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에서 아름다운 꽃을 실컷 구경하면서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멜본을 향해 떠난다. 또다시 초원의 연속이다. 소들이 한가히 풀을 뜯는 도로 옆 조그만 언덕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들판을 장식하고 있다. 차 창가로 언뜻 보기에는 소들이 보라색 풀과 노란색 풀을 뜯어 먹는 것처럼 보인다. 저 꽃들은 잡초임에도 들판을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잡초도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름다운 동산에 마음을 빼앗기며 운전하는데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니 쉬어가라는 안내판이다. 영어로는 'Driver Reviver, Free Coffee'라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방학 기간이라 여행객이 많아서 여행객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지역 주민이 봉사하는 곳이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는 많은 사람이 감사의 말을 써 놓았다.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 호주는 자원 봉사자가 많은 나라다. 특히, 퇴직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신다. 무료로 주는 과자까지 먹으며 주위를 걷는다. 잠수함을 놀이터 한복판에 갖다 놓고 학습용 및 놀이 기구(?)로 사용하고 있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에 잠수함을 갖다 놓은 생각이 돋보인다. 왕가라타(Wangaratta)라고 불리는 조그만 동네에 머물러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멜본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난다.
멜본은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다. 그리스계의 사람들이 그리스 본국 다음으로 많이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호주에 살면서 서너 번 들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멜본 도심지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남해안을 향해 떠났다.
한참을 가다 보니 무서움을 느낄 정도의 푸른색 바다가 보인다.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검푸른 바다'가 눈앞에 전개된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바다 공기를 깊이 마신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바닷바람이 가슴을 휘젓는다. 호주가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 남해 해안 도로(Great Ocean Road) 입구다.
자동차로 남해도로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숲이, 왼쪽으로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하늘에는 비구름과 파란 하늘이 동시에 보이며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멀리 무지개가 보이고, 휘몰아치는 바람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파도를 볼 수 있어 드라이브의 맛을 더 해주고 있다.
절경을 자랑하는 남해 해안도로가 끝나고 도로는 바다를 떠나 산속으로 자동차를 안내한다. 숲이 울창한 산이다. 오트웨이 국립공원(Otway National Park)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깊은 산 속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도로를 운전하는 재미와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멋있다. 호텔 간판을 보고 들려 보았다. 하룻밤 자는 데 200불이라고 한다. 시설이나 위치가 좋긴 하지만 하루 30불 주고 텐트 치며 지내는 여행객에게는 너무 비싼 값이다.
날이 어두워진다. '산속의 해는 유난히 짧다'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난다. 흩날리는 빗속에 텐트를 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하룻밤 지낼 숙소를 찾으며 조심스레 운전을 한다. 산 정상에 오르니 심하지 않은 우박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다.
다행히 나 같은 여행객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하룻밤 재워주는 곳을 찾았다. 깨끗하지 못한 숙소지만 빗속에 텐트를 치는 것보다는 한결 낫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진하게 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침구는 내 것을 쓰기로 하고 잠자리를 마련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곳만 있어도 사람은 이렇게 행복해 질 수가 있는 것을……
2009.09.29 08:4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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