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자동차 분야 관세철폐 비교
김종철
구체적으로 주요 품목별 시장 개방 효과를 보면, 과연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이익의 균형을 이뤘는지 고개를 까우뚱하게 만든다.
이번 협상의 핵심 품목인 자동차의 경우 관세율로 따지면 EU(10%)가 우리나라(8%)보다 높다. 단순히 계산하면, 그만큼 EU 시장을 개방할 경우 우리쪽 이익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그동안 일부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이번 협상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왔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반드시 우리쪽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소형자동차의 경우 5년이후에나 관세가 철폐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쪽에선 불리한 조건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EU의 1500cc 이상 중대형 자동차의 수입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3년내 조기철폐된다. 게다가 한미FTA 타결 조건인 특별소비세(5%) 인하까지 더할 경우 최소한 13%의 가격하락 효과가 발생한다.
작년 국내 수입차 가운데 EU 비중이 51%인 반면, 미국차 비중은 10%이내다. 그만큼 유럽차에 의한 국내 자동차 시장과 산업의 피해는 한미FTA보다 5배에 달할 수 있다는 평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작년 우리나라의 대 EU 자동차 수출은 36%나 감소했다"면서 "이는 현대기아차가 체코 등 현지에서 생산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며, 앞으로 현지 생산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동차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이익을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 관세분야인 자동차 환경과 안정기준 적용에서도, 유럽쪽 기준이 적용되면서 우리나라 입장에선 이에 따른 비용이 더 발생하고, 유럽은 상대적으로 편한 입장이다.
이번 협상 결과 자동차는 UN 유럽경제위원회 기준을 기본으로 채택됐다. 우리쪽 입장에선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U는 우리나라의 환경기준조건(FAS)을 1만대 이하 판매시 면책되고, 배출가스자기진단장치(OBD)를 2013년까지 미부착을 허용하는 특혜까지 주어졌다.
[섬유] EU 관세철폐 효과 미미... 국내 고급의류시장 장악섬유 분야의 경우는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EU FTA에서도 이익이 되는 분야로 꼽아왔다.
이번 협상에서 한미 FTA의 '얀포워드(원사기준)'보다는 우리쪽이 유리하다는 '패브릭포워드(직물기준)'가 적용됐다. 하지만 섬유의 경우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하는 비중에서 크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중저가 섬유제품의 경우 중국에 크게 밀려나 있기 때문에 관세를 철폐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거의 없다는 평가다.
대신 유럽국가 가운데 이태리 등은 한국에 고급 의류수출량이 많고, '패브릭포워드' 기준으로 향후 국내시장으로 고가 의류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백일 교수는 "공산품의 경우 EU쪽은 이미 거의 관세가 없거나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관세) 철폐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반대로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율이 평균 8%에 이르기 때문에 향후 EU로부터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환급과 보조금 등] 관세환급 유지는 했지만, 세이프가드 도입 허용이번 협상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쟁점으로 남았던 관세환급의 경우는, 정부 발표대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협정 발효 후 5년 후부터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해당 품목에 대해 관세환급 비율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세이프가드가 도입되면 현행 실행관세율인 8% 품목의 경우 5%만 환급하기로 했다. 세이프가드의 발동 요건 등을 규정했지만, EU쪽에서 적극적으로 관세환급 제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자칫 관세환급 유지의 효과가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보조금 분야에선, 서비스 및 농수산 보조금의 경우 이번 협정 적용 범위에서 제외됐다. 물론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지급되는 중소기업 보조금의 경우 허용됐다. 하지만 기간과 양적인 측면에서 무제한적인 보증에 따라 지급되는 보조금이나, 회생계획이나 자구노력을 하지 않는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금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의 선박 보조금 분쟁과 같이 보호무역 쟁점의 재발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 교수는 "한국은 유럽쪽으로부터 무역제소를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보조금 분야 등에선 분쟁 소지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