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그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 한없이 먹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 《박희병-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그물코,2007) 61쪽
'한(限)없이'는 '끝없이'나 '자꾸자꾸'나 '모두'쯤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나 '오래오래'나 '끝도 없이'나 '배가 터지도록'이나 '실컷'으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지 못하는 게"는 "그러지 못해"나 "그러지 못해서"나 "그럴 수 없어서"로 손질해 줍니다.
┌ 한스럽다(恨-) : 한이 되는 느낌이 있다
│ -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 그녀에게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
├ 그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 그러지 못해 서운했다
│→ 그러지 못해 가슴 아팠다
│→ 그러지 못해 가슴에 맺혔다
└ …
'恨'이라는 한자말을 다듬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한이 된다"처럼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한이 맺혔다"라든지 "한으로 남았다"라든지 "한이었다"처럼 쓰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좀더 깊이 살피고 생각하고 헤아린다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뜻과 마음을 찬찬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아쉬움'이요, 자리에 따라서는 '서운함'이고, 곳에 따라서는 '안쓰러움'이거나, 흐름에 따라서는 '안타까움'이며, 느낌에 따라서는 '아픔'이나 '슬픔'입니다.
느낌과 마음을 나타내는 우리 낱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느낌과 마음을 보여주는 우리 말마디는 골고루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나날이 우리 느낌말을 잊고 우리 마음을 잃습니다. 우리 스스로 느낌말을 키우지 않고, 우리 힘으로 우리 마음말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우리 땅 우리 겨레 우리 나라 우리 삶터에 걸맞는 우리 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있어요.
┌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배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 배우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 배우지 못해 서러울 뿐이다
├ 못내 한스러웠다
│→ 못내 아쉬웠다
│→ 못내 안타까웠다
│→ 못내 괴로웠다
└ …
오늘날 우리 둘레에서 널리 쓰는 외마디 한자말을 살피면, '恨' 말고 '情'이 있고 '性'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자말은 굳이 한자말로 여기기보다 그예 우리 삶에 녹아든 '우리 말'이라고 여겨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성'은 모르겠으나 '정'은 흐름에 따라 '마음'이나 '사랑'이나 '따스함'이나 '살가움'으로 풀어내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그대로 쓰고 싶다면 그대로 쓰되, 모든 자리에서 이대로만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해 보면서, 우리 느낌말과 마음말을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으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이리하여, '한'이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지나 서운함과 서러움과 서글픔으로 이어집니다.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으로 이어지고, 이내 응어리와 생채기에 가 닿습니다. 누구나 달리 받아들이는 느낌이요, 사람마다 다르게 품는 마음입니다.
이냥저냥 그대로 쓰는 일은 나쁘지 않으며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느낌말을 더 살피거나 일구지 않는다면, 우리 말은 우리 터전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 마음을 한껏 키우거나 갈고닦지 않는다면, 우리 글이 우리 삶터에서 아름답고 알차게 열매맺지 못합니다. 힘차게 싹트고 싱그러이 잎트며 곱게 꽃피다가 알알이 열매맺도록, 우리 슬기와 깜냥을 그러모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ㄴ. 한스런 생각
.. 최근에 나는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어떤 한스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빠는 나에게 더 많은 말을 해 주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유모토 가즈미/양억관 옮김-고마워, 엄마》(푸른숲,2009) 147쪽
'최근(最近)에'는 '요사이에'나 '요즈음에'로 손봅니다. '회상(回想)할'이라 하지 않고 '떠올릴'이라 적은 대목은 반갑고, '상념(想念)'이 아닌 '생각'이라 적은 대목이 반가우며, '보다'를 넣지 않고 '더'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한스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
│→ 아쉬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 안타까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 슬픈 생각에 사로잡혔다
│→ 괴로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 …
누구한테나 가슴이 아픈 일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가슴앓이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엔가 어김없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가슴앓이며 마음앓이며 끙끙 앓으면서 안 앓는 듯 겉옷을 입고 있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가슴앓이와 마음앓이를 하듯, 우리 말글은 언제나 말앓이와 글앓이를 합니다. 옳고 바르게 말하지 않고 알맞고 슬기롭게 글쓰지 않으니, 우리 말은 늘 말앓이입니다. 우리 글은 언제나 글앓이입니다.
사랑스럽게 발돋움하는 우리 말이 아니라, 안타깝게 고꾸라지는 우리 말입니다. 힘차고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우리 글이 아니라, 슬프게 나동그라지는 우리 글입니다. 차근차근 보듬어 주려는 손길이 드물고, 따스하게 감싸 주려는 마음길을 찾기 힘듭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길을 꿋꿋하게 걷는 사람이 줄고,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길을 다부지게 펼치는 사람이 사라지며, 우리 스스로 우리 말길을 알뜰살뜰 꾸리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 아쉬움에 사로잡혔다
├ 안타까움에 사로잡혔다
├ 슬픔에 사로잡혔다
├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 …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안타깝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퍼하지 않습니다. 좀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으나 좀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우리 스스로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한결 좋은 생각을 가꿀 수 있으나 한결 좋은 생각을 가다듬지 못하는데, 우리 스스로 슬퍼하지 않습니다. 말답지 않은 말이 판치는데, 우리 가슴은 조금도 쑤시지 않습니다. 글답지 않은 글이 쏟아지는데, 우리 마음은 하나도 따끔거리지 않습니다.
나날이 무디어져만 갑니다. 하루하루 무덤덤해지기만 합니다. 내 삶을 붙잡지 않고 내 생각을 여미지 않으며 내 말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다스리지 못하고 내 생각을 덥히지 않으며 내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 무엇인가 아쉬웠다
├ 무엇인가 안타까웠다
├ 무엇인가 슬펐다
├ 무엇인가 괴로웠다
└ …
같은 길을 걷더라도 이 길 한켠에 사랑 하나 믿음 하나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 길 둘레에 사랑 하나 믿음 하나 심을 수 있습니다. 이 길 구석구석에 사랑 하나 믿음 하나 뿌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고운 말씨가 깃들어 있으니까요. 우리 가슴에는 넉넉한 글씨가 잠자고 있으니까요. 우리 넋에는 싱그러운 말밭이 있으니까요. 우리 얼에는 포근한 글밭이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21 10:56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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