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철회초화문매병신안앞바다에서는 강진에서 만든 청자를 싣고 가다 풍랑을 만나 가라앉은 배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청자보다 오히려 녹청자가 더 많이 있었습니다. 산이면 녹청자의 인기를 보여주는 이 녹청자는 강진의 청자와 함께 배를 통해 서해를 지나 각지에 팔려나갔습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남해안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토기에 조개껍질을 넣어 굽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남해안의 토기는 더 단단해서 '경질도기'라고도 부릅니다. 조개껍질을 흙속에 넣어 구우면 높은 온도까지 흙이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해남의 녹청자를 만드는 도공들은 남해안의 전통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온 것입니다. 조개껍질을 곱게 빻아 넣어 만든 유약은 녹색유약이 가진 단점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조개껍질 속에는 탄산칼슘이 들어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유약의 3대 성분 중의 하나입니다. 해남의 녹청자를 한껏 고급스럽게 만들어준 비밀이 담겨진 물질은 바로 '조개껍질'입니다.
칼슘이 들어 있는 유약은 잘 녹아 부드럽게 됩니다. 그리고 매우 높은 온도까지 올리지 않아도 유약이 녹아들어가기 때문에 보다 쉽게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자기 표면을 빛나게 합니다. 바닷가에 조개껍데기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듯이 말이에요. 이 성분이 들어갔을 때 비로소 아름답고 투명한 도자기가 만들어집니다.
규석, 장석, 석회석을 유약의 세 가지 요소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배합되면 투명하고 빛이 나면서도 흘러내리지 않는 유약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고급 도자기에는 질 좋은 규석, 장석과 함께 석회석이 들어갑니다. 석회석이 바로 질 좋은 탄산칼슙입니다.
석회석에 비해서는 질이 떨어지지만 조개껍질을 곱게 빻아 넣으면 유약을 만드는 성분인 탄산칼슘이 배합된 고급유약이 됩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우아하고 그 나름대로 정겨운 서민용 도자기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해남의 녹청자는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새로운 청자로 탈바꿈하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녹청자야말로 청자의 대중화, 도자기가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1등 공신이 아니었을까요?
쌍화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고려의 서울인 개경의 번화가는 광화문이었습니다. 광화문 앞 도로 양편으로는 매우 고급스러운 상점과 술집과 음식점과 차를 파는 다점 등등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쌍화점'도 있었습니다.
쌍화점은 만두가게입니다. 밀가루로 만든 얇은 껍질에 소를 싸서 만든 지금의 만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교자입니다. 고려의 만두는 밀가루를 발효시켜 소를 넣고 찐 중국식 만두인데 이 음식이 쌍화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것으로 찐빵과 비슷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온 국민이 차를 즐겨 마시고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모자라는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참기름이나 참깨를 먹었습니다. 외국 사신이라도 오면 고기요리를 해야 하는데 가축을 잡아 요리하는 것이 서툴기 그지없어 놀란 중국인은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놓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잘게 다져서 소를 만드는 만두가게가 개경에서 잘나가는 음식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쌍화점>은 고려가요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왜 쌍화점이라는 노래가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유목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고기 먹는 법은 물론이고 고기 요리하는 법도 잊어버린 고려인들을 일깨웠습니다. 그렇지만 가축을 도살하지 못해 외국 사신이 혀를 끌끌 찼던 나라가 몽골에 항복한 문서에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만두가게에 사람들이 넘쳐나게 된 데에는 충렬왕의 힘이 컸습니다.
충렬왕은 고려시대 임금 가운데 충자로 시작하는 첫 번째 임금입니다. 충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에서 보듯이 나라에 충성한 사람에게 주는 시호입니다. 충렬왕은 원나라에서 준 왕호입니다.
이름에서 확 풍기듯 충렬왕은 몽골풍을 우리나라에 퍼뜨리는데 앞장섰습니다. 원나라에서 원한 것도 아닌데도 변발과 호복이라는 몽골식 복장을 하고 몽골 군복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러니 권문세족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멈추지 않았지만 개경의 번화가에는 가게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궁궐에서도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쌍화점>은 충렬왕을 위해 지은 노래입니다. 1279년에 오잠이란 사람의 지휘 아래 팔도에서 모아온 기생들을 남자로 변장시켜 지금의 뮤지컬과 비슷한 연극을 하게 했는데 그 때 불려진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