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손으로 베낀 아들, 이 갈았을걸~"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펴낸 조정래 "이글이 유서가 돼도 좋다"

등록 2009.10.06 15:59수정 2009.10.0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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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내 생애 쓸 수 없는 유언이 될 것" 올해로 작가 생활 40년째를 맞이하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태백산맥>,<아리랑>,<한강>)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을 시사인북에서 펴냈다. ⓒ 김윤상


"글을 쓴다는 것은 피를 말리고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기만 했다면 40년 동안이나 글을 쓰지 못했겠지요. 고통스럽지만 작품을 탈고하고 나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일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감옥은 감옥이되 황홀한 만족감을 주는 감옥이죠."

작가 조정래(66)씨가 단편 <누명>부터 현대사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아리랑><한강>에 이르기까지 글쓰기 인생 40년을 담은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시사인북 펴냄)을 펴냈다.


6일 책 출간을 기념해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책의 집필 취지와 내용들에 대해서 소개했다.

"자식들에게도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습니다. 제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이 책이 내 유서가 될 수도 있지요. 산문집은 등단 33년 되던 해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처음으로 냈는데 제 삶 전체를 조망하는 글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제 자식들과 손자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주역들에게 작은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래의 주역들에게 작은 디딤돌이 됐으면..."

책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졌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 250여명으로부터 '평소 조정래 선생에게 궁금했던 질문' 500여개를 받아 이중 84개를 추려 답했다. 작가는 "그동안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갚고 싶었다"고 했다.

"질문 500개 중에서 원래는 질문 86개를 추렸어요. 그런데 2개는 제가 쓴 중단편과 내 문학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답을 적은 것을 아내가 보더니 '너무 자화자찬'이라면서 빼래요. 그래서 질문 84개가 됐지요. 제가 이렇게 내부검열을 철저히 당합니다. 집안에 또 하나의 '중앙정보부'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좌중 웃음)


작가는 84개의 질문을 그의 작품론과 문학론, 인생론으로 분류해 정리했다. 원고지 1478매에 이르는 원고에서 그는 40년 글쓰기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론과 창작실기론에서부터 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게 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어줄 답변을 내놨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꾸준하게 노력하라'는 말이래요. 아들 내외에게 책을 베껴 쓰게 한 것도 성실한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마 이를 부득부득 갈았겠지요."(좌중 웃음)


검찰의 <태백산맥> 내사에 얽힌 일화도 처음 공개

 작가 조정래씨가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작가 조정래씨가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시사인 제공

특히 책에서는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을 때, 그리고 <아리랑>을 쓰기 위해 시도했던 중국 취재가 안기부의 방해에 가로막혔을 때 도움을 줬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에 얽힌 일화도 처음으로 소개됐다.

또 오해를 무릅쓰고 <한강>에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에 대해 쓰고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까지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도 담겼다.

"이어령 선생한테는 처음으로 글을 통해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당시에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절실한 감정이 말로 표현하면 그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리고 <한강>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박태준이라는 사람이 이룩한 일과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 그리고 진실성이 나를 감동시켰어요. 그래서 <한강>에서는 보통 이야기 하나를 120매 정도 썼는데 포항제철과 박태준 회장에 대해서는 그 두 배인 250매를 쓰게 된 것입니다."

2007년 발표한 장편소설 <오 하느님> 이후 어린이 위인전 집필을 해왔던 작가는 현재 1500매 분량의 소설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또 고등학교 시절 간직했던 화가의 꿈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취재를 2개월 정도 한 후에 12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내년 7월이나 8월쯤 책이 나오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 전에는 문학 계간지에 500매씩 3회 연재를 할 겁니다. 무엇에 대한 소설이냐를 말로 하면 싱거워집니다. 궁금증을 간직하고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제가 80살 넘게 산다면 그림도 그려볼 계획입니다. 정신 안정과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니까요.(웃음) 물감을 전혀 아끼지 않고 덕지덕지 발라서 유화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반 고흐와 같은 질감으로 그려볼 생각입니다. 제 그림 받고 싶으신 분들 신청하세요."(좌중 웃음)

"인생의 경과의 철학... 재능이 아니라 노력 담아야"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인생론을 축약한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인생에서 두 가지는 공평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원인의 철학도, 결과의 철학도 아니다, 경과의 철학'이라고 말했지요. 그 경과 속에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들어있어요. 저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엮어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이 황홀하다고 느껴요."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시사IN북, 2009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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