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카드 한 장이 행복한 아침입니다.깨알 같은 글씨로 사랑을 가득 담은 딸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순희
하루 앞당겨 생일을 해먹을까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찬거리 하나 준비되지 않아 그냥 생일날 아침으로 미루었습니다. 하루 전 날 저녁 무렵, 딸아이는 조용히 저를 끌고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책상 밑에 놓인 까만 비닐봉지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행여나 눈치 빠른 아빠가 이런 사소한 행동부터 의심해 우리의 이벤트를 알아차릴까 염려가 된 모양입니다. 둘이 눈빛으로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니 어느덧 밤이 깊고, 생일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하루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 팥 삶은 것을 넣어 밥을 하고, 소고기 대신 북어로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버섯부침에 어묵조림, 시골에서 가져온 햇무를 채 썰어 무채를 하고, 조기 두 마리도 구웠습니다. 제가 아침 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딸아이는 작은 상 위에 접시를 놓고, 책상 밑에 있던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왔습니다. 봉지 안에는 초코파이처럼 생긴 작은 빵 다섯 개가 있었고, 그것을 뜯어 가지런히 놓고 예전에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긴 초 하나를 꼽았습니다.
그러고는 얼른 어디선가 꺼내온 빨강 장미 한 송이를 상 위에다 올려놓았습니다. 알아서 준비해 보겠노라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키워보니 딸이 있어 전 행복한 엄마라는 걸 알았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자식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의 생일상에는 작은 빵과 초 하나, 빨간 장미 한 송이,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사랑을 담은 작은 카드 두 장이 나란히 준비되었습니다. 불을 끄고, 아직 자고 있는 남편 쪽으로 걸어가 남편을 불렀습니다. 자다 놀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남편 앞에 작은 생일상을 내려놓고, 딸아이와 전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하는 남편의 얼굴 표정이 그대로 제 눈에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