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륀지 정부와 오렌지 교육청

Office education은 무슨 일을 하는 관공서?

등록 2009.10.12 09:45수정 2009.10.1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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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역대 정부 중 유난히 영어교육에 대해 호들갑을 떨었다.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 교수가 '오렌지'가 아니라 '아륀지'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겨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곤 한다. 오렌지면 어떻고 아륀지면 또 어떠한가?

MB정부는 출범 초부터 영어에 한이 맺힌 것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교육만으로도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면서 고등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었다. 대한민국이 마치 미국의 51번째 주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세계 공용어로써 영어 구사능력의 필요성은 이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바람대로 물리를 영어로 강의할 정도 능력을 가진 교사라면 무엇하러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정책 투성이인 이 나라에 남아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정도 능력이라면 아이엘츠 7.0이상을 받아 호주에 가서 교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지금, 과연 영어 공교육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보고를 본 적이 없다. 결코 의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이제 조금 실감하고 있나 보다. 아무튼 영어교육에 대한 열의만큼은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뜨거운 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각설하고 이런 중앙정부와 여당의 영어사랑에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관공서가 있으며, 그것도 다른 관공서도 아닌 지역교육을 책임진다는 지역 교육청이어서 이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경기도 평택교육청은 교육청 입구에 다음과 같이 안내간판을 표기하고 있다.

영문표기 오류 지역교육청의 영문표기가 오류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영문표기 오류지역교육청의 영문표기가 오류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민정욱

경기도 평택이 어떤 고장인가?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확정이 되어 안정리 기지를 지금 확장공사 중이며, 고덕면에는 국제평화신도시 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다. 게다가 평택시는 홍보자료에서 국제화 중심도시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국제화 중심도시의 교육을 책임지는 지역 교육청의 영문표기는 국제화라는 명분이 무색하게  버젓이 엉터리로 걸려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오류를 발견하고 오류에 대한 시정요구를 하기 위해 평택교육청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그 곳에서도 역시 똑같이 'Pyongtaek office education'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간판을 만든 제작자의 실수가 아닌 교육청 스스로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만 했다. 필자는 지난 3월 15일, 교육청 민원/질의 코너에 'Pyongtaek office of education'처럼 사용하던지 'education office'처럼 사용하는게 옳다며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평택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평택교육의 기본방향은 재미있게도 '글로벌리더 소양교육', '국제화 중심도시', '지구촌 시대의 다원화 중심지', '국제화, 정보화 교육 충실'과 같은 거창한 구호로 도배되어 있다. 물론 전치사 of 하나가 빠진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나 이런 작은 차이가 행정 서비스의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늘 외치는 구호가 '명품교육'이 아니던가?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 광고카피 중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민원제기에 대해 평택교육청은 신속하게도 하루가 지난 3월 16일자로 다음과 같이 민원에 대한 답변을 올렸다. "평택교육청 영문 표기를 확인한 결과 민원인께서 올리신 'Pyongtaek office of education'으로 수정해야 함을 확인하였으며, 평택교육청 홈페이지는 즉시 수정할 예정이다, 입구의 영문 표기는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수정하도록 하겠다." 물론 홈페이지의 영문표기는 즉시 수정되어서 올라왔다.

그런데 여기서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라고 하는 답변이 바로 대한민국 행정 서비스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얼마나 성의 없고 무책임한 답변인지 지역 교육청은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간판 크기는 육안으로 볼 때에도 어림잡아 가로 70cm 정도, 세로 60cm 정도에 불과했다. 아무리 예산이 없더라도 부서 회식비를 한 번만 절약하거나 교육장 업무추진비 중 일부를 사용하던지 할 것이지, '예산'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민원인이 오류를 지적한 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겠다는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민원을 제기한 후 긴 여름이 지나고 반년이 훌쩍 지나 7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아직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평택교육청의 황당한 안내간판은 국제화 중심도시를 표방하며 그야말로 '사무교육'을 하면서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아륀지정부 #영어 공교육 #국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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