이산가족상봉] 국군포로 가족도 재회-남북적십자 대표 면담도

등록 2009.09.27 12:44수정 2009.09.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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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상봉단 중 최고령인 정대춘(왼쪽)씨가 북측 아들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고 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상봉단 중 최고령인 정대춘(왼쪽)씨가 북측 아들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8살 꼬마였던 막내아들을 60년 만에 만난 95세 아버지는 "이제 한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곧이어 아버지는 북에 있던 가족이 아들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낙담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을 안쓰러워했다.

추석을 맞아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 97명(동반가족 29명)이 26일 오후 3시 북한에 있는 가족 238명을 금강산 공동면회소에서 상봉한 가운데,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인 정대춘(95)할아버지도 북측의 아들 정완식(68)씨를 만났다. 완식씨는 "아버지, 잠시 서울 가신다고 하고는 왜 이제 오셨어요"라고 '원망' 섞인 인사를 건넸다. 정대춘씨는 고향인 황해도 평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업을 하던 중 6·25전쟁이 나면서 북한의 두 아들, 딸과의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남측의 아들 태근(48)씨는 "아버지는 북한에 있는 자식들을 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면서 "10년 전부터 '정대춘'으로 상봉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이번엔 북한에서 쓰던 이름인 '정운영'으로 신청했는데 상봉자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완식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었지만 말을 잘 못알아듣는 모습이었고, 지난 해부터 시작됐다는 신경 이상으로 연신 손을 떨기도 했다. 정 할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나보다 젊은 애가 이게 무슨 일이냐, (아버지를 찾으려고) 너무 생각했구나. 이게 거꾸로 됐다"고 탄식했다. 처음 할아버지를 만난 북측 손자 명남씨는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며 안심시키려 애썼다.

애초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박양실(96) 할머니였으나 출발 직전인 24일 자택에서 허리를 다쳐 이날 집결지에 오지 못했다. 박씨는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인 황해도 은율군에 두고 온 딸 리언화(62)씨를 만날 계획이었다. 박씨의 동반가족 자격으로 동행 예정이었던 이대원(63)씨를 어머니 대신 정규 방문단원에 포함시키는 방안에 북측이 동의하면서, 남매간에 만남이 이뤄졌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린 26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치러진 단체상봉에서 남측 상봉자인 이정호 씨(왼쪽)가 국군포로 형인 북측 리쾌석 씨와 만나 서로 끌어안고 반가워 하고 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린 26일 오후 금강산면회소에서 치러진 단체상봉에서 남측 상봉자인 이정호 씨(왼쪽)가 국군포로 형인 북측 리쾌석 씨와 만나 서로 끌어안고 반가워 하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형은 국군포로로, 동생은 형 찾으려 입대.... 형 사망통지서 받은 뒤에야 제대

납북자 2가족과 국군포로 1가족 등 이른바 '특수이산가족'의 만남도 성사됐다. 국군포로 이쾌석(79)씨는 남한의 동생 정호(76), 정수(69)씨를, 1987년 1월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 노성호(48)씨는 남측 누나 순호(50)씨를, 역시 동진호 선원 진영호(49)씨는 누나 곡순(56)씨와 각각 만났다.


쾌석씨는 6·25가 일어난 뒤 징집됐다가 실종됐고, 동생 정호씨는 1952년 자원 입대한 후 1963년에 제대했다. 정호씨는 "전쟁터에 가면 소식이 끊긴 형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자원 입대했다"면서 "전쟁이 끝난 뒤에서 민간인보다는 군인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형 소식을 수소문하는 데 좋다고 해 판단 복무기간을 늘렸다"고 말했다.

그러다 1960년 형의 전사 통지서를 받은 뒤 제대했다. 하지만 형은 포로가 돼 북한에 가 있었고, 동생은 3개월 전에 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쾌석씨는 "1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정호씨의 말에 "나는 오마니를 한 시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납북 22년 만에 누나 순호씨를 만난 동진호 선원 노성호씨는 "여기 와서 장가도 가고 대학도 나오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 한시도 고향 생각, 누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고, 순호씨는 "옛날 모습 그대로네"라며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진영호씨의 누나 곡순(56)씨는 처음 본 올케에게 한복을 선물했다. 올케 안금순씨는 "아버지(김일성 주석)와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아무리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더라도 걱정 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유종하 단장(왼쪽)과 북측 장재언 단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인 26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남측 유종하 단장(왼쪽)과 북측 장재언 단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저녁 7시부터는 북측 주최로 금강산 호텔에서 환영만찬이 열렸다. 북측 상봉단장인 장재연 조선적십자사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던 혈육들의 유대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6·15(공동성명)의 넋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라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만이 여러 분들(이산가족) 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상봉단을 이끌고 방북한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적십자의 사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이제는 남북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에 앞서 별도 면담을 가졌다.

이틀째인 27일에는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금강산 호텔 객실에서 개별상봉이 진행됐으며 공동점심식사에 이어 오후 4시부터는 온정각 앞뜰에서 야외상봉이 예정돼 있다.

이번 추석 상봉은 지난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의 '묘향산 합의'에서 물꼬를 튼 것으로, 2007년 10월17~22일 열린 제16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약 1년11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또 이날 단체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는 지난 해 7월말 완공된 것으로,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가동됐다.

상봉 대기자 8만6천명 넘어

사흘씩 1, 2차로  나눠 진행되는 이번 추석상봉은 1차에 이어,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99명이 재남가족(449명)과 만날 예정이다.

이번 상봉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16회의 대면상봉과 7회의 화상상봉을 통해 1만9960명(남북 한 상)이 만났다. 하지만 올해 8월말 현재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8만6300여명('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신청자 12만7천여명 중 생존자)에 달한다. 이들이 전부 고령자라는 점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전면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황방열기자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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