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에 열린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대통령 묘비 및 추모비 제막식’에서 이희호씨가 새로 간행된 <옥중서신 1, 2>를 헌정하고 있다.
김당
특히 이날 제막식에서는 이희호씨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새로 간행된 <옥중서신1, 2>를 헌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빠짐없이 묘소를 찾아왔지만, 이날은 제막식장에 처음 입장할 때부터 제막식이 끝날 때까지 내내 굵은 눈물을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옥중서신>은 김 전 대통령이 수형·망명 중에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1권은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이씨에게 보낸 편지이고, 2권은 이씨가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편집, 출판을 준비하다가 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날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성경(마태복음 5장) 말씀을 인용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대통령님'이라는 제목의 추모사를 낭독했다.
한 변호사는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셨던 이희호 여사의 평생 헌신에 저희들 모두가 감복하고 있으며, 지극한 슬픔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품격을 지켜나가시는 여사님께 모두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다"면서 "여사님의 자서전 <동행>의 일본어판이 불원 출판된다는 기쁜 소식도 아울러 알려드린다"고 이승의 소식을 전했다.
그는 이어 "이제 가슴 아팠던 고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그 넓은 빈 자리를 다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대통령님께서 평생을 걸고 바라시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을 이룩하는 데 저희들의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끝으로 "존경하는 김대중 대통령님! 이제 평화스런 하늘나라에서, 생전에 동교동 사저에서 그리 하셨던 것처럼, 아름다운 정원의 화초에 물도 주시고, 날아드는 새들에게 모이도 주시면서 영생복락을 누리시옵소서. 묘비와 거기 새겨진 말씀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고 추도했다.
김홍업 전 의원은 유가족을 대표해 "아버님은 이제 모든 수고에서 해방되어 편히 쉬실 것"이라며 "이곳이 아버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들이 추모하는 곳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그러나 묘비 제막식을 한 그 시각에도 일부 극우보수단체 회원들은 국립현충원 정문 앞에서 '민족반역자 김대중 국장 반대' 시위를 벌였다.
장손녀 지영씨가 낭독한 묘비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광(後廣) 김대중 선생은 본관이 김해(金海)이시다. 아버지는 김운식공이시고 어머니는 장수금여사이시며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시었다. 1952년 정계에 입문하신 후 낙선을 거듭하다 1961년 인제에서 첫 국회의원에 당선되셨으나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하셨다. 이때부터 행동하는 양심의 정치인으로 민주주의, 인권, 평화통일을 위해 매진하셨고 일생 동안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셨다. 6년의 감옥생활과 수십년 동안의 망명, 연금, 감시를 당하는 고난 속에서도 의회주의 원칙에 충실하며 지방자치 실현과 국민통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1956년 토머스 모어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으시고 깊은 신앙심으로 평생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시었다. 숱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다. 1998년 첫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에 취임한 후 경제위기의 국난을 극복하셨고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국가, 경제와 사회복지 선진국, 정보화 강국으로 이끄셨으며 자주 외교를 펼쳐 국격(國格)을 높이셨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반세기 동안의 적대감을 녹이고 지속적인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하는 평화의 시대를 여셨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시었다. 2003년 2월 퇴임하신 후 세계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헌신하시다가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로 서거하셨다. 온 겨레와 세계 지도자들의 애도 속에 8월 23일 국장의 예로 현충원에 드시어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