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 결혼한 사제와 신자들을 받아들인다?

성공회 이탈한 보수주의자 수용하기위해 이례적인 결정내려

등록 2009.10.23 19:28수정 2009.10.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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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성공회 결혼사제와 전통예식 인정하기로

 

지난 20일 로마 교황청이 성공회 사제와 신자를 수용하는 교황령을 발표하자 전 세계 기독교계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 21일 영국 BBC뉴스 온라인 판은 교황청의 이번 선언은 성공회의 전통과 예식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새로 발표한 교황령에는 결혼한 성공회 사제의 개종을 허용하고 신자 역시 성공회식 예배참석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제의 결혼을 금지해 온 교황청이 자신들의 원칙을 일부 훼손하면서까지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성공회 일부 사제와 신자들의 개종요청이 거세기 때문이다. 세계 성공회는 80년대 이후 여성사제는 물론 동성애사제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진보파와 보수파간에 많은 갈등을 빚었고  특히 동성애문제는 교단내의 극심한 분열을 불러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신자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2003년 미국 성공회가 진 로빈슨 신부를 뉴햄프셔 교구의 주교로 임명하고 일부 교구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등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자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 내 성공회 보수파 일부 교구와 교회는 철회를 요구하며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성공회 관구장을 맡고 있는 캐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는 오히려 '동성애는 죄가 아니며 동성애자들도 신에 의해 동성을 사랑하도록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하느님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부여했는데 일부는 같은 성의 사람들을 향하도록 명령된 애정을 갖고 이 세상에 왔으며, 일부는 다른 성의 사람을 향하도록 된 애정을 갖고 이 세상에 왔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램버스회의 2008년 7월말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린 램버스 회의(Lambeth Conference)에서 대회의장인 로완 윌리암스 켄터베리 대주교(왼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램버스 회의는 10년에 한번 열리는 성공회 주교 모임으로 지난해에는 전세계에서 6백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램버스회의2008년 7월말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린 램버스 회의(Lambeth Conference)에서 대회의장인 로완 윌리암스 켄터베리 대주교(왼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램버스 회의는 10년에 한번 열리는 성공회 주교 모임으로 지난해에는 전세계에서 6백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Lambeth Conference 조직위
▲ 램버스회의 2008년 7월말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린 램버스 회의(Lambeth Conference)에서 대회의장인 로완 윌리암스 켄터베리 대주교(왼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램버스 회의는 10년에 한번 열리는 성공회 주교 모임으로 지난해에는 전세계에서 6백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 Lambeth Conference 조직위

 

영국성공회도 2007년 11월 최고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동성애 성직자들과 그들의 성 파트너들을 위해서 비밀 성찬식을 개최한 바 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런던 성 피터교회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했으며, '교회 내 동성연애자들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이날 참석자의 명단은 윌리엄스 대주교 이외에는 비밀로 정해졌는데 이 행사에 대해 찬성하는 측은 비공개로 열린 것에 불만을 표시했고 반대 측은 성경과 성공회는 동성애가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 성공회는 동성애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중 교인수가 1천만 명이 넘는 나이지리아 성공회 아키놀라 대주교는 동성애는 교회에서 추방돼야 할 '사탄의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성공회를 탈퇴한 교회들을 자신의 교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옛 영국식민지의 성공회 지도자들은 미국성공회를 전체 성공회에서 제명하라고 요구해 왔지만 영국에 소재한 세계성공회본부는 미국 성공회가 차지하는 위상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성공회 역시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세계성공회가 분열직전에 이르고 일부 사제와 신자들이 강력하게 개종을 요청하자 교황청은 성공회를 머지않은 장래에 흡수, 통합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반해 성공회는 교세감소와 내부 논란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어 교황청의 공세를 저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 성공회의 경우 2008년 현재 전체 영국인구(약 6650만 명)의 40%에 육박하는 2650여만 명의 신자가 있다는 공식통계를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 교회 출석신자는 10%미만이며 그나마 출석신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 노령 층이다.

 

게다가 1994년 처음으로 여성사제 인정하자 이에 반대하는 성공회 사제 700여명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해마다 가톨릭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2007년 6월말에는 블레어 전총리가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해 영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17세기말 가톨릭신자였던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이후 왕은 물론 수상까지 모두 성공회신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성공회로서는 매우 우려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성공회, 여성사제·동성애 문제로 보수, 진보간 분열 심각

 

미국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해마다 미국교회 현황을 발표하는 미국교회협의회(NCC-USA) 2009년 연감에 따르면 미국 성공회는 2008년 말 현재 약 211만6천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약 2%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80년대 이후 계속된 것으로 주로 여성사제나 동성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뉴햄프셔, 뉴욕, 뉴저지 같은 동부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탈자의 대부분은 가톨릭교회 또는 침례교 같은 보수적인 교단으로 옮겨가고 있다.

 

부시 가문을 비롯해 다수의 유력한 인물들을 배출하고 20세기 초반까지 교인수가 500만 명이 넘었던 미국성공회로서는 일대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서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성공회의 교인감소는 사회적으로 과학과 합리주의가 대세를 장악하고 일정수준의 사회복지가 이루어진데다 진보와 보수 간의 극단적인 갈등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존 스퐁같은 성공회주교는 근본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성경무오설,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부활, 재림 및 천당과 지옥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고 바울이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함으로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성공회가 진보와 보수, 지역 간의 분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비해 로마 가톨릭은 중앙집권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체계, 교황의 인사권 독점 등을 통해 안정적인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약 67억 인구 중에 11억 5천여만명이 가톨릭신자로 추산되고 있고 이 숫자는 개신교 약 3억 5천, 동방정교회 약 2억 5천에 비해 월등하고 약 12억에 달하는 이슬람 전체인구에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전 세계 성공회 신자수가 8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추세로 이탈이 가속화되면 가톨릭은 이슬람을 제치고 세계최대 종파가 될지 모른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로마가톨릭의 보편교회에 반대해 지역 자치와 독립을 강조하는 성공회는 10년마다 열리는 램버스회의라는 협의체가 있지만 교리상의 이견 등에 대해 가톨릭과 같이 인사조치나 파문과 같은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분열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대변혁기에 영화 <천일의 앤>의 모티브가 되었던 헨리 8세의 이혼문제라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던 성공회는 20세기 초 빅토리아 여왕 때까지 대영제국의 깃발아래 전 세계를 무대로 가톨릭과 경쟁하며 포교활동을 벌여왔지만 영국의 몰락과 함께 그 세력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양극단의 사이에서 예식은 가톨릭 전통을 따르고 신학은 루터와 칼뱅의 노선을 조합시키며 기독교사회의 중용을 지켜왔던 자랑스러운 전통이 이제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공회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통합시도는 최근 기독교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에 하나로 로마제국이후 현재까지 스스로 유일한 보편교회라고 불러왔던 가톨릭교회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패권적이고 폐쇄적인 교리와 신학을 강조할 경우에는 통합노력은 일부 세력에 대한 흡수에 머물 뿐 전체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대통합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60년대 요한23세 추진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자유와 진보의 바람을 만끽하며 열린 교회를 지향했던 가톨릭교회가 요한바오로 2세때부터 보수화되면서 현 베네딕토 16세에 이르러는 거의 수구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마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은 가톨릭교회와 대영제국의 위세를 등에 업었던 성공회간의 통합을 둘러싼 샅바싸움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종교개혁이후 분열되었던 전 세계 기독교의 미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16세기 교황의 절대적 권위에 맞서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수장)가 되고 영국을 강대국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헨리 8세의 야심이 21세기에 이르러 결국 교황의  발아래에 놓일 지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성공회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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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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