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 되는 땅콩이지만 이것도 어머니 혼자서 다 까셨다.
김수복
마늘 수확기에 사놓은 마늘 두 접은 진즉에 어머니가 모두 까버렸다. 그렇다. 이 부문은 버렸다고 해야 말이 된다. 마늘은 그때그때 까서 먹어야 하는데 미리 까놓으니 반점이 생기는 등 상해간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절구통에 빻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긴 했지만 볼 때마다 저걸 언제 다 처리하나, 여간 심난한 게 아니었다.
식당을 찾아가볼까? 그래, 그것도 한 방법이겠다. 내가 만약에 협상을 아주 잘해서 식당을 열 곳만 설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머니의 일거리는 그야말로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밤새 장군 멍군, 이장에 반장까지 다하고 다음날 마늘을 많이 사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식당 몇 곳을 들러 상황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하자 마음먹고 길을 나섰는데,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를 않는다.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버리거나, 어떤 사람은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원하지 않는 충고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따 효자상 받겄소야", 하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다른 식당은 아예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서워진다. 인간의 언어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인가. 이런 세상을 산다는 것은 불행이라고,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조차 없겠다. 그냥, 외롭다고, 그렇게나 말하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내가 만일 어머니 드리게 국밥 한 그릇만 주세요, 했더라면 오 그러시냐, 드리지요,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무슨 뜬금없는 마늘을 까준다고 했으니, 듣는 이의 마음에 물음표가 붙어도 아마 열 개는 넘게 붙었을 것이다. 내 낯이 원체 두껍지를 못하다보니 설명도 어눌하게 수상한 점이 많게 했을 것이다. 마늘을 까준다고? 이건 또 무슨 신종 사기수법이지? 얼마든지,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 일거리 만드는 게 참 쉽지가 않구나.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 머리가 희어질 만도 하겠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거리며 일자리창출, 일자리창출, 중얼거리고 있는데 문득 한 가지 그림이 떠올라온다. 뚱딴지, 일명 돼지감자. 내일은 그것을 캐러 가자. 생으로 씹어먹을 수도 있고 구워서 먹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잘게 썰어서 말렸다가 뻥튀기 기계로 튀긴 다음 살짝 끓여내면 구수한 향기와 맛이 일품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오전 일찍 뚱딴지를 캐러 나섰다. 아직 제철은 아니지만 알은 이미 영글었다. 쌀포대로 한가득 뚱딴지를 캐서 어깨에 메고 들어오니 어머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거 엄마가 다 썰어야 해" 뚱딴지를 물에 씻어 바구니에 담아 내놓으니 어머니 왈 "그려, 그려, 칼 줘, 칼 줘" 같은 말을 열 번도 넘게 하시면서 왔다갔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눈치다.