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상한 작품을 썼다"

[서평] 작가의 허풍 혹은 자기만족?... 위화의 <인생>

등록 2009.10.09 17:42수정 2009.10.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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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위화의 <인생> 표지사진

위화의 <인생> 표지사진 ⓒ 고기복

이 시대에 스스로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어느 작가든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작품을 대하며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일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과연 그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어떤 작품을 남겼기에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세계가 사랑하는 중국 최고의 작가 위화는 그의 소설 <인생> 서문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대견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나친 오만 아니면 자기만족일 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살펴보다보면 머리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위화의 말을 빌리자면,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그러나 정작 위화는 젊은 시절 현실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의 분노가 점차 사그라지자,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닫고,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라,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선을 갖고 있던 위화는 늙은 흑인 노예였던 톰이 원망의 말 한 마디 없이 언제나처럼 우호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미국 민요 <톰 아저씨>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자, 자신도 그런 소설을 쓰고자 했는데, 그 소설이 바로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하여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인생>이라고 한다.

위화가 <인생>에서 보여주는 인간은 언제나 고통을 감내하고, 세상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화자가 만난 푸구이라는 노인의 젊은 시절 그 됨됨이를 "쉬씨 집안은 두 망나니를 낳았어"라는 노인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을 통해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푸구이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노름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그로 인해 전답과 집을 순식간에 잃는다. 이 과정을 푸구이의 아버지는 "내 손에서 쉬씨 집안의 소는 양으로 변했고, 양은 또 거위로 변했다. 네(푸구이) 대에 이르러서는 거위가 닭이 되었다가, 이제 닭도 없어졌구나"고 표현한다.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가 지나면서 가세가 기우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간략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하게 한 줄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가세가 번창해 갔던 과정 역시 지나치게 간략하지만, 긴 말보다 명쾌하게 그려진다.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왔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푸구이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이라며 방탕했던 자식을 나무라기보다, 다독거리며 힘을 주던 아버지의 사망에 이어,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성내에 의원을 부르러 가던 길에 국공 내전 중에 있던 국민당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집에 돌아오지만, 그때는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멀쩡하던 딸아이, 펑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기막힌 현실이 기다린다. 이어지는 푸구이의 삶은 기구하다 못해, 어이없기까지 하다. 말을 못해 머리가 한 쪽으로 기운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던 딸 펑샤는 출산 중에 죽고, 달리기를 잘하던 아들 유칭은 현장의 부인이자 교장 선생을 위해 수혈하다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그런데 사망 원인을 제공한 교장 선생은 국민당 군대에 끌려 다니던 시절 목숨과도 같던 전우, 춘성의 부인이다.

푸구이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함께 해 주고, 사랑하던 아내 자전은 구루병으로 죽고, 펑샤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위와 손자 역시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했다. 결국 늙은 푸구이 곁에는 늙은 소 한 마리밖에 남지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푸구이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마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푸구이는 남 이야기하듯, 한 발짝 떨어져서 남의 일을 구경한 것처럼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전한다.

이러한 푸구이의 태도는 철저히 작가가 의도한 바라는 것은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는 내용이긴 하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전우의 등장으로 인해 그 죽음을 뒤로 하는 모습이나 가산을 탕진한 망나니 아들에 대한 쉬씨와 그 가족들의 반응 역시 지나치게 덤덤하다.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모자란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도통한 인생이 아니고는 설명이 힘든 장면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지나치게 삶을 달관한 태도로 일관하는 푸구이와 그 가족들의 삶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어쩌면 일정 부분 허풍이 있는 중국인들의 정서가 그러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단면을 쉽게 엿보게 해 주는 것이 "황제는 나를 불러 사위 삼겠다지만 길이 멀어 안 가려네"라는 푸구이가 소를 몰며 하는 노래 가사다. 길이 멀어 황제의 사위가 되지 않겠다는 자신만만함은, 이미 자신만만함이 아닌 허풍이라는 생각에 듣는 이로 하여금 허허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 속 화자의 독백은 인생이라는 것이 하늘의 부름,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지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으로 인생은 삶의 한 단편을 갖고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푸른숲, 2007


#위화 #인생 #푸구이 #중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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