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재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절대적 시점에서 탄생한 재즈는 무한한 자가 번식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현재까지 이른다. 이른바 편성의 변화, 형태의 변화 그리고 구조의 변화를 통해 대중음악 가운데서도 특별한 위치를 선점하는 이 난해한 음악장르는, 하지만 기실 한국에서만큼은 꽤나 고급스러운 문화의 단편으로만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지금도 재즈라는 음악이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막는 하나의 걸림돌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재즈라는 음악은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양자의 애매한 위치 속에서 그 정체성을 놓치고 만다. 어찌 보면 참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인식이야 어찌되었든, 아무튼 재즈는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른 음악들이 그렇듯 그들 스스로 생성한 장르의 범주 안에서 유행의 패턴이 진화되고 있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존재한다. 또한 그 살아있다는 생동에 발 맞춰서 대중들의 취향역시 변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 국내의 대중들은 듣기에 거북스럽지 않은 웨스트 코스트 계열에 쿨 재즈(Cool Jazz)나 보사노바(Bossa Nova), 혹은 컨템퍼러리와 상통하는 일본의 제이 퓨전(J-Fusion) 등을 선호했지만, 최근엔 매츠 구스타프손(Mats Gustafsson)과 같은 난해한 재즈를 하는 뮤지션의 공연도 꽤 성황이었다고 하니 미약한 수준이긴 하지만 조금씩 그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음악적 유행의 패턴은 음악 그 자체의 변화만큼 진행 중인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트렌드를 창조하는 대중적 음악 장르들과는 달리, 클래식과 같은 장르에서 나타나는 대중들의 한발 느릿한 취향의 발전이 재즈에서도 발현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중들의 고정적인 시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재즈로서는 꽤나 긍정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물론 그것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또 논외겠지만.
음반의 재발견⑥: 허대욱의 <Le Moment Dispersé>
어쨌든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대중과 재즈의 유행의 변화 속에서 재즈피아니스트 허대욱이 2007년에 발매한 2집 <Le Moment Dispersé(흩어진 순간)>은 이 둘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정체되어 있는 듯한 미국의 메인스트림 대신에, 그가 본격적인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기 전부터 추구했던 유럽의 클래식적인 연주기법이 이곳에는 가감 없이 녹여져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에 감지되는 유러피언 재즈에 편승하는 일종의 진보적 움직임이자 주류에 대한 소심한 거부의사다.
물론 이것이 미국의 뉴욕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재즈 뮤지션들의 진화적 움직임이나,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지켜지고 있는 모던에 대한 전통적 시각의 재즈를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재즈의 종주국인 미국만을 중심에 놓고 이 음악을 논하기엔 재즈란 음악은 확실히 너무나 다양한 문화들과 결합을 이야기하는 성격의 음악이 되어버린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허대욱의 피아노는 외려 급진적이지 않은 온건한 재즈의 변화를 이 <Le Moment Dispersé>를 통해 말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또한 그것을 수용하는 청자도 큰 거부감 없이 수용가능하다는 점에서 그가 이 음반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던 일련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움츠려든 마찰음이 들렸던 전작 <To the West> 보다는 확실히 안정되어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연주자, 수용자 감흥의 미묘한 밸런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모습은 앨범 라이너노트에 쓰여 있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명곡인 'Giant Steps'에 대한 당돌한 그의 시각에서도 잘 들어난다. 그는 'Giant Steps'라는 곡에서 말해지는 연주자의 감흥보다는, 음악을 직접 듣는 수용자의 감흥에 허대욱은 포커스를 더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에서 말하는 거대한 주제를 너무 일반화 시킨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도 존재하겠지만, 어쨌든 그가 생각하는 재즈의 세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피아노는 그가 원하는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모습보다는, 아직은 그의 재즈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한 빌 에반스(Bill Evans)의 그것과 좀 더 닮아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것은 그는 자신의 피아노를 대중들에게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혹은 그의 연주자와 수용자의 감흥에 미묘할 밸런스 조율의 문제로도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대욱은 이 <Le Moment Dispersé>에서 기존의 재즈피아노, 즉 스윙(Swing)과 비밥(Be-bop)으로 대변되는 미국 황금시절의 재즈피아노의 그것과의 완전한 단절을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도 어느덧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은 모던이후의 유럽적 감상의 클래식한 재즈피아노의 전철을 밟아가는 과정을 한국의 다른 재즈피아니스트들 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이러한 그의 이러한 노력은 유려한 그의 피아노 실력과 맞물려 무리 없이 진행되는데, 이것은 드럼의 김윤태와 베이스의 필립 라카리에르(Philippe Laccarri re)와 같은 테크니션들과 함께 더욱 빛을 낸다. 물론 피아노 트리오 구성에 있어서 리듬섹션의 역할은 ㅡ그것이 유러피언의 감성을 살릴 경우에는 더욱 더 여백을 채워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잊어선 안 되지만, 이들 트리오의 인터플레이는 이 음반이 단지 듣기에만 좋을 수 있다는 편협한 방향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맡아준다.
물론 그러한 그들의 역할이 허대욱이 바라는 완벽한 그의 감성의 완성에 있어 미완성으로 발현되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는가 하는 부정적인 의견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반대로 그것이 후에 등장할 허대욱의 솔로 피아노 음반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가능하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늘 같은 얘기라 조금 지겹긴 하지만, 역시나 음악을 듣는 청자의 몫일게다.
진화된 온전한 감성의 이야기
이처럼 허대욱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 <Le Moment Dispersé>를 통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유럽의 아방가르드나 프리재즈와 같은 실험적이고도 난해한 소리 대신에, 감성만을 온전히 담은 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이는 흔히 연주되는 기존의 재즈 스탠더드 곡의 해석이 아닌, 자신의 자작곡으로 빼곡히 채운 음반의 트랙들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재즈의 역사가 그렇듯 생동력 있는 음악적 진화에 한발 다가서 있는 피아니스트임은 분명하다.
아울러 요즘같이 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러한 그의 피아노는 확실히 더욱 세차게 가슴에 박힌다. 하긴, 어쩌면 음악을 듣는데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그러한 강렬한 느낌하나면 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 음반을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들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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