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이공계 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변화를 보면 가히 놀랍다는 표현이 든다. "낡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기치 아래 융합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나타나고 있다.
이공계 대학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문화과학대학, 경영대학, 테크노경영대학원, 이노베이션학부의 경영과학과와 같은 전공들이 그러하다. 이 대학의 경영과학과의 교수진을 보면 컴퓨터 보안업체 CEO로 유명한 안철수 석좌교수와 같이 우리 귀에 익은 이름이 있다. 의사, 의과대학 교수, 벤처기업 CEO, MBA를 거쳐 경영과학을 강의하는 안교수와 그의 부인 김미경 교수 역시 같은 전공의 교수로 일한다.
의사, 의과대학 교수, 로스쿨, 변호사를 거쳐 KAIST 교수가 된 그녀 역시 고도로 단련된 퓨전 학문을 전공하여 지적재산권 및 생명윤리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의하고 있다. 한 우물을 파는 것만이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시대의 화두가 되어 버린 "융합(fusion)"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통섭(consilience)"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KAIST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 및 조직에서도 다양한 학문과 지식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아주 이질감이 클 것 같은 두 문화 사이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체외수정을 통해 우량한 DNA를 추출해 낸다는 점이다.
통섭(Consilience)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19세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인데, 그는 1840년에 출간한 저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이 말을 "더불어 넘나 든다"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과학을 비롯한 학문의 성장을 강에 비유했다. 수많은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는 것처럼 먼저 밝혀진 학문적 진리들이 하나둘씩 합쳐져 결국엔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한다고 주장하였다. 'Consilience'는 "jumping together"라는 의미의 라틴어 "consiliere"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넘나드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현대에 와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에 의해서인데, 그는 인간 역시 생물체임에 주목하여 진화의 역사를 거쳐온 인류의 출발점을 생물학의 관점에서 조망하여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 책의 번역은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맡았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consilience'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지 못해 고심하다가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가진 '통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융합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통섭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창조해 가면서까지 번역한 최 교수의 고심이 마음 속 깊이 와 닿는다.
물론 통섭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지만, 통섭이 오늘날 강조되는 이유는 학문이 점차 전문화, 세분화되면서 학문분야 사이의 장벽이 높아지게 되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눈 것처럼 극단적으로 인문학과 과학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이질화 되어 온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학문의 경계는 급속하게 허물어지고 있으며 특히 공학을 포함한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에는 서로 구분이 분명했던 학과들도 이제는 그 교집합이 점점 커지며 서로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법의학 역시 융합학문의 대표적인 사례다. 법학과 의학의 조우로 의학적 사실에 입각한 법학의 치밀함이 결합하여 새로운 학문분야로 뻗어가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 미디어 아트라는 분야를 잉태하였다. 또한 전자공학과 기계공학이 결합하여 메카트로닉스를 낳았으며, 자연과학과 철학이 결합하여 과학철학을 낳았다.
필자의 전공은 토목공학인데 과거 학부시절에는 토목공학에 있어 기초화학의 중요성은 별반 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콘크리트의 내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화학지식 및 전기화학적 지식이 필요하며, 또한 건설공학과 경영학이 접목하여 건설사업관리(Construction management)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만들어 내어 공사의 원가절감 및 공사기간 단축, 구조물의 품질향상에 기여하여 책상 속의 학문이 아닌 실사구시 학문의 탄탄한 토대를 제공해 준다.
의술을 베푼다는 공통분모가 엄연히 있음에도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일견 공존하기 힘든 분야처럼 보인다. 최근 통합의학실습이라는 과목이 개설된 의과대학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학에 잘 훈련된 의대생들이 영성의학이나 음양오행으로 병을 설명하는 것에 깊은 공감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의학 역시 예로부터 전해지는 충분한 임상경험의 축적에서 비롯한 통계적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 역시 통섭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통섭이라는 단어를 빗대어 "이 단어는 앞으로 틀림없이 저주받은 말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징그러운 저 에코파시즘의 대표 브랜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것을 국내의 동물학자 최재천 씨가 원효 스님의 개념을 빌려 '통섭'이라고 번역했다 한다. 잘한 것 같지 않다. 원효의 통섭이 최 씨가 주장하는 다윈이나 떼이야르나 휴얼이나 윌슨의 바로 그 집체주의, 전체주의와 연속될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섭이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시대의 지식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키워드가 되었으며, 많은 대학이나 조직은 학문이나 지식의 융합을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통섭을 실천에 옮기는 기관의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 MIT의 미디어랩을 들 수 있는데, 이 연구소의 주요 연구테마는 과학과 미디어 예술을 융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의 폭이 한정되거나 정형화 되어 있지 않으며, 상상력이 넘치는 기발하고 창의적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나노기술, 생명과학, 유비쿼터스, 가상현실 및 신기한 디지털 블러쉬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으며 이러한 제품 및 개념들은 통섭에서 비롯한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 생활에 쓸모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필자가 대기업에서 일할 때 기술연구소에서 토목구조 및 첨단 콘크리트 관련 연구를 주로 하였다. 큰 조직이라 업무가 대단히 세분화 되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특허출원 업무와 특허소송 업무에 손 댈 기회가 있었다. 새로 맡은 업무가 원래의 내 업무와 전혀 다른 업무처럼 보이지만 하는 일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에게 특허명세서 작성이나 민사소송의 냄새가 흠씬 나는 특허소송 관련업무를 부여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특허명세서의 본질은 엔지니어링의 연구개발의 결과를 권리화하는 작업이므로 동일한 업무나 다름이 없으며, 절차법이나 민법 역시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치밀하게 이빨이 들어 맞아 공학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리걸 마인드를 가지고 표현하는지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가지고 표현하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질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통섭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량은 이질적인 집단이나 분야 상호 간의 의사소통 역량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는 융합학문 및 융합지식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사람들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근본적인 사물의 원리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통섭이 출발한다는 점이다. 한 분야의 지식이 또 다른 분야에서 지식으로서 응용되고 융합되기 위해서는 사물의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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