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고운 저 단풍 누가 물들여 놓았을까?"

도봉산 바위봉우리와 절벽, 능선을 곱게 물들인 단풍과 산경표 이야기

등록 2009.10.15 09:55수정 2009.10.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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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봉산 다락능선을 곱게 물들인 단풍

도봉산 다락능선을 곱게 물들인 단풍 ⓒ 이승철

도봉산 다락능선을 곱게 물들인 단풍 ⓒ 이승철

"오늘 도봉산에서 멋진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직은 아닐 것 같은데, 때가 조금 이른 편이잖아?"

 

전철 1호선 도봉산역 앞에서 만나 함께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은 단풍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높고 유명한 두 개의 산을 올랐지만 고운 단풍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화요산행은 특별한 목적이나 기대감 없이 하는 의례적인 산행인 셈이었다.

 

그래서 코스는 약간 길게 잡았다. 도봉산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뻗어 올라간 다락능선을 타고 포대능선으로 올라가, 원도봉산 줄기를 타고 사패산을 넘어 의정부 안골유원지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가을가뭄으로 먼지 풀풀 날리는 도봉산 등산로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은 상당히 많았다. 등산객들은 대부분 늙수그레한 노년층과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간간이 표정이 어두운 4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섞여 있어서 아직도 어려운 경제여건과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a  빨갛게 빛깔 고운 단풍

빨갛게 빛깔 고운 단풍 ⓒ 이승철

빨갛게 빛깔 고운 단풍 ⓒ 이승철

a  자운, 선인, 만장봉과 바위절벽을 물들인 단풍

자운, 선인, 만장봉과 바위절벽을 물들인 단풍 ⓒ 이승철

자운, 선인, 만장봉과 바위절벽을 물들인 단풍 ⓒ 이승철

"먼지가 풀풀 나는 게 가을가뭄이 너무 심한 것 같아"

일행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다락능선으로 접어들자 등산로가 말이 아니었다. 올가을 들어 비다운 비가 내린지가 언제였던가, 가뭄이 심하긴 심했던가 보았다. 정말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썩풀썩 튀어 올라 바짓가랑이가 금방 부옇게 변한다.

 

"우와! 저 고운 단풍 좀 봐? 어느새 저렇게 단풍이 곱게 들었지?"

일행들이 가까이 다가선 산자락과 산줄기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다락능선을 타고 한 시간쯤 오르자 눈앞에 곱게 물든 단풍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른편으로 바라보이는 원도봉산 자락의 망월사 주변도 단풍이 고왔지만 주봉인 자운봉과 선인봉, 만장봉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벼랑사이를 물들인 단풍은 더욱 고왔다.

 

새하얀 바위봉우리가 아슬아슬하게 솟아있는 사이사이에는 새빨갛고 샛노란 단풍이 물감이라도 칠해놓은 것처럼 정말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다락능선 끝부분과 원도봉산 줄기를 타고 주봉으로 이어진 포대능선 바위절벽지대도 단풍이 곱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락능선이 거의 끝나가는 부분에 솟아있는 제법 넓은 바위 위에는 등산객들이 몰려서서 단풍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들도 대부분 단풍을 별로 기대하지 않고 도봉산을 찾은 등산객들이었다.

 

a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 ⓒ 이승철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 ⓒ 이승철

a  단풍 물들어가는 포대능선을 배경으로 선 등산객들의 얼굴도 단풍색

단풍 물들어가는 포대능선을 배경으로 선 등산객들의 얼굴도 단풍색 ⓒ 이승철

단풍 물들어가는 포대능선을 배경으로 선 등산객들의 얼굴도 단풍색 ⓒ 이승철

산 위에서 천둥번개와 비를 만나다

 

도봉산의 단풍은 다락능선 윗부분에서부터 포대능선과 자운봉, 그리고 원도봉산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온통 곱게 물들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들은 포대능선 입구에 올랐다가 원도봉산 줄기가 이어진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 이거 큰일 났네. 천둥번개에 비 쏟아지는 것 아냐?"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갑자기 우르르 꽝꽝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빗방울도 몇 방울 떨어지며 하늘에 번갯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어 설마 비가 얼마나 내리겠어? 우리들이 비를 조금 맞더라도 많이 좀 쏟아졌으면 좋겠네"

 

"하긴 그려, 그동안 너무 가물었으니까? 그나저나 가을천둥은 유명하고 큰 거물이 죽을 징조라는데. 혹시 누굴까?"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말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지어낸 미신이여 미신. 가을비나 시원하게 한 바탕 퍼부었으면 좋았을 걸, 그런데 벌써 그치고 있잖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빗방울도 멎고 천둥번개도 사라졌다. 산위에서 만난 천둥번개와 비였지만 오히려 그 비가 너무 빨리 그치는 것을 아쉬워하는 일행들이었다.

 

a  바위봉우리와 단풍

바위봉우리와 단풍 ⓒ 이승철

바위봉우리와 단풍 ⓒ 이승철

a  바위절벽 아래자락을 물들인 단풍

바위절벽 아래자락을 물들인 단풍 ⓒ 이승철

바위절벽 아래자락을 물들인 단풍 ⓒ 이승철

능선을 타고 이어진 등산로 곳곳에서는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가을정취에 흠뻑 젖어든 수많은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단풍색깔이 곱기로는 아무래도 단풍나무지만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 종류의 나뭇잎들도 노랗게 물들어가는 빛깔이 정말 고왔다. 더구나 도봉산엔 기암괴석과 뾰족뾰족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들이 많아 단풍과 바위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바위봉우리와 절벽, 능선길에 곱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에 취하다

 

"아! 단풍빛깔 참 화려하다. 저 곱디고운 단풍을 누가 물들여놓았을까?"

"아! 그거야 자연, 아니 신이 빚은 걸작품이지, 걸작품!"

 

능선길의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앉아 도시락을 먹을 때도 일행들의 눈길은 고운 단풍과 바위봉우리, 그리고 절벽사이를 물들인 단풍에 머물고 있었다.

 

a  원도봉산 능선길의 단풍과 고무붕대를 칭칭 감은 나무줄기

원도봉산 능선길의 단풍과 고무붕대를 칭칭 감은 나무줄기 ⓒ 이승철

원도봉산 능선길의 단풍과 고무붕대를 칭칭 감은 나무줄기 ⓒ 이승철

a  능선길의 떡갈나무 단풍

능선길의 떡갈나무 단풍 ⓒ 이승철

능선길의 떡갈나무 단풍 ⓒ 이승철

"어! 이 나무 좀 봐? 나무줄기가 고무붕대를 감았네"

점심을 먹고 다시 능선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능선 급경사길에 만들어 놓은 철제 손잡이 시설물 옆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는 줄기 중간에 까만 고무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나무줄기에 고무붕대를 왜 저렇게 감아놨을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붙잡는 곳이어서 나무를 보호하려고 그랬을까? 아니면 올라가는 사람들 머리에 부딪치기 때문에 사람을 보호하려고 감아놓은 걸까?"

 

"둘 다겠지. 나무도 보호하고 사람들의 머리도 보호하고"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럴듯하긴 하구먼"

 

너무나 낯선 모습에 저마다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며 사패산 길로 접어들었다. 도봉산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하얀 바위봉우리로 불쑥 솟아 있는 산이 바로 사패산이다, 사패산은 조선 선조임금이 유별나게 애지중지 사랑했던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량에게 시집보낼 때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a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 이승철

하산길에서 만난 단풍 ⓒ 이승철

a  사패산 암봉과 단풍

사패산 암봉과 단풍 ⓒ 이승철

사패산 암봉과 단풍 ⓒ 이승철

사패산은 지리적으로는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서남으로 갈라져 백암산, 양쌍령, 적근산, 대성산, 수피령,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현등산, 죽엽산으로 이어져 도봉산과 노고산, 현달산, 고봉산, 장명산 등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산줄기 중에서 죽엽산과 도봉산을 이어주는 산이기도 하다.

 

한북정맥 이야기가 나왔으니 참고로 우리나라의 산세를 살펴보자, 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비뼈처럼 옆으로 뻗어 내린 열세 개의 산줄기를 13정맥이라고 하는데 도봉산과 사패산이 속한 한북 정맥도 그 13정맥 중의 하나다. 조선 영조임금 때의 실학자 신경준이 만든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산은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그리고 13정맥의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조선 영조임금 때 신경준이 만든 1대간 1정간 13정맥 산경표

 

13정맥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임진북예성남정맥과 해서정맥, 한강을 에워싸는 한남과 한북정맥, 금강을 두른 금남과 금북정맥, 낙동강 좌우의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호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을 말한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은 애매하게 이어진 산줄기를 거꾸로 물 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발문에서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른다'고 명문화된 줄기가름의 대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배웠고 기억하고 있는 산맥개념인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은 조선 강점을 기정사실화해 가고 있던 무렵인 1903년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분지로가 만든 것이다. 그는 단 14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지질구조를 연구하여 '한반도의 지질구조도'를 발표하면서 당시까지 통용되고 있던 1대간 1정간 13정맥 개념을 폐기시키고 산맥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a  산자락을 곱게 물들인 단풍

산자락을 곱게 물들인 단풍 ⓒ 이승철

산자락을 곱게 물들인 단풍 ⓒ 이승철

a  기울어진 거대한 바위밑에 받쳐놓은 받침목들

기울어진 거대한 바위밑에 받쳐놓은 받침목들 ⓒ 이승철

기울어진 거대한 바위밑에 받쳐놓은 받침목들 ⓒ 이승철

신경준의 산경표는 우리 땅의 산줄기를 땅위에 실제로 있는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산경표의 산줄기는 실제 있는 그대로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며 실제 지형과 일치한다.

 

그러나 일본인 고토분지로가 만든 산맥은, 땅속의 지질구조선에 근거하여 땅 위의 산줄기를 분류하였다. 따라서 실제 땅 위의 산줄기들은 강물에 의하여 곳곳에서 끊기고 실제지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행이 요즘 산악인들은 일본인이 만든 엉터리 산맥개념도를 사용하지 않고, 신경준이 만든 산경표에 의한 1대간 1정간 13정맥 개념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 서울의 북쪽을 흘러내리는 도봉산과 북한산을 한북정맥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망월사 뒤쪽인 원도봉산 능선을 따라 사패산으로 가는 길에도 단풍은 곱게 물들어 있었다. 드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는 사패산에 올랐다가 의정부 안골 유원지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백 톤이 넘을 것 같은 기울어진 거대한 바위 밑에 작대기처럼 받쳐놓은 수많은 작은 나무받침들이 웃음을 짓게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0.15 09:55ⓒ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곱디고운 #단풍 #이승철 #도봉산 #다락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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