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검문의 추억

국민을 윽박지르는 경찰

등록 2009.10.14 10:37수정 2009.10.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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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회현장의 경찰 노무현전 대통령 장례전야에 위압적인 자세로 시민을 압박하던 경찰들

집회현장의 경찰 노무현전 대통령 장례전야에 위압적인 자세로 시민을 압박하던 경찰들 ⓒ 이래헌


불심검문의 추억

전두환 정권시절인 80년대 초반 약속시간에 쫓겨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낯선 사내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형사 신분증을 제시한 그는 다짜고짜 임의동행을 요구했고 나는 약속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동행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상대는 막무가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치 나를 범죄 용의자라도 보는 듯한 눈길이 느껴질 때의 모멸감과 부담감을 이런 낭패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실랑이 끝에 경찰서 대신 근처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경찰이 검문하려는 이유가 어이가 없었다. 젊은 사람이 고가의 카메라를 메고 가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일로 1시간이 지났고 나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던 친구는 변변한 스냅사진이 없는 결혼식을 치러야 했다.

그 후 6월 항쟁과 직선제 쟁취 그리고 정권교체 등으로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암울한 시대의 불쾌한 추억으로나 기억될 줄 알았다. 적어도 그 일로부터 25년 뒤의 어제 일이 없었다면 말이다.

이번에는 약속 장소에 20여 분 일찍 도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20분은 거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에도 그렇다고 커피숍에서 굳이 당기지도 않는 비싼 커피를 마시며 보내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서성거리고 있는데, 전철역 개찰구 입구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릴 즈음에 정복 차림의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불현듯 25년 전의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아니 세상에... 아직도 불심검문을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범죄 예방을 위한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이니 협조해 주십시오"라며 버티고 서 있었다. "내가 범법자로 보입니까? 협조할 수 없다면 어쩌겠어요?"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협조하지 않으시면 경찰직무법에 의해 가까운 경찰관서나 파출소로 임의동행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윽박질렀다.

순간 '불심검문이나 임의동행에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실랑이를 지켜보는 눈길도, 강하게 반발할 경우 또 다시 약속 시간을 어기게 될 것도 부담이 돼 결국 신분증을 제시하고 말았지만 불쾌감과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에 관한 법 규정

바쁜 현대를 살면서 형사소송법 상 임의수사 규정이나 경찰관직무집행법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 필자의 경우처럼 불쾌감과 당혹감을 느낀 채, 경찰관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더 큰 낭패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검문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은 단지 수사기관의 수사 편의를 위해 인정되는 수사 방법으로 헌법 제 12조에서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라고 규정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불심검문과 임의동행 요구를 행사하는 범위를 법률로 제한하고 있다.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의 거부에 대한 필자의 질의에 변호사는 경찰이 불심검문의 법적 근거로 제시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는 불심검문의 대상 범위를 '수상한 거동, 죄를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로 한정하고, 형사소송법 199조의 1항 역시 '조사를 위한 강제 처분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라고 하여 불심검문 및 임의 수사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의 경우처럼 공공장소에서 무작위로 검문하고 검문에 불응하는 시민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형사소송법상의 임의수사원칙에 어긋나며 신체에 대한 제한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는 영장주의에도 어긋나며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반되는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함께 밝혔다.

결론적으로 경찰의 무작위적인 불심검문이나 임의 동행 요구에 대해 시민은 '정당하게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경찰이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강제 처분(체포나 동행 등)은 검문이나 임의동행 대상자가 반드시 법률에 정한 특별한 규정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권리는 타인이 지켜주지 않는다.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을 윽박지르려는 부당한 경찰의 검문 요구를 당당하게 거부하는 것이야 말로, 헌법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지키려는 첫 걸음이 된다 할 것이다.

불심검문과 임의동행과 관련된 법 규정들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신체자유에 관한 권리]

[형사소송법 제199조]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강제처분은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하여야 한다.[임의수사의 원칙]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불심검문)]

①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불심검문 대상자의 제한]

②그 장소에서 제1항의 질문을 하는 것이 당해인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질문하기 위하여 부근의 경찰서·지구대·파출소 또는 출장소(이하 "경찰관서"라 하되, 지방해양경찰관서를 포함한다)에 동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당해인은 경찰관의 동행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⑤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동행을 한 경우 경찰관은 당해인의 가족 또는 친지등에게 동행한 경찰관의 신분, 동행장소, 동행목적과 이유를 고지하거나 본인으로 하여금 즉시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야 하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하여야 한다.

⑦제1항 내지 제3항의 경우에 당해인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불심검문 #임의동행 #신체자유에관한권리 #경찰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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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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