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망하는 길
.. 그 근원적인 의미를 몸으로 이해하였을 때 인류는 망하는 길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40쪽
"근원적(根源的)인 의미(意味)"라 한다면, 어떤 뜻을 가리킬까 궁금합니다. "깊은 뜻"이나 "밑바탕이 되는 뜻"으로 풀어내면 안 될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 밑바탕을 몸으로 헤아렸을 때"나 "그 밑자리를 몸으로 읽어냈을 때"나 "그 바탕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몸으로 깨달았을 때"로 다듬어 봅니다. 그러니까, '이해(理解)하였을'은 저절로 '헤아렸을'이나 '읽어냈을'이나 '깨달았을'로 고쳐 줍니다. '인류(人類)'는 '사람들'로 손보고, "있을 것입니다"는 "있습니다"나 "있다고 봅니다"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로 손봅니다.
┌ 망하다(亡-)
│ (1)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
│ - 나라가 망하다 / 아버지의 노름으로 우리 집은 쫄딱 망했다
│ (2) 못마땅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하여 저주의 뜻으로 이르는 말
│ - 망할 자식 / 망할 놈
│ (3) 아주 고약하다
│ - 길이 망해서 신발이 망가져 버렸다
│
├ 망하는 길에서 벗어날
│→ 죽어가는 길에서 벗어날
│→ 모두 죽는 길에서 벗어날
│→ 깡그리 무너지는 길에서 벗어날
│→ 끝장나는 길에서 벗어날
└ …
나라도 집안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쓰러질' 수 있고, '부서질' 수 있습니다. '흐물흐물 녹아내릴' 수도 있겠지요.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없어질' 수 있으며,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그예 가뭇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으며, 다시금 새힘을 내며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쓰기 나름이요, 우리가 마음쓰기 나름이며, 우리가 몸쓰기 나름입니다. 애는 쓰지만 엉뚱한 곳에 애를 쓰면 물거품이 됩니다. 마음은 쓰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며 사랑하지 못한다면 부질없고 맙니다. 몸은 쓰더라도 알맞게 쓰지 않으면 괜히 힘만 빼는 꼴입니다.
나라살림은 나라살림대로, 집살림은 집살림대로, 마음살림과 말살림은 마음살림과 말살림대로 알뜰히 간수하며 추슬러야 합니다.
┌ 나라가 망하다 → 나라가 끝장나다 / 나라가 무너지다
├ 우리 집은 쫄딱 망했다 → 우리 집은 쫄딱 무너졌다
├ 망할 자식 → 죽을 자식 / 괘씸한 자식 / 고약한 자식
└ 길이 망해서 → 길이 고약해서 / 길이 나빠서 / 길이 엉망이라서
가볍게 여기면서 가볍게 허물어지고 말곤 합니다. 대수롭게 다루면서 손쉽게 끝장나곤 합니다. 하찮게 바라보면서 하루아침에 망가지곤 합니다. 보잘것없게 생각하여 내치면서 어느 결에 스러지곤 합니다.
말이며 글이며 생각이며 마음이며 삶이며 삶터이며, 우리 손으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간수해야 합니다. 우리 온몸으로 믿고 돌보면서 갈무리해야 합니다.
ㄴ. 다 망한 모습
.. 그렇게 아픈 모습으로, 그렇게 다 망한 모습으로는 고향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 《윤진영-다시, 칸타빌레》(텍스트,2009) 23쪽
"나를 위(爲)해"는 "나를 생각해"나 "나 때문에"로 다듬고, "결정(決定)을 내린 것이다"는 "마음을 먹었다"나 "그리 하기로 했다"나 "고향에 내려가기로 다짐했다"로 다듬어 줍니다.
┌ 그렇게 다 망한 모습으로는
│
│→ 그렇게 다 망가진 모습으로는
│→ 그렇게 다 무너진 모습으로는
│→ 그렇게 다 허물어진 모습으로는
│→ 그렇게 다 잃고 깨진 모습으로는
│→ 그렇게 다 잃고 박살난 모습으로는
└ …
이 세상에 스스로 망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스스로 무너지려 하거나 스스로 허물어지려고 하거나 스스로 깨지고 박고 넘어지고 박살이 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니, 모릅니다. 너무도 괴롭고 고단하고 슬프고 까마득해서, 내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조각조각 흩뿌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괴롭게 사느니 죽느니만 못하다면서 손을 놓아 버리는 사람이 있으리라 봅니다. 삶이 삶답지 못하여 그예 고꾸라지는 사람이 있다고 느낍니다.
┌ 그렇게 못난 모습으로는
├ 그렇게 빈털털이 된 모습으로는
├ 그렇게 형편없는 모습으로는
├ 그렇게 후줄그레한 모습으로는
└ …
삶이 흐트러지면 생각을 고이 추스르기 어렵습니다. 생각 또한 흐트러집니다. 삶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흐트러져 있는데 말이 흐트러지기 않기란 어렵습니다. 겨우겨우 다잡는다 하여도 끝내 말마저 흐트러지고 맙니다.
삶이 곧을 때 생각이 곧으며, 생각이 곧은 가운데 말이 곧습니다. 삶이 아름다울 때 생각이 아름다우며, 생각이 아름다운 가운데 말이 아름답습니다. 삶과 생각과 말이란 언제나 한동아리입니다. 어느 때에나 한묶음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한몸입니다.
말만 곱게 할 수 없고, 생각만 멋지게 품을 수 없습니다. 글만 예쁘장하게 쓸 수 없고, 생각만 거룩하게 가꿀 수 없습니다. 삶 따로 생각 따로 말 따로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구청장 들을 뽑는 자리에서 엉뚱한 사람한테 표를 주면서 내 삶과 생각과 말이 올바르게 자리잡으리라고는 꿈꿀 수 없습니다. 내 둘레 이웃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매무새가 아니면서 내 삶과 생각과 말이 싱그럽고 깨끗하게 뿌리내리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옳게 살며 옳게 생각하고 옳게 말합니다. 튼튼하게 살며 튼튼하게 생각하고 튼튼하게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 말매무새나 글씀씀이가 형편없거나 못난 모습이 넘쳐난다고 한다면, 말글 다루기에서도 말썽이 있다 하겠으나, 이에 앞서 생각과 삶이 엉망진창으로 뒤죽박죽 어영부영 얼기설기 흐리멍텅이라는 소리입니다. 생각과 삶을 함께 다스리며 알뜰히 붙잡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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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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