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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유행이란다. 걷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내게 있어선 아침해가 막 떠오른 시간, 바람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이다. 햇살이 강하지 않고, 촉촉한 느낌, 이슬방울을 머금은 초록식물들의 싱싱한 모습이 백미다.
초록식물들의 가장 싱그러운 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도시에 살게 된 이후 잃어버린 아침산책, 쉬는 날이면 이슬이 남아있는 풀섶을 걷기 위해 서둘러 야외로 나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해국이다. 그를 만난 곳이 바다였다면, 갯바위 틈에 피어있는 해국이었다면 더 멋졌을 것을 아쉬움이 남지만 고향을 떠난 그곳에서도 때가 되니 활짝 피어난 해국의 마음만으로도 벅차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만나게 된다. 걸음걸이도 운동삼아 걷는 것이라면 육신의 건강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건강도 생각할 일이다. 내면의 건강, 그것은 자기를 둘러싼 세상 혹은 자신이 걷고있는 그 길에 어떤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지를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떤 것들은 함께 살아야 함에도 인간의 욕심에 밀려 더이상 삶을 살아갈 수 없어 신음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만나면 아프지만, 다른 생명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삶의 자세인 것이다.
이기주의에 빠져 타인의 아픔에 무관할 뿐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서도 떳떳한 사람 혹은 그것을 선한 것으로 덧칠하는 사람은 생명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신비한 세상이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향해서만 걷는 것이 아니라 때론 뒤돌아 걷기도 하고, 그 곳에 한참을 머물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도퇴한다고 가르치는 세상이지만 결국 이 땅의 모든 것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금 멀게 돌아가 그저 앞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뿐,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씨앗이 싹을 틔운 후 꽃을 피우고 바람과 햇살과 비와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열매에 있다. 열매는 그 삶의 결론이자 끝이며,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누가 열매를 보고 슬퍼하는가?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열매는 죽음, 또다른 삶의 시작임에도 우리는 늘 슬퍼한다. 연록의 싹, 화사한 꽃과 달콤한 향기 이 모든 것들은 열매를 향해 집중되어 있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맺을 열매에 집중해야 한다.
탈피에 탈피를 거쳐 성충이 된 실베짱이의 모습은 전혀다른 생명을 보는듯하다. '거듭남'의 비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의 선언을 보는 듯하다.
가을은 거듭남의 계절이다. 이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전의 수고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의 노동, 그것은 자신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 세계를 향해 열려져있다. 새 세계를 향한 문을 굳게 닫고, 현상유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퇴보하는 삶과 다른 말이 아닌 것이다.
아침에는 곤충들의 움직임이 둔하다. 지난 밤 추위가 아직도 몸에 서려있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발품을 팔지않으면 볼 수 없는 세계, 발품을 팔며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그런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조급증에 걸린냥 쉼없이 뛰어가며 경쟁하는 세상도 변할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이미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죄다 잃어버리고 소중한 무언가를 찾겠다는 어리석은 이들도 적어질 것이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가을 아침 이슬 송글송글 맺혀있는 풀섶이 있는 곳을 걸으며 그 안에 있는 세상을 보는 여유를 한 번쯤은 누리는 것이 사치는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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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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