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로 오르는 상여. 외숙모 상여라서 그런지, 어렸을 때 고향동네 신작로에서 봤던 상여 분위기와 다르게 느껴졌다.
조종안
배고픈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상여 뒤를 따라가 햇살이 따사하게 내리쬐는 잔디에서 씨름도 하고, 누가 혼자 상여집에 다녀올 수 있는지 대담성을 겨루기도 했다. 돌아올 때는 귀신이 잡아당긴다는 소문 때문에 맨 뒤에 서는 것을 꺼렸는데, 글을 쓰면서도 당시 장면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요즘은 달라졌지만, 며느리 친정에 상이 나면 대부분 시아버지가 대표로 다녀왔다. 그런데 딸의 시부모가 돌아가시면 오빠들까지 조문을 다녀오는 게 상례였다. 이러한 관습은 남존여비 사상과 딸의 시집살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애틋한 마음으로 이해된다.
아버지나 형님이 상가에 다녀오면 어머니가 소금을 뿌리고서야 대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재앙이나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상가에 다녀와서 아팠다고 하는 이들을 종종 보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화투를 쳤으니 후유증으로 감기나 몸살에 걸릴 수밖에.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임산부는 상가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미신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임신을 하면 첫째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하고, 태교 음악, 태교 음식 등에 관심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택시나 트럭 기사들이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상여를 만나면, 상서로운 일로 받아들여 아무리 바빠도 차를 세우거나 옆으로 비켜 상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운전석에서 내려와 망자 노잣돈을 상여 줄에 걸어주는 기사도 있었는데, 육신은 죽어도 정신은 소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사람들은 상여를 메고 가면서 무겁다고 하면, 망자가 노해서 더 무겁게 누르니까 말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 아버지 상여를 매고 가면서 무겁다고 하니까 더 무거운 것 같더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신적인 문제로 보인다. 손에 든 물건도 무겁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남편을 잃은 아내는 "아이~고 아이고~, 이 야속허고 무정헌 양반아, 갈라믄 나를 데리꼬 가야지, 새끼들 허고 어치케 살라고 혼자만 간단 말이요. 술 마신다고 구박혔든 내가 죄인이요. 죄인. 아이~고 아이~고오···"라며 음률의 높낮이를 맞춰가며 애절한 시를 읊듯 곡을 했는데,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장송곡이라 하겠다.
'객사'를 두려워하던 80년대까지만 해도 병원에 입원한 부모가 생명이 위태로우면 숨을 거두기 전에 집으로 모셨던 것과 달리 요즘에는 모든 절차가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장례문화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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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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