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할아버지오늘도 해가 저물었지만 김만용 할아버지는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다. 이화오토바이자전거상회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촌에서 유일하게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취급하고 수리하는 가게로 남아 있다.
김갑봉
그 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부평구 신촌에 살림집을 얻었다. 신촌은 부평미군기지 앞 부평3동 일원으로,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벗어나기 위해 조병창(군수공장)에 취직한 조선인들의 무허가 천막촌이었다가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집창촌이 형성됐다.
"뭐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40년 세월을 바퀴랑 붙어 산 것 같으요. 제과회사 그만 두고 여기서 구멍가게를 했는데 그도 신통치 않았던 것 같어. 그러던 중 오토바이와 인연을 맺게 된 일이 발생했고, 그 일이 내가 이 '두 바퀴' 물건의 판매와 정비업으로 옮겨갈지는 몰랐어. 그 땐 또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괜찮은 물건이었거든." 사연인즉, 당시 동네슈퍼는 지금의 만물상과 다름없다. 기본적으로 식료품을 취급하지만 가정에서 필요로 한 것들을 다 들여놔야 했다. 그리고 주문배달이 많아 구멍가게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한 대씩은 있었는데 그 오토바이를 누가 훔쳐가 버린 것.
김씨는 "영등포경찰서에서 범인을 잡았다고 연락 왔는데 김포공항에 버려져있다는 게요. 그래서 부랴부랴 찾아가서 집으로 끌고 오는데 부천쯤 이르러 멈춰서더니 고장이 나버렸지 뭐야"라며 "인근 정비소엘 갔더니 훔쳐간 놈이 부품을 망가뜨려놨다면서 그 양반이 오토바이 정비방법을 일일이 알려주기에 배웠는데, 거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집에 와서도 오토바이를 분해했다, 조립했다, 하면서 정비기술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가게를 차리게 됐어"라고 말했다.
"가게 앞 도로가 신촌의 종로였어" 그렇게 오토바이와 인연을 맺은 김씨는 부평미군기지 정문(지금은 구 정문으로 바뀜) 건너편에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판매하고 수리하는 이화오토바이자전거점을 냈다. 그렇게 신촌에 처음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취급하는 가게가 생겼고, 지금도 신촌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아파트로 변한 산곡3동 현대아파트단지와 부평1동 동아아파트단지 모두가 미군기지터였다. 미군들이 많다 보니 당연히 이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한 장사가 많았고, 그중 가장 많았던 것은 술집 중에서도 일명 '색시집'이었다. 게다가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경인전철이 있긴 했으나 백운역(1984년 개통)과 부안고가교(1977년 개설, 경인전철 횡단)가 들어서기까지 이 일대가 번화가였기때문에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