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K집회도 보장하던 나라가 왜 이렇게 됐나

[해외리포트] '자유천국' 미국의 왜곡된 '표현의 자유'①

등록 2009.10.20 09:06수정 2009.10.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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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으로 밀려난 시위대. 이란 정치상황을 알리는 피켓들이 처량하다.
공원으로 밀려난 시위대. 이란 정치상황을 알리는 피켓들이 처량하다.권영미

유엔 정기총회와 기후변화회의가 열린 지난 9월 22일.
맨해튼 42번가 1 유엔본부로 향하는 모든 길목들은 경찰에 점령당했다. 길을 통과하려면 신분증 제시는 물론 가방 뒤짐까지 당해야했기 때문에 신분증을 목에 건 행사 관련자들 외에는 지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전투경찰도 보였다. 세계의 눈이 쏠린 이곳을 이용해 억울하고 참담한 자신들의 나라의 상황을 알리려는 시위대들을 막기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날 그곳에서 이뤄진 시위는 합법적인 소규모 시위조차도 여러 방법으로 방해받았다. 시위자들은 건물 앞 계단 위에 서 있는 것조차 금지 당했다. 건물 관리인이 다가와 "개인 자산이니 내려가라"고 한 것이다. 계단을 내려와 길 위에 선 후에도 건물 관리인은 "건물을 가리니 길 건너 차도 쪽으로 가라"고 종용했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는 경찰들이 다가와 몇 블록 떨어진, 자유롭게 시위할 수 있는 공원으로 가줄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공원에는 이미 그런 식으로 쫓겨난 개인 혹은 집단 시위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수백 명의 중국인 시위대, 지구 환경을 위해 육식이 아닌 채식을 해야 한다는 피켓을 든 1인 시위자, 그리고 중동의 정치상황을 알리는 시위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 공원을 오가는 일반인들은 인근에 사는 노인 몇 명뿐이었다. 보아주는 이 없는 중국인들의 시위는 결국 그들만의 단합대회가 되어버렸고, 피켓을 든 개인시위자는 할 일이 없어 공원을 차지하고 있는 백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횃불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소규모의 평화적 집회조차도 왜 막는 걸까. 왜 아무도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느냐고 경찰에게 따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표현의 자유'가 어떤 과정을 거쳐 확립됐는지 알 필요가 있다.

 경찰에 의해 거리에서 밀려나는 시위대.
경찰에 의해 거리에서 밀려나는 시위대.권영미

언론과 진보판사들의 '표현의 자유' 정립 투쟁


'표현의 자유'는 연설, 언론, 결사, 집회, 청원의 자유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자유를 말한다. 미 연방대법원 판사 벤자민 카도조는 1937년 이중위험(같은 혐의로 이중기소되는 위험)에 관련된 사건의 판결문에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형태의 자유(예를 들면 투표의 자유 등)의 근간이며, 이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 특히 검열에 저항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갈구해왔고, 그런 이유로 독립을 획득한 후인 1791년 '수정헌법 1조'에 다른 어떤 헌법보다 확고하게 '표현의 자유'를 명시했다. 하지만 잇따른 다른 나라와의 전쟁과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표현의 자유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하에 많은 제한을 받아왔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를 상대로 한 <뉴욕타임스> 같은 진보적 신문과 민주 인사들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획득되고 법리로써 구체화되었다. 그 결과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확립됐다. 여기에는 1960년대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뜨거운 사회 분위기와 진보적 법관들의 활약이 컸다. 이들은 진보적이고 탁월한 판결로 1960년대의 시민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판결한 홈즈 대법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판결한 홈즈 대법관.위키피디아
'표현의 자유' 개념 정립의 이정표가 된 첫 판결은 1919년 사회주의자 셴크(Schenck)가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것을 반대하고 징집을 거부하자는 내용의 문건을 징집 적령기의 남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낸 것이 이적행위법(Espionage Act)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였다.

이 재판에서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그의 기소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홈즈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등장시켰다. 몇 달 후 이와 유사한 케이스에서 그는 다른 한명의 판사와 함께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소수의견(반대의견) 판결문을 내면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기준을 다시 언급했다. 이 기준은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친 1950년대까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중요한 척도로 사용됐다.

1957년에는 대법원이 혁명적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스미스법'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혁명적 사상을 표현하고 가르치는 것과 그 사상을 실행하는 것은 서로 구별되어야 하며, 전자의 경우 보호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임을 판시했다.

1964년에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의 재판이 주목을 끌었다. 인권운동가들이 <뉴욕타임스>에 낸 광고에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몽고메리 시 경찰국장인 설리반이 <뉴욕타임스>를 기소한 사건이었다. 이 재판에서 대법원은 <뉴욕타임스>에 무죄를 선고하며 "어떤 사람에 대한 언론의 비방죄나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그 비방에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사실상 언론의 자유를 강하게 보장해 준 판결이었다.

진보적인 판결을 한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과 흑인에게 명백한 폭력위협을 드러내는 KKK단에게까지도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다. KKK의 집회와 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한 지도자가 기소됐는데 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불법행위'(imminent lawless action)를 야기할 위험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1969)했다.

 1928년 워싱턴 디시에서 열린 KKK의 시가행진 장면. 미국은 일촉즉발의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한 위협을 동반한 반사회적인 시위까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한다.
1928년 워싱턴 디시에서 열린 KKK의 시가행진 장면. 미국은 일촉즉발의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한 위협을 동반한 반사회적인 시위까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한다.위키피디아

'언론 자유의 기념비', 펜타곤 페이퍼 사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장은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펜타곤 페이퍼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국이 한 역할을 다룬 보고서다.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개입이 실제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1940년대부터 시작됐으며, 프랑스가 베트남을 계속 지배하도록 미국이 프랑스에 돈과 무기를 제공했다는 사실,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고 딘 디엠 부패정권에 지원한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1967년 국방장관인 맥나라마의 지시로 매사추세츠 공대 부설 국제연구소가 맡았다. 하지만 수석연구원인 엘즈버그 등 양심적 지식인들이 미국의 추악한 행위를 알게 되면서 '최고 기밀서류'로 분류된 이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제공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이 머리기사로 실린 1971년 6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왼쪽에 닉슨 대통령의 장녀 트리샤의 결혼식 기사가 함께 실렸다.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이 머리기사로 실린 1971년 6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왼쪽에 닉슨 대통령의 장녀 트리샤의 결혼식 기사가 함께 실렸다.화면캡처

1971년 6월 13일, 시리즈로 기획된 이 기사의 첫 회가 실린 후 미국 정부는 신문사에 '사전억제명령'(prior restraint)을 내렸다. <뉴욕타임스>는 원고를 가지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와 힘을 합쳐 법정 투쟁을 벌였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이 기념비적 재판에서 대법원은 "국가의 사전억제명령에 의해 출판물 발간이 금지되려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그리고 복구 불능'의 위해가 국가에 '확실히' 가해질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결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었다.

영악한 닉슨, 권력을 위한 언론 역이용

하지만 이 사건에는 단순히 '표현의 자유' 보장 외에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역 이용'하면 권력을 얻고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정치권력이 깨닫게 된 것이다.

펜타곤 페이퍼의 일부 내용이 머리기사로 실린 1971년 6월 13일자 <뉴욕타임스>에는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의 장녀 트리샤의 결혼식 기사가 바로 옆에 나란히 실렸다. 케네디에 대한 라이벌 의식으로 가정적인 정치가의 이미지를 쌓으려고 노력하던 닉슨은 성대하게 열린 자신의 딸 결혼식 기사가 옆으로 밀려난 데 대해 발끈했을 뿐 아니라 진보인사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화를 내며 즉각 보좌관 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그는 펜타곤 페이퍼를 민주당 공격용으로 역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펜타곤 페이퍼에는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케네디와 린든 존슨 같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의 위기에 처하자 1974년 8월 9일 스스로 백악관을 떠나는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의 위기에 처하자 1974년 8월 9일 스스로 백악관을 떠나는 닉슨 대통령.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에 더 큰 타격을 줄 사건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진주만 공격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초래한 것이라든지 쿠바와의 군사적 위기를 초래한 책임이 케네디에 있다고 믿었던 것. 그래서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와 공문서 보관소에 침입해 그를 뒷받침할 비화가 담긴 문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닉슨은 하원시절 한 국무부 관리가 소련 첩자라는 것을 폭로해 이름을 날렸던 전력이 있다. 그는 당시 써먹었던, 즉 불충분한 수사파일을 언론에 넘겨서 여론의 재판을 먼저 받게 하는 방식을 이번에도 이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문서 절도를 통한 물증 찾기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닉슨의 문서 날조 등 악행은 계속됐다. 결국 1972년 6월 17일 민주당 본부인 워터게이트 건물에 몰래 침입한 것이 폭로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지만(74년 8월 9일)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닉슨의 역이용 시도는 권력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의 (부정적)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쨌든 1960,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에서는 '내용에 관한 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사실상 사라졌다. 표현의 자유란 '내 편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적을 위한 자유다'라는 말에서 보듯 KKK 집회나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 반전 시위 모두 보장됐다. 미국 역사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여겨지는 존 밀턴의 정치 에세이집 <아레오파지티카>(1644)에 실린 "진실은 자유롭고 열린 충돌(대립) 속에서 가장 잘 모습을 드러낸다"라는 말이 실현된 것이다.

국기보호법, 애국자법... 좁아지는 '표현의 자유'

하지만 1980년대 미국사회의 급격한 보수화, 1990년대 신자유주의 확대, 그리고 2000년대 미국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 등을 거치면서 표현의 자유는 점점 왜곡되고 약화되고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 평론가인 존 밀턴의 산문집인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의 표지. 언론의 자유를 피력한 역사상 가장 유려한 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 평론가인 존 밀턴의 산문집인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의 표지. 언론의 자유를 피력한 역사상 가장 유려한 글 중 하나로 평가된다.위키피디아
미국에서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존 밀턴이 이상으로 그렸던 '사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 속에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이상과 이론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장왜곡과 조작이 횡행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도 닉슨의 경우에서 보듯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매스컴을 통해 갑가지 광범위하게 퍼진 애국주의 사상이 그 예이다. 게다가 미국의 성조기 관련 법안, 십자가 화형금지법 논란에서 보듯 법률에 의한 직접적인 제한도 시도되고 있다. 

평화시위에서 미국 국기를 태우는 행위를 금지하자는 '미국 국기에 대한 모독금지법'은 원래 48개 주가 가지고 있던 법이었으나 1989년 텍사스 주 존슨사건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의회는 다시 1989년 '국기보호법'을 만들었고, 이 또한 1990년 다시 위헌판결을 받았다. 의회와 부시 대통령은 또 다시 '우리 국기를 보호하자'는 내용으로 수정헌법을 만들 것을 발의했지만 이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이런 끝없는 시도와 사회전반의 애국주의 분위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했다.

주로 KKK에 의해 자행된 십자가 화형식은 주법인 버지니아 '십자가 화형 관련법'에 의해 금지되어왔다. 이 법이 위헌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버지니아 주 대 블랙의 재판(2003)에서 대법원은 "십자가 화형은 인종테러의 수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위협적이어서 보호받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렇게 조금씩 위축되던 표현의 자유는 일명 '애국자법'(Patriot Act)에 의해 치명타를 입었다. 2001년 9.11 직후 의회에 의해 통과된 애국자법은 '테러를 저지하고 방해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통일되고 강력해진 미국을 만들기 위한 2001 법'이라는 긴 제목을 가지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얼마나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는지를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Freedom House의 1999년 조사결과(상)와 2009년도 조사결과(하). 자유가 지켜지는 국가, 부분적으로만 보장되는 국가, 자유가 없는 국가 등이 세계 지도 위에 각기 다른 색깔로 표시되어 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얼마나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는지를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Freedom House의 1999년 조사결과(상)와 2009년도 조사결과(하). 자유가 지켜지는 국가, 부분적으로만 보장되는 국가, 자유가 없는 국가 등이 세계 지도 위에 각기 다른 색깔로 표시되어 있다.freedomhouse.org
미 정부는 이 법을 통해 이전에는 극히 제한적으로 주어졌던 개인의 전화나 이메일 같은 통신을 도청하고, 의료나 재정관련 기록을 마음대로 조사할 권리를 갖게 됐다. 애국자법은 직접적으로는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만 간접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다.

1980년 이후로 세계 여러 국가들의 언론의 자유(미디어의 독립성) 상황을 조사해 발표하는 국제기구 '프리덤 하우스'의 2009년 5월 발표에 의하면 미국은 195개 나라 중 체코 공화국, 리투아니아 등과 함께 '언론 자유가 있는 나라' 공동 24위를 기록했다.(한국은 66위)

민주주의 수호자, 자유의 상징임을 자처하는 미국으로서는 다소 낮은 순위다. 세계적으로 언론 자유가 있는 나라의 수는 70개국으로 7년째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2003년 89개국->2009년 70개국)

유엔 건물 옆 공원으로 보내진 시위대는 이런 상황-행정부나 의회에 의한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의 제정, 그리고 내용이 아닌 형식을 문제 삼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미디어 조작을 통한 국민 전반의 보수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 참고문헌
-American Government and Politics Today, Steffen W. Schmidt, Mack C. Shelly, Barbara A. Bardes. 2006~2007, Thomson Advantage Books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Howard Zinn, 2008,Metropolitan Books
-표현의 자유와 미국 헌법, John E. Nowak, Ronald D. Rotunda 저, 이부하 역, 2007, 한국학술정보
-<노암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 노암 촘스키 지음, 박수철 옮김, 2008, 모색
-Freedom of Expression: History, http://www.democracyweb.org
-Freedom of Expression: Essential Principles, http://www.democracyweb.org
-Freedom of Expression: ACLU Position Paper (1/2/1997), www.aclu.org
-미국대통령 닉슨은 음해전문가-권력형 비리, http://www.merger.co.kr
-이것이 진정한 언론이다-역사 속의 오늘, 2008, http://chiwoonara.tistory.com
-Benjamin Cardozo, Palco v. Connecticut, Double Jeopardy, Watergate Scandal, Pentagon Papers, Oliver Wendell Holmes Jr., Abrams v, United States, cross burning,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Virginia, v. Black, Schenck v. United States, Brandenberg v. Ohio, John Milton, flag desecration, Ezra Pound, Daniel Ellsberg, marketplace of idea, Freedom House, www.wikipedia.com
-Freedom of the Press Global Survey of Media Independence 2009, 2008, 2004, 2003, www.freedomhouse.org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American Government and Politics Today, Steffen W. Schmidt, Mack C. Shelly, Barbara A. Bardes. 2006~2007, Thomson Advantage Books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Howard Zinn, 2008,Metropolitan Books
-표현의 자유와 미국 헌법, John E. Nowak, Ronald D. Rotunda 저, 이부하 역, 2007, 한국학술정보
-<노암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 노암 촘스키 지음, 박수철 옮김, 2008, 모색
-Freedom of Expression: History, http://www.democracyweb.org
-Freedom of Expression: Essential Principles, http://www.democracyweb.org
-Freedom of Expression: ACLU Position Paper (1/2/1997), www.aclu.org
-미국대통령 닉슨은 음해전문가-권력형 비리, http://www.merger.co.kr
-이것이 진정한 언론이다-역사 속의 오늘, 2008, http://chiwoonara.tistory.com
-Benjamin Cardozo, Palco v. Connecticut, Double Jeopardy, Watergate Scandal, Pentagon Papers, Oliver Wendell Holmes Jr., Abrams v, United States, cross burning,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Virginia, v. Black, Schenck v. United States, Brandenberg v. Ohio, John Milton, flag desecration, Ezra Pound, Daniel Ellsberg, marketplace of idea, Freedom House, www.wikipedia.com
-Freedom of the Press Global Survey of Media Independence 2009, 2008, 2004, 2003, www.freedomhouse.org
#표현의 자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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